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개발은행(ADB)이 캄보디아의 대규모 배터리에너지저장장치(BESS) 구축을 지원하며 동남아 재생에너지 전환에 속도를 낸다. 발전설비 확충을 넘어 전력망 안정화를 위한 에너지저장장치(ESS) 투자가 본격화하면서 국내 배터리 기업과 전력기기 업체들의 동남아 시장 진출에도 새로운 기회가 열릴 것이라는 기대가 나온다.
ADB는 24일(현지시간) 캄보디아의 재생에너지 전환을 지원하기 위해 총 6344만달러 규모의 금융 패키지를 승인했다고 밝혔다. 사업은 캄보디아 국영 전력회사인 EDC가 추진하며, 남부 타케오 지역에 250㎿, 500㎿h 규모의 유틸리티급 BESS를 구축하는 것이 핵심이다.
재원은 ADB 차관을 비롯해 아시아개발기금(ADF), 녹색기후기금(GCF), 영국-아세안 녹색금융기금 등이 공동으로 조성한다. 개발금융기관과 기후기금이 함께 참여한 만큼 동남아 재생에너지 인프라 투자 확대의 시금석이 될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BESS는 태양광과 풍력 등 재생에너지로 생산한 전력을 저장했다가 전력 수요가 많은 시간대에 공급하는 설비다. 재생에너지 보급이 확대될수록 출력 변동성을 흡수할 수 있는 저장장치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세계 각국은 발전소 건설과 함께 ESS를 필수 전력 인프라로 구축하고 있다.
캄보디아 역시 태양광 발전 확대에 속도를 내고 있지만 송배전망의 유연성이 부족해 재생에너지 수용 능력에 한계를 보여왔다. 이번 사업은 남는 태양광 전력을 저장해 피크 시간대에 공급함으로써 계통 안정성을 높이고, 향후 재생에너지 비중을 더 확대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데 목적이 있다.
업계는 이번 사업이 단순히 한 건의 프로젝트를 넘어 동남아 ESS 시장 확대의 신호탄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ADB가 사업성을 검증하고 금융 지원에 나설 경우 후속 프로젝트와 민간 투자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필리핀, 태국 등도 재생에너지 확대와 함께 ESS 도입을 추진하고 있어 동남아 시장은 향후 빠르게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 기업에도 새로운 사업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LG에너지솔루션과 삼성SDI, SK온 등은 글로벌 ESS용 배터리 공급을 확대하고 있으며, LS일렉트릭과 효성중공업, HD현대일렉트릭 등도 변전·송배전 설비를 포함한 전력망 사업을 적극 공략하고 있다. 배터리부터 전력기기, 계통 솔루션까지 국내 기업들이 강점을 가진 분야인 만큼 동남아 전력 인프라 투자 확대의 수혜가 기대된다는 분석이다.
홍승관 고려대 에너지환경대학원장은 “재생에너지 확대는 발전소를 많이 짓는 것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며 “전력을 저장하고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ESS가 갖춰져야 재생에너지 비중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ADB가 개발도상국 전력망 투자에서 ESS를 핵심 인프라로 채택한 것은 동남아 시장이 본격적으로 열리기 시작했다는 신호로 볼 수 있다”고 부연했다.
이준희 기자 jh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