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동차 산업의 판이 뒤집히고 있다. 단순한 기술 경쟁이 아니다. 산업의 지형이 재편되는 '구조적 전환'이 진행 중이고, 그 중심에 중국이 있다. 전기차, 소프트웨어정의자동차(SDV), 자율주행, 배터리 등 핵심 기술에서 중국은 혁신적인 자동차 산업 국가가 되었다. 이 사실을 한국이 직시하지 않으면, 우리 자동차 산업은 '빈 껍데기 위기(empty shell risk)'를 맞을 수 있다.
중국이 처음부터 전기차 강국은 아니었다. 2000년대 초, 중국의 자동차 산업은 독일·일본·미국의 내연기관 기술에 크게 뒤처진 후발주자였다. 수십년간 폭스바겐, 토요타, GM과 합작 공장을 운영했지만 자국 브랜드의 내수시장 점유율은 20%에도 미치지 못했다.
이때 등장한 인물이 중국 전기차의 아버지 완강(万?)이다. 독일에서 자동차 공학 박사학위를 받고 10여년간 아우디에서 일하다 2001년에 귀국한 그는 중국 과학기술부 산하 전기차 국가 프로젝트를 총괄하며 중국 지도부를 설득했다. 핵심 논지는 명확했다. “내연기관 분야에서 독일과 일본을 따라잡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전기차는 아직 누구도 패권을 장악하지 못하고 있다. 지금 전기차에 국가 역량을 집중한다면, 중국은 선두로 도약할 수 있다.”
이 주장은 받아들여졌다. 2001년 중국은 전기차 기술을 제10차 5개년 계획의 핵심 국가 연구과제로 선정했다. 2007년 완강은 마침내 과학기술부 장관으로 임명돼 이 전략을 완성시켰다. 내연기관을 건너뛰고 전기차로 직행한다는 이른바 기술도약(leapfrogging) 전략이 국가 의지로 실천된 것이다.
이 도박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오늘날 중국은 전 세계 전기차의 약 62%를, 전기차 배터리의 약 77%를 생산한다. CATL은 세계 배터리 시장의 37%를 점유한 독보적 1위다. 테슬라·현대기아·벤츠·BMW 모두 CATL의 배터리를 사용한다. 2023년 BYD는 테슬라를 제치고 전기차 판매량 세계 1위에 올랐다.
가격 경쟁력은 더 충격적이다. 중국 전기차의 평균 판매가격은 경쟁국 대비 절반 수준이다. BYD의 주력 모델은 보조금 없이도 내연기관차와 충분히 경쟁할 수 있다. 이는 단순한 저가 전략이 아니다. 20년에 걸친 배터리 소재·셀·팩 기술의 내재화, 대규모 제조 생태계의 수직 계열화, 그리고 국가가 육성한 규모의 경제의 결과다.
중국의 야심은 하드웨어(HW)에 머물지 않는다. SDV 분야에서도 세계를 선도하고 있다. 화웨이의 차량용 소프트웨어(SW) 플랫폼 '하모니OS 오토모티브'는 양산 적용 중이며, BYD·샤오펑 등이 자체 개발한 SW 플랫폼은 자동차를 재정의하고 있다.
자율주행 분야에서는 바이두의 아폴로(Apollo) 플랫폼이 이미 세계 최대 규모의 로보택시 상용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으며, 화웨이·샤오펑·리오토 등도 레벨 2 이상의 자율주행 기능을 양산차에 적용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2015년 '중국 제조 2025'를 통해 2025년까지 제한된 지역에서의 자율주행 상용화를, 2035년까지 본격적인 자율주행 시대를 열겠다는 로드맵을 제시했으며 이는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다.
자율주행의 핵심 자산인 주행 데이터에서도 중국은 압도적이다. 세계 최대의 자동차 시장에서 수백만 대의 전기차가 매일 데이터를 수집하고 있으며, 이 데이터는 인공지능(AI) 모델 학습과 자율주행 알고리즘 고도화에 직결된다. 온디바이스 AI 추론 기술 역시 중국 기업들이 빠르게 내재화하고 있다. 이를 통해 클라우드 의존도를 낮추면서도 실시간 판단 성능을 높이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중국의 혁신이 전기차와 SW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은 충격이다. 기계 기술의 정점으로 여겨지던 내연기관·하이브리드 엔진 분야에서도 중국은 독일을 앞지르기 시작했다. BYD의 5세대 듀얼 모드 하이브리드 시스템은 복합 연비 효율에서 토요타 프리우스와 BMW를 능가하는 수준이다.
샤시 기술도 마찬가지다. X-by-wire 기술을 기반으로 한 능동형 서스펜션(active suspension)의 개발을 통해 독일 프리미엄 브랜드가 독점하던 고급 메카트로닉스 기술을 잠식하고 있다. 이미 복수의 독일 자동차 업체들이 중국 기업으로부터 전장 부품과 SW를 역수입하는 상황이 현실화됐다.
이러한 중국 자동차의 부상에 맞서 미국과 유럽연합(EU)이는 관세라는 방어막을 치기 시작했다. 미국은 2024년 중국산 전기차에 대한 관세를 기존 25%에서 100%로 4배 인상했다. EU도 추가 관세를 부과했다.
그러나 관세 정책은 근본적인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미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국가에서 관세 정책이 흔들리고 있다. 같은 성능의 자동차를 절반 가격에 구입할 수 있는 선택지를 소비자가 외면할 이유가 없다. 자국의 자동차 산업 경쟁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관세는 결국 소비자에게 비용을 전가하는 것에 불과하다. 관세는 시간을 벌어줄 뿐, 기술 격차를 메우지는 못한다.
한국 자동차 산업도 이 거대한 전환의 소용돌이 속에 있다. 현대기아차는 최근 판매량 기준 세계 3위로 선전하고 있으나, 그 이면에서 구조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핵심 부품의 중국 의존도가 높아지고 있고, 배터리 소재·셀 기술에서 중국과의 격차는 좁혀지지 않고 있다.
그 뿐만 아니라, 전기차 구동 모터, 인버터, 파워 반도체, 차량용 고성능 반도체, 자율주행 AI SW 등의 내재화에서도 고전하고 있다.
그 결과 완성차 기업들이 외형은 유지하지만 핵심 기술을 중국에 의존하게 된다는 우려가 부각되고 있다. 이것이 바로 '빈 껍데기 위기'다. 중국이 20년 전 내연기관을 건너뛰는 결단을 내렸던 것처럼, 한국도 지금 전략적 결단이 필요하다. 관건은 속도와 집중이다.
첫째, SDV와 차량용 SW 플랫폼 기술의 내재화가 시급하다. 자동차가 SW로 정의되는 시대에 운용체계(OS), 미들웨어, OTA 업데이트 인프라, AI 추론 엔진 등 핵심 SW 스택을 자체 개발하지 못한다면 기술 주권은 없다. 대학과 연구소, 기업이 연계된 산학연 협력 체계를 차량용 SW에 특화된 형태로 재편해야 한다.
둘째, 피지컬 AI와 자율주행 AI, 나아가 차량용 에이전틱 AI 기술에서 독자적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 차량용 고성능 AI 반도체, 실시간 추론 SW 기술은 미래 자동차 산업에 근간이 되는 역량이다. 중장기 관점에서 이 분야에 대한 집중적인 연구개발(R&D) 투자와 인재 양성이 필요하다.
셋째, 국내 자동차 부품 생태계의 전환을 지원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내연기관 부품에서 전동화·전장화·SW화 부품으로의 전환은 기업 개별의 노력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렵다. 정부가 전환 자금, 기술 컨소시엄, 표준화 지원을 주도해야 한다.
완강이 2001년 내린 결론을 한국의 관점에서 다시 써야 할 때다. SW와 AI 기반의 미래 자동차 경쟁에서 새로운 기회를 봐야 한다. 중국이 전기차로 내연기관을 건너뛰었듯, 한국은 SDV와 피지컬 AI로 전동화를 건너뛰는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
지금 한국 자동차 산업이 마주한 질문은 단순하다. 빈 껍데기가 될 것인가, 혁신의 주체가 될 것인가? 답을 내릴 시간이 많지 않다.

홍성수 자율주행차 M.AX 얼라이언스 위원장·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 sshong@redwood.snu.ac.kr
〈필자〉홍성수 교수는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이자 한국공학한림원 정회원으로, 국내에서 실시간 임베디드 시스템과 미래자동차 SW 분야를 개척해온 권위자다. 1995년 서울대 부임 이래 국내 최초로 실시간 운용체계인 Velos/Neos를 산업화해 KAI의 T-50 고등훈련기에 적용했다. 삼성전자에서 또다른 운용체계인 SMK를 성공적으로 산업화시킨 바 있다. 이를 통해 임베디드 시스템 분야에서 독보적인 기술력을 입증해 왔다. 학문적 성과를 넘어 한국자동차공학회 자동차반도체 및 SW부문 설립자로서 국내 모빌리티 산업 생태계의 기틀을 마련했다. 현재 산업통상부 제조업 AX 얼라이언스 AI 미래차 분과 위원장으로 활동하며 제조업 AI 전환을 위한 국가 미래 전략 수립에 기여하고 있다. 학교법인 산업기술대 이사로도 활동하면서 공학교육의 혁신에 기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