
경북 경주시 문무대왕면 봉길리 해안도로를 따라 산길을 오르자 거대한 회색 콘크리트 구조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13일 준공식을 가진 한국원자력환경공단의 '2단계 표층처분시설'이다. 외부만 보면 일반 산업시설처럼 보였지만, 이곳은 앞으로 국내 원전과 연구시설에서 발생하는 저준위 방사성폐기물을 장기간 보관·처분하는 국가 핵심 인프라다.
행사장 뒤편으로 이동하자 상부가 열린 직사각형 형태의 처분고 20기가 일렬로 배치돼 있었다. 콘크리트 구조물 사이에는 거대한 이동형 크레인 쉘터가 자리 잡고 있었다. 멀리서 보면 지붕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방폐물 처분 작업을 수행하는 이동형 설비였다.

현장 설명에 나선 이경환 한국원자력환경공단 시공관리팀장은 “처분 차량이 들어오면 크레인이 방폐물 드럼을 들어 올려 처분구 안으로 이동시킨다”며 “처분 완료 후 콘크리트 슬래브로 밀봉한 뒤 다음 처분구로 이동하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2단계 표층처분시설은 총 20개 처분고로 구성됐다. 각 처분고는 높이 10m, 폭 20m 규모 정사각형 구조다. 콘크리트 두께만 60㎝에 달한다. 드럼을 한 층씩 적재할 때마다 그라우팅 작업을 반복해 내부 공극을 메우고, 최종적으로 콘크리트 덮개와 방수층까지 설치해 밀봉한다.
이 팀장은 “총 9단까지 적재한 뒤 내부를 완전히 그라우팅하고 상부를 밀봉한다”며 “최종적으로는 약 5m 두께 흙으로 덮어 분묘 형태의 처분 언덕이 만들어진다”고 설명했다.
이번 시설은 국내 첫 '표층처분' 방식이다. 기존 1단계 동굴처분시설이 중·저준위 방폐물을 모두 지하 암반 동굴에 보관했다면, 앞으로는 저준위·극저준위 폐기물을 별도 분리해 지표 인근 표층 시설에 처분하게 된다.
공단에 따르면 경주 방폐장은 총 80만드럼 규모 처분 용량을 목표로 단계별 확장을 추진 중이다. 현재 1단계 동굴처분시설과 2단계 표층처분시설에 이어 3단계 매립형 처분시설도 설계가 진행되고 있다.
현장에서는 '원전 해체 시대'라는 표현이 반복적으로 등장했다. 현재는 한수원 운영폐기물이 대부분이지만, 2030년 이후부터는 원전 해체 과정에서 발생하는 콘크리트·토양 폐기물이 급격히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안전성 확보도 핵심 화두였다. 현장 곳곳에는 방사선 감시 장비와 배수 관리 시스템, 출입통제 설비가 설치돼 있었다. 특히 처분시설 주변에는 산불 확산을 막기 위한 '수막 타워' 8기도 새로 설치됐다.
이 팀장은 “산불 발생 전에 미리 살수해 불티 확산을 차단하는 스마트 설비”라며 “방사선 비상계획 훈련까지 모두 마친 상태”라고 설명했다.
공단은 특히 '5중 다중차단구조'를 강조했다. 방폐물 드럼과 그라우트, 콘크리트 처분고, 최종 덮개, 암반 구조를 통해 방사성물질 누출 가능성을 최소화했다는 설명이다.
이원주 기후부 에너지전환정책실장은 이날 “건설 과정에서 규모 7.0 지진을 견딜 수 있도록 완전한 내진설계를 적용했다”며 “물과 공기가 외부로 배출되기 전 엄격한 검사 체계를 거치도록 설계된 점도 직접 확인했다”고 말했다.
실제 현장 브리핑에서는 배수와 침투수 관리 체계 설명이 이어졌다. 처분고 아래에는 지하 점검로와 집수조가 설치돼 있었고, 혹시 모를 유출수 발생 시 별도 배관을 통해 모아 검사·처리하는 구조였다.
이 팀장은 “처분시설 폐쇄 이후에도 300년 동안 주변 환경 방사능을 지속 감시하게 된다”며 “지하수와 공기 중 방사능 수치를 장기 모니터링하는 체계를 구축했다”고 설명했다.

준공식 이후 기자단은 차량을 타고 기존 1단계 동굴처분시설로 이동했다. 해발 수십미터 산복도로 끝 수직구 아래로 내려가자 분위기는 2단계 시설과 확연히 달라졌다. 긴 콘크리트 터널과 거대한 원통형 사일로 구조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1단계 동굴처분시설은 지하 암반 80~130m 깊이에 조성된 국내 첫 중저준위 방폐장이다. 사일로 6기 규모로 총 10만드럼 처분이 가능하다. 각 사일로는 직경 23.6m, 높이 50m 규모다.
동굴 내부는 예상보다 조용했다. 습도와 온도는 일정하게 유지됐고 곳곳에는 방사선 감시장비와 환기설비가 설치돼 있었다. 사일로 상부에서는 원격 제어 크레인이 방폐물 처분 작업을 수행하고 있었다.
현장에서는 디지털 기반 관리 체계도 소개됐다. 공단은 GPS 기반 운송 추적 시스템과 통합 운영 플랫폼 'K-Oasis'를 통해 방폐물 발생부터 운송·검사·처분까지 전 과정을 실시간 관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동굴처분과 표층처분을 하나의 사이트에서 종합 운영하는 모델 자체가 해외에서도 선진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정보통신(IT) 인프라를 활용한 통합 관리 노하우에 대해 해외 기관들의 관심도 높다는 전언이다.
이준희 기자 jh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