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교육 현장을 가다(下)] 포도밭이 AI 연구실로…日 야마나시대, 지역문제 푸는 실전형 AI 교육

쇼우 양 마오 교수의 랩실에서 개발 중인 AI·AR 포토 가지치기 기술 (사진=쇼우 양 마오 교수 랩실 홈페이지 갈무리)
쇼우 양 마오 교수의 랩실에서 개발 중인 AI·AR 포토 가지치기 기술 (사진=쇼우 양 마오 교수 랩실 홈페이지 갈무리)

#5월 말 찾은 야마나시대학교 공학부 3 연구동. 마오 교수 연구실 한편에 설치된 대형 모니터에는 포도송이 3차원(3D) 모델이 나오고 있었다. 로봇에 달린 카메라가 포도송이를 스캔하자 AI가 상품성 향상을 위해 제거해야 할 열매를 빨간색으로 표시했다. 이후 로봇팔이 빨간 포도 알맹이 쪽으로 이동해 가지를 잘라내는 작업을 수행했다. 화면 속 3D 포도와 로봇은 실제 포도밭에서 촬영한 데이터였다.

포도 적과 작업을 돕는 인공지능(AI) 로봇, 수확 시기를 판단하는 비전 AI 모델, 증강현실(AR) 스마트 글래스까지. 일본 야마나시대학교에서는 지역 농업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 자체가 AI 교육이 되고 있었다. 학생들은 실제 현장에서 발생한 문제를 연구 주제로 삼고, 이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AI 기술을 익힌다.

준 타무라 학생이 AR 기기를 착용하고 포도 가지치기 AI 솔루션을 설명하고 있다.
준 타무라 학생이 AR 기기를 착용하고 포도 가지치기 AI 솔루션을 설명하고 있다.

◇AI로 지역 문제 푸는 대학

야마나시대 AI 교육의 특징은 지역 산업과의 밀접한 연결이다. 연구실이 개발하는 AI 역시 지역 특산업인 포도 재배에서 출발했다. 쇼우 양 마오 교수와 히로미츠 니시자키 교수 연구팀은 포도 적과 작업과 수확 시기 판단을 지원하는 스마트농업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AI가 숙련 농부의 작업 방식을 학습해 작업 지침을 제공하고, 향후에는 로봇이 직접 작업을 수행하는 단계까지 구현하는 것이 목표다.

이같은 연구 배경에는 일본 사회가 직면한 현실 문제가 있다. 일본 농업은 고령화와 인력 부족이 심각하다. 교수진에 따르면 일본 농부 평균 연령은 70세에 가깝다. 포도 재배처럼 숙련도가 필요한 작업은 단순 아르바이트 인력으로 대체하기 어렵다. 연구실은 AI와 로봇을 활용해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을 찾고 있다.

연구실 역시 '실제 문제 해결(Real Problem Solving)'을 핵심 교육 철학으로 내세우고 있다.

마오 교수는 “학생들에게 수학과 이론부터 가르치면 동기부여가 어렵다”며 “실제 문제를 보여주면 학생들은 스스로 필요한 기술과 이론을 찾아 배우게 된다”고 말했다.

마오 교수 랩실의 대학원생인 준 타무라(26세)는 현재 포도 적과 작업을 지원하는 AR 기반 스마트농업 시스템을 연구하고 있다. AI가 포도송이를 분석해 제거해야 할 열매를 표시하는 기술이다. 숙련 농부의 경험을 디지털화해 초보자도 작업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목표다.

타무라 학생은 “일본 농업 현장에는 심각한 고령화가 진행 중이라 젊은 인력을 가르칠 숙련 농부도 부족한 상황”이라며 “AI와 AR 기술을 활용해 경험이 없는 사람도 농작업을 수행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이같은 연구 주제를 선택했다”고 말했다.

타카히로 마쓰무라 학생이 직접 개발한 후르츠파크 AR 게임 애플리케이션을 소개하고 있다.
타카히로 마쓰무라 학생이 직접 개발한 후르츠파크 AR 게임 애플리케이션을 소개하고 있다.

또 다른 학생인 타카히로 마쓰무라(23)는 AI 기반 영상처리 기술을 활용해 나무와 식물을 정확하게 분류하는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해당 연구는 AR 기반 관광·교육 콘텐츠에도 적용되고 있다.

실제로 지역 유명 관광지인 후르츠파크에서 쓰이는 AR 게임 애플리케이션(앱)을 개발한 바 있다. 아이들은 실제 공원에서 특정 과일 나무를 찾아 가상의 열매를 수확한 뒤 이를 캐릭터의 먹이로 사용하며 성장 과정을 체험할 수 있다.

타카히로 마쓰무라는 “AI와 AR 기술을 활용해 지역 관광과 교육에 도움이 되는 서비스를 만들고 싶었다”며 “장기적으로는 AI를 활용한 나만의 사업을 만들고 지역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고 밝혔다.

학생들이 연구하는 주제는 논문을 위한 논문이 아니라 지역 산업과 직접 연결된다. 관광, 농업, 지역 활성화 같은 현실 문제가 연구의 출발점이 된다.

◇캠퍼스 아시아로 본 한·일 AI 교육

야마나시 대학은 AI기술과 문화 교류를 위해 한국 교육부, 일본 문부과학성, 중국 교육부가 공동으로 주관하는 캠퍼스 아시아(CAMPUS Asia)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CAMPUS Asia는 한국·중국·일본 대학 간 학생 교류와 공동 학위 과정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야마나시대학교와 국립부경대학교를 비롯한 참여 대학들은 AI를 핵심 분야로 설정하고 공동 인재 양성을 추진하고 있다.

학생들은 자연스럽게 서로의 강점을 배우고 있었다. 일본 학생들은 한국의 국제성과 경쟁적인 연구 분위기를 경험했고, 한국 학생들은 일본의 토론 중심 문화와 문제 해결형 연구 방식을 경험했다.

오혜림 학생이 한국과 일본의 교육 방식 차이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오혜림 학생이 한국과 일본의 교육 방식 차이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부경대학교와 야마나시대학교 복수학위 과정에 참여 중인 오혜림 학생(23)은 현재 애플 비전 프로(Vision Pro)를 활용한 손 추적 기반 휴머노이드 로봇 제어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당초 반년 일정으로 일본에 왔지만 연구 환경이 자신과 잘 맞는다고 판단해 프로그램 연장을 선택했다.

오 학생은 “한국은 논문과 선행연구를 통해 기초적인 학문 기반을 다지는 느낌이라면 일본은 실제 연구를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에 더 집중하는 분위기”라며 “여기서는 2주에 한 번씩 세미나를 열어 연구 진행 상황을 발표하고 토론한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 연구실 문화의 장점으로 토론과 세미나를 꼽았다.

오 학생은 “혼자 연구하다 보면 잘못된 방향으로 갈 수도 있는데 교수와 학생들이 함께 토론하며 계속 피드백을 준다”며 “연구 상황을 정기적으로 발표해야 하기 때문에 게을러질 수 없고, 다른 연구를 하는 학생들의 발표를 들으며 새로운 아이디어도 얻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연구 주제를 구체화하는 방식에서도 차이를 느꼈다.

그는 “한국에서는 휴머노이드를 제어한다는 큰 방향만 있었는데 일본에 와서는 포도 수확이라는 실제 문제를 만났다”며 “모방 학습을 활용해 무엇을 어떻게 제어할 것인지 구체적인 목표를 정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반대로 일본 학생들은 한국에서 다른 강점을 발견했다. 마쓰무라는 한국 체류 기간 동안 연구에 대한 태도가 달라졌다고 설명했다.

그는 “연구 의욕이 높은 학생들과 교류하면서 더 열심히 연구해야겠다는 자극을 받았다”며 “특히 한국 친구들이 논문을 체계적으로 읽으며 공부한다는 점을 배울 수 있는 등 글로벌 연구 환경을 경험할 수 있었던 것이 가장 큰 수확”이라고 강조했다.

일본 야마나시현에 위치한 후르츠파크에서 구동되는 AR 게임 애플리케이션. (사진=야마나시대학)
일본 야마나시현에 위치한 후르츠파크에서 구동되는 AR 게임 애플리케이션. (사진=야마나시대학)

◇기술보다 문제…미래 AI 인재의 조건

서로 다른 교육 방식을 경험했지만, 이들이 긍정적으로 평가한 경험은 한 가지 공통점으로 수렴했다. AI 기술 자체보다 실제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하는 능력이 더 중요하다는 점이다. 한국은 산업 연계와 국제적 연구 환경, 일본은 지역 문제 해결형 교육이라는 강점을 가지고 있다.

마오 교수는 “AI 시대에 중요한 것은 단순히 기술을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이 아니라 현실의 문제를 이해하고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라며 “미래 AI 인재는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과 소통하며 새로운 문제를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손지혜 기자 j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