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 퇴근 근육과 두근 근육…약점이라 불리던 기질이 강점이 되는 시대

한국전기연구원 전력ICT연구센터 한승문 책임연구원.
한국전기연구원 전력ICT연구센터 한승문 책임연구원.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근육은 퇴근일까 두근일까. 말장난 같지만 퇴근은 하루를 끝내는 힘이고 두근은 무언가에 끌릴 때 가슴이 뛰는 신호다. 그런데 인공지능(AI) 시대에 두각을 나타내는 사람들을 보면 의외로 두근 쪽 근육이 발달한 이들이다. 성실히 일을 마치고 나가는 능력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무언가에 자꾸 끌려가는 쪽이다.

최근 한 스타트업 대표가 실험 결과를 공개했다. 직원 40명 전원에게 AI 코딩 도구 계정을 주고 6개월간 의무적으로 쓰게 했더니 누가 잘 쓰고 못 쓰는지 격차가 시간이 갈수록 복리처럼 벌어졌다. 그런데 두각을 나타낸 사람들의 면면이 흥미로웠다.

그가 꼽은 승자들은 예전 같으면 면접에서 감점당했을 법한 부류였다. 한 분야를 깊게 파기보다 이것저것 얕고 넓게 아는 사람. 한 가지에 집중하지 못하고 여러 일을 동시에 벌이는 사람. 한자리에 진득하게 못 앉아 새 도구가 나오면 일단 깔고 보는 사람들이었다. 학교에서는 산만하다고, 직장에서는 끈기가 없다고 지적받던 바로 그 기질이다. 한 가지를 오래 붙드는 성실함이 미덕으로 대접받던 시절에는 분명 손해 보던 사람들이었다.

이 기질들이 왜 무기가 됐을까. AI는 한 우물을 대신 파 준다. 다만 어느 우물을 팔지, 옆에 더 좋은 우물은 없는지 둘러보는 일은 사람의 몫으로 남는다. 넓게 아는 사람은 분야를 가로지르며 질문을 연결한다. 산만한 사람은 여러 갈래를 동시에 시도한다. 새것에 잘 빠지는 사람은 누가 시키기 전에 최신 도구를 먼저 손에 익힌다. 깊이는 기계가 메우고 넓이와 빠른 적응은 사람이 가져가는 구도다. 한 분야만 깊게 아는 전문성은 어느새 누구나 불러내는 흔한 자원이 됐다. 그 자원들을 엮어 새 질문을 만드는 감각이 귀해진 셈이다.

실제로 성장과 가장 밀접했던 지표는 '하루에 던진 질문 건수'였다고 한다. 그렇다고 해서 책상에 오래 붙어 있으라는 뜻이 아니다. 같은 한 시간이라도 한 번 묻고 마는 사람과 궁금해서 열 번 되묻는 사람의 차이다. 헬스장에서 무게를 들어 올린 횟수가 근육을 키우듯 키워 주는 것은 머문 시간이 아니라 시도의 횟수다. 여기에 '왜' '쉽게 설명해 달라' '근본 원인이 뭐냐'를 자주 묻고 한 주제를 끝까지 캐는 사람이 더 빠르게 성장했다.

이 특성들을 한 단어로 줄이면 결국 '재미'다. 돈이 될지부터 따지는 대신 신기해서 일단 만져보고 막히면 또 묻는 사람. 가만히 못 있는 호기심이 곧 질문의 횟수가 되고 그 횟수가 복리의 원금이 된다. 의무감으로 마지못해 켜는 사람은 좀처럼 그 원금을 모으지 못한다. 같은 도구를 같은 기간 똑같이 쥐여 줬는데도 결과가 갈렸다는 점은 곱씹어 볼 만하다.

그러니 두근 근육은 야근으로 자라는 것이 아니다. 정시에 퇴근해도 출·퇴근길 휴대폰으로 새 도구를 한 번 켜 보는 사람의 안에서 따로 자란다. 다음에 무엇이 올지, 어떤 도구가 판을 바꿀지는 그렇게 자란 사람이 먼저 알아챈다. 어제까지 약점이라 불리던 산만함과 못 말리는 호기심이 오늘은 가장 쓸모 있는 근육이 되어가고 있다.

한국전기연구원 전력ICT연구센터 한승문 책임연구원 smhan@keri.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