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반도체 성장거점의 전국화, 이제는 실행이 중요하다

인공지능(AI) 혁명의 중심에 놓인 대한민국이 지금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천문학적인 반도체 이익을 어떻게 생산적으로 활용하느냐는 논쟁이 이어지는 가운데 정부의 청사진이 제시됐다.

29일 발표된 '대한민국 대도약 3대 메가 프로젝트' 구상은 반도체, 피지컬 AI, AI 데이터센터를 축으로 민관 협력의 대규모 투자를 이끌어내 1%대로 추락한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리면서, AI 혁명이 재편하는 글로벌 산업 질서에서 우리의 위치를 선점하겠다는 전략이다.

주요국은 이미 반도체 승자독식의 미래를 위한 사활적 투자 경쟁에 돌입했다. 미국반도체협회에 따르면 2020년 이후 미국의 반도체 투자는 993조원에 달하며, 이는 한국과 대만 중심의 글로벌 반도체 생산 지형을 크게 바꿀 수 있는 규모다. 중국 정부의 집념도 만만치 않다. 일명 반도체 '빅펀드'로 상징되는 직접 지원액만 2014년 이후 약 130조원에 달하고, 지방정부 보조금과 조세 지원까지 합산하면 훨씬 더 커진다. 한 때 뒤처졌던 일본도 라피더스 한 기업에만 22조원의 정부자금을 쏟아붓고 있다. 반도체 슈퍼사이클의 호황에 안주하다가는 그나마 가진 우위마저 내줄 수 있으며, 이는 AI 시대 산업 생태계 주도권 경쟁에서 소외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따라서 이번 프로젝트의 적시성과 방향성은 평가할 만하다. 반도체 호황이 한국 산업 구조를 고도화하는 기회로 연결되려면, 축적된 이윤이 차세대 팹 건설 소부장 RD 첨단 패키징 투자로 빠르게 선순환돼야 한다. 총 880조원 규모의 민간 투자를 설계에 담고 반도체 특별회계로 공공 재원까지 결합한 이번 프로젝트는 선순환의 구조화를 시도했다는 점에서 유의미한 산업정책 접근이다.

이번 프로젝트에서 주목할 시도는 반도체 성장거점의 전국화다. 균형발전을 앞세운 접근이 아니냐는 논란도 있지만, 한정된 선택지 속에서 내린 불가피한 결론의 측면이 강하다. 수도권은 이미 전력 용수 부지 한계에 도달했고, 집중에 따른 리스크 분산의 필요성도 커졌다. AI 경쟁에서 가장 중요한 투자의 '속도'도 고려해야 한다. 대만이 신주 타이중가오슝에 팹을 분산 구축해 TSMC의 생산 탄력성을 극대화한 것처럼, 한국도 반도체 생산 지형을 전국화함으로써 수요 급증과 경쟁국 추격에 동시에 대응하는 구조를 만들어갈 필요가 있다.

다만, 반도체 성장거점의 전국화는 국가 역량이 총결집돼야 가능한 일이다. 용인 산단 일정을 최대 12년 단축하고 서남권에 팹 4기를 부지가 준비되는 대로 신속히 확충하겠다는 목표는, 전력 용수 도로 인프라 공급이 기업의 투자 일정과 정밀하게 맞물려야 달성할 수 있다. 과거 클러스터 사업들이 인프라 지연으로 어려움을 겪은 전례를 감안하면, '약속된 인프라'와 '실제 착공 가능한 인프라' 사이의 간극 관리가 프로젝트 신뢰의 핵심이다. 아울러 '남방 한계선'이라는 말까지 나오는 인재의 비수도권 기피 현상을 극복할 대책도 필요하다.

기업은 성공의 가능성을 봐야 뛰어든다. 이번에 적극적 투자계획으로 화답한 이유도 인프라와 지원을 잘 챙기겠다는 정부의 약속 때문이다. 이제는 정부가 기업의 위험 부담을 줄이고 속도감 있는 실천력을 보여줘야 할 때다.


한국은 지금 기회와 위기가 동시에 압축된 갈림길에 서 있다. 반도체 초호황 국면을 활용할 수 있는 창은 생각보다 좁으며, 빠르게 닫힐것이다. “의도가 아니라 방향이 종착지를 정한다.” 이왕에 방향을 잡은 만큼 불필요한 논란을 넘어 이번 프로젝트의 디테일을 잘 챙겨 실행으로 완성하기를, 그리하여 이 시대의 산업 대도약이 다음 세대의 성장 자산으로 남기를 기대한다.

권남훈 산업연구원장
권남훈 산업연구원장

권남훈 산업연구원(KIET) 원장 namhoon@kiet.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