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소비자직접의뢰(DTC) 유전자 검사 산업이 수년째 이어진 규제와 해외 업체와의 역차별에 가로막혀 사실상 고사하고 있다. 해외에서는 개인이 자신의 유전체 정보를 활용해 맞춤형 건강관리 서비스를 받을 수 있지만 국내에서는 검사 결과 활용과 데이터 재사용이 모두 제한돼 산업 성장 기회를 잃고 있다는 지적이 거세다.
특히 국내 DTC 유전자검사는 병원을 거쳐야만 이용할 수 있는 반면 해외 업체 검사 서비스는 온라인에서 자유롭게 구매할 수 있어 역차별 구조를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1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유전자검사 전문가들과 기업들은 국회와 정부 대상으로 수년째 이어지고 있는 역차별 구조와 데이터 활용 제한 문제를 개선해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DTC 유전자검사는 소비자가 병원을 거치지 않고 민간 기업에 직접 의뢰해 유전적 특성과 질병 위험도 등을 확인하는 서비스다. 미국과 일본 등 주요 선진국에서는 예방의학과 개인 맞춤형 헬스케어 산업의 핵심 인프라로 자리 잡았지만 국내 시장은 각종 규제에 막혀 산업이 고사하고 있다.
특히 진료정보 등 의료 데이터를 질병 연구나 맞춤형 헬스케어 서비스 개발에 폭넓게 활용하는 것과 달리 DTC 유전자검사 데이터는 소비자 본인조차 활용하기 어렵다. 검사 결과를 바탕으로 다양한 헬스케어 서비스를 개발할 수 있는 기반이 차단된 셈이다.
정부는 지난 2022년 말 DTC 유전자검사 인증제를 도입하고 검사 항목을 70종에서 81종으로 확대하며 산업 활성화를 꾀했지만 업계는 오히려 시장이 위축됐다고 입을 모은다.
최대출 엔젠바이오 대표(전 유전체기업협의회장)는 “인증제 시행에 맞춰 검사 데이터 기반 사업을 확장하기 위해 인력과 투자를 늘렸지만 정작 검사 데이터를 활용할 수 없게 됐고 '맞춤형'이라는 표현조차 사용할 수 없게 되면서 시장이 급격히 쪼그라들었다”며 “고객 동의를 받아 건강관리 서비스와 연계하거나 데이터 기반 신규 서비스를 개발할 길이 사실상 막혔다”고 말했다.
최 대표는 “국내에서는 개인이 자신의 유전체 데이터 원본을 확보하기 어렵고 기업도 데이터를 활용한 서비스 개발이 제한돼 있지만 해외 기업들은 다양한 디지털 헬스케어 서비스를 출시하며 시장을 키우고 있다”며 “수십만 건의 데이터가 쌓이면 국민 건강관리와 바이오 산업 발전에 큰 자산이 될 수 있지만 현재는 그런 가능성이 원천 차단돼 있다”고 말했다.
업계와 전문가들은 현행 규제가 산업 위축을 넘어 국민의 건강정보 활용권까지 제한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강건욱 서울대 의대 교수는 “유전자 정보는 개인 건강관리에 가장 먼저 활용돼야 하는데 현행 규제는 소비자가 자신의 데이터를 활용하는 길을 막고 있다”며 “유전자 정보의 주인은 개인인 만큼 연구나 기관 중심 활용보다 개인의 건강관리 목적 활용이 우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강 교수는 국내 규제가 질병 예방 기회까지 제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미국 DTC 서비스를 이용해 약물유전체 검사를 받은 결과 뇌졸중 예방에 사용되는 클로피도그렐(플라빅스) 효과가 떨어지는 유전형이라는 사실을 확인했고 이후 약물 선택에 도움을 받았다고 소개했다.
그는 “국내에서는 같은 검사를 개인이 직접 받기 어렵다”며 “질병 예방과 약물 부작용 관리에 활용할 수 있는 정보에 소비자가 접근하지 못하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어 “국내만 규제에 묶인 상황이 지속되면 유전체 산업뿐만 아니라 AI 기반 디지털 헬스케어 경쟁력까지 뒤처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배옥진 기자 witho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