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출자·해외투자 족쇄' 풀리나…잠잠했던 CVC 설립 다시 꿈틀

한국앤컴퍼니, 신기사 인가 신청…셀트리온도 재검토 움직임
규제 완화 기대감 커지지만…업계 “희망고문 안 돼”

한동안 잠잠했던 기업주도형 벤처캐피탈(CVC) 설립 움직임이 다시 살아나고 있다. 규제 부담으로 설립을 미뤘거나 장기간 검토만 이어오던 대기업들이 정부의 규제 완화 논의에 맞춰 재시동을 거는 분위기다. 업계에서는 글로벌 기술 확보 경쟁이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외부출자와 해외투자 제한 완화가 벤처투자 확대를 위한 필수 조건이라고 입을 모은다.

3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한국앤컴퍼니그룹(옛 한국타이어그룹) 지주사인 한국앤컴퍼니는 CVC 설립을 추진하며 최근 금융감독원에 신기술사업금융회사(신기사) 라이선스를 신청했다. 그룹 차원의 신사업 발굴과 전략적 투자 기능 강화를 위한 행보로, 빠르면 7월 내 결과가 나올 전망이다.

바이오 업계에서는 셀트리온이 CVC 설립 재검토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셀트리온 관계자는 “과거에도 CVC 설립을 검토했지만 당시 규제가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했다”며 “특히 해외 투자 비중 제한 등이 글로벌 혁신 기술 확보 전략과 맞지 않는다고 판단해 내부적으로 보류했던 사안”이라고 말했다. 이어 “최근 CVC 관련 제도 완화 움직임이 나타나고 투자 환경도 변화하면서 다시 설립 필요성을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두 기업의 공통점은 오래전부터 CVC 필요성을 인식했지만 규제 장벽으로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는 점이다. 전략적 투자와 오픈이노베이션 필요성은 컸지만 해외 투자 제한과 외부 자금 조달 규제가 부담 요인으로 작용했다.

현행 일반지주회사 CVC는 펀드별 외부 자금 조달 비중이 40% 이내로 제한되며 해외 투자 비중 역시 총자산의 20%를 넘길 수 없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규제가 글로벌 기술 확보와 전략적 투자 확대를 제약한다고 지적한다.

특히 AI, 바이오, 반도체 등 신산업 분야에서는 해외 스타트업 투자와 글로벌 공동 연구가 사실상 필수라는 목소리가 높다. 해외 딥테크 투자 기회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국내 CVC만 과도한 제한을 받을 경우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질 수 있다는 우려다.

실제 해외 투자 제한은 기업 투자 전략에도 영향을 미쳤다. 한 업계 관계자는 “바이오와 AI 분야는 국내 시장만 보고 투자하기 어렵다”며 “글로벌 기술과 인재 확보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해외 투자 제한은 사실상 손발을 묶는 규제와 다름없다”고 말했다.

(출처=게티이미지뱅크)
(출처=게티이미지뱅크)

정부도 제도 개선에 나선 상태다. 공정거래위원회는 공정거래법 개정을 통해 외부 출자 비중을 50%, 해외 투자 비중을 30%까지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중소벤처기업부는 벤처투자법 개정을 통해 CVC의 투자 회수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부담을 완화하는 데 초점을 줬다. 벤처투자회사가 투자한 기업이 향후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에 포함될 경우 적용하던 5년 내 매각 의무를 폐지했다. 또 CVC 투자 기업이 사후적으로 동일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에 편입될 경우 지분 처분 유예기간 9개월을 부여하도록 했다. 이는 오는 7월 부터 시행 예정이다.

중기부 관계자는 “오픈 이노베이션을 통한 전략적 투자도 활성화될 수 있도록 오픈이노베이션 펀드 운영 등도 추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업계는 규제 완화 논의가 실제 제도 개선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 업계 관계자는 “게임사와 K뷰티 업계에서도 CVC 설립을 검토하는 곳들이 있는 것으로 안다”며 “정부의 규제 개선 의지가 희망고문으로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실제 입법과 제도 개선으로 이어져야 기업들도 투자 결정을 내릴 수 있다”고 말했다.

성현희 기자 sungh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