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라클의 제품 가격 인상이 국내 엔터프라이즈 인프라 시장의 예산 운용과 시스템 전환 전략에 변수로 부상했다. 대기업과 금융, 공공기관 핵심 시스템의 오라클 의존도가 높은 만큼, 정보기술(IT) 시장 전반에 작지 않은 파장을 미칠 전망이다.
가장 먼저 영향이 예상되는 곳은 공공 시장이다. 공공 사업은 국가 예산 편성 지침에 따라 전년도에 이미 고정된 예산안이 책정되는 특성을 지닌다. 오라클의 전 제품군과 유지보수 비용이 일제히 인상됨에 따라, 발주를 앞두거나 현재 진행 중인 공공 정보화 사업은 예산 압박에 직면하게 됐다. 정해진 총액 예산 한도 내에서 늘어난 오라클 라이선스와 유지보수 비용 증가분을 흡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공공사업의 예산 증액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점이다. 결국 고정된 총액 내에서 오라클 제품의 인상분을 마련해야 하므로, 사업 내 포함된 다른 국내 중소 소프트웨어(SW) 도입 규모를 축소하거나 개발 용역비를 조정하는 등의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따른다. 외산 인프라 비용의 인상 부담이 국내 중소 IT 협력사로 전가되는 고질적인 구조적 문제를 다시금 촉발하는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민간 시장 역시 이번 가격 인상의 사정권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기업의 오라클 라이선스 및 유지보수 계약 기간은 대개 연 단위로 갱신된다. 계약 시점의 차이만 있을 뿐, 사실상 국내 엔터프라이즈 환경의 모든 기업이 차례대로 이번 가격 인상 적용을 받게 되는 구조다. 이에 따라 매년 고정비 성격으로 지출되던 IT 운영 비용의 동반 상승이 확실시되면서, 민간 기업 사이에서도 비용 방어를 위한 대안 검토가 불가피하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이미 다수의 기업이 오픈소스 기반 시스템이나 국산 솔루션 등 타사 시스템으로의 전환 검토를 구체적으로 살펴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오픈소스 시스템은 초기 라이선스 비용이 발생하지 않는 데다 클라우드 환경으로의 확장이 쉬워 운영 비용 효율성을 크게 높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최근 오픈소스 공급망의 보안 취약점 리스크가 새로운 변수로 관리되고 있으나, 비용 절감과 특정 벤더 종속성 완화라는 실익 측면이 크게 작용하면서 기업의 전환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고가의 정품 유지보수 계약을 대체해 관리 비용을 대폭 낮출 수 있는 '제3자 유지보수' 서비스 시장의 확장세도 뚜렷해질 것으로 관측된다. 전문적인 제3자 유지보수 서비스 기업으로 계약 체계를 전환함으로써, 이번 가격 인상으로 발생한 추가 비용 부담을 상쇄하려는 전략적 움직임도 구체화할 전망이다.
한 기업 IT 담당자는 “국내 엔터프라이즈 환경에서 오라클의 시장 점유율이 워낙 공고했기 때문에 특정 벤더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려는 시도는 이전부터 지속해 이어져 왔다”며 “이번 가격 인상은 오픈소스와 국산 솔루션을 중심으로 기업의 IT 인프라가 다변화되는 효율화 과정을 가속하는 동인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최호 기자 snoop@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