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에서는 '단층 그래핀'이라는 기술 중심적으로 사고하다보니 '상용화' 측면에서는 미국, 유럽, 캐나다보다 수년 뒤쳐져 있습니다. 다층 그래핀이라도 시장을 여는 게 우선입니다.”
배경정 케이비엘러먼트 대표가 전자신문과 만나 그래핀의 빠른 상용화가 우수한 기술 개발보다 더 시급한 과제라고 강조했다.
배 대표는 1987년부터 20년 이상 삼성전자, 삼성디스플레이에 근무한 뒤 제니스월드의 해외영업본부장를 거쳤다. 케이비엘러먼트를 2016년 설립한 뒤 10년 이상 그래핀 분야 개발과 상용화에 종사해온 전문가다.
그는 “한국은 단층 그래핀 기술의 개발 차원에서는 경쟁국 대비 가장 앞서있을 수 있다. 하지만 해외 기업들은 수십 층에서 수백 층에 이르는 '그래핀 나노 플레이크'를 활용해 자동차 경량화 소재, 전자파 차폐 소재, 심지어 그래핀 콘크리트까지 이미 상용화하고 매출을 올리고 있다”고 말했다.
그래핀은 탄소 원자들이 벌집 모양으로 연결된 아주 얇은 막을 의미한다. 강철보다 강하고 전기가 잘 통하는 것이 장점이어서 '꿈의 신소재'로 꼽힌다.
그래핀은 층수가 낮을수록 전기 전도도가 높다. 층수가 높아지면 이와 같은 특성은 점차 떨어진다.
배 대표는 그래핀이 '꿈의 소재'가 아니라 당장 우리 산업에 적용할 수 있는 '현실 소재'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서는 국내에서도 단층 그래핀에 목맬 게 아니라 그래핀을 상용화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봤다. 수십 층, 수백 층의 그래핀으로도 기존 그래파이트가 쓰이던 시장을 대체하기 충분한 성능을 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단층 그래핀을 구현하기 위한 공정은 매우 복잡하고 제조 원가는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높아지며, 쓸 수 있는 시장도 반도체 등 아주 특수한 분야로 제한된다”며 “시장이 없는데 기술만 강조하니 그래핀 기업들은 외형 성장을 못 하고 토스트기 같은 소형 가전 제품에 머물게 된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지난해 정부가 '초혁신경제 15대 프로젝트'에 그래핀을 선정한 것에 대해서는 기대감을 나타냈다. 정부 지원을 통해 대기업의 수요와 실질적인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다면 국내 그래핀 산업이 본격 성장하는 계기를 맞을 수 있다는 관측이다.
케이비엘러먼트는 대기압 플라즈마를 이용한 비산화 그래핀 양산 기술로 수십층, 수백층 그래핀을 양산하고 있다.
기존에 디스플레이 대전방지제, 모바일용 방열 소재에 그래핀을 상용화했고, 올해부터는 방열 테이프를 비롯해 전도성 장갑, 프리미엄 와이퍼, 전기차 흠음재, 기능성 의류, 인조잔디 등 신사업 분야로도 진출한다.
이후에는 태블릿 유기발광다이오드(OLED)용 그래핀 전도성 잉크, 소형 전고체 배터리용 복합재 등 전자 산업 분야로도 진출을 추진 중이다.
배 대표는 “그래핀은 더 이상 먼 미래의 '꿈의 소재'로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며 “대기업들이 혁신의 필요성을 체감하고 그래핀 산업의 비즈니스 포트폴리오를 구축하는 데 적극 나서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영호 기자 lloydmind@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