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대표 음료기업 와하하(Wahaha)가 추진하던 로봇 사업을 정리하고, 전자제품 위탁생산 세계 최대 기업인 폭스콘(Foxconn) 산하 일부 공장이 로봇 사업을 중단한 사례가 주목받고 있다. 중국 IT 전문매체 36Kr는 최근 'AI 파도 속에 갇힌 전통 거인들'이라는 기사에서 이들 사례를 분석하며, 일찍부터 AI를 외치던 전통기업들이 왜 오히려 후퇴하고 있는지를 조명했다.
36Kr가 제기한 핵심 문제는 단순하다. 많은 전통기업이 자동화와 AI를 같은 개념으로 오해했다는 것이다.
과거 제조업과 전통 산업에서는 생산성 향상을 위해 자동화 설비를 적극 도입해 왔다. 일부 기업은 생산 라인에 로봇팔을 설치하거나 기계에 디지털 인터페이스를 추가한 뒤 이를 AI 전략으로 포장했다. 그러나 이는 대부분 정교한 자동화 시스템일 뿐, 스스로 데이터를 학습하고 상황을 이해하며 예외 상황에 대응하는 AI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문제는 이러한 개념적 혼동이 투자 판단으로 이어졌다는 점이다. AI라는 이름 아래 대규모 투자가 이뤄졌지만 기대했던 성과가 나타나지 않자 사업 축소와 철수가 이어지고 있다. 기술의 한계라기보다 기술에 대한 이해 부족이 더 큰 원인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특히 중국에서 이러한 사례가 등장했다는 점은 의미가 크다. 중국은 최근 수년간 AI를 국가 전략 산업으로 육성하며 막대한 자본과 정책 지원을 집중해 왔다. 지방정부와 기업, 투자시장이 모두 AI 서사를 강하게 밀어붙이는 환경 속에서 “AI를 한다”는 선언 자체가 기업 가치와 투자 유치, 정부 지원과 연결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 결과 실제 기술 역량보다 홍보가 앞서는 현상도 나타났다. AI라는 용어가 생산 현장 현실보다 먼저 소비되면서 자동화 설비 투자까지 AI 혁신으로 포장되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 36Kr는 바로 이 같은 허상을 지적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전통기업이 AI 전환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는 이유가 단순히 기술 복잡성 때문만은 아니라고 본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AI를 장비 구매 문제로 바라보는 시각이다.
실제 AI는 데이터 수집과 관리, 알고리즘 개발, 지속적인 모델 학습, 현장 피드백 체계 구축, 조직 운영 방식 변화 등이 함께 이뤄져야 효과를 낼 수 있다. 기계 한 대를 들여놓는다고 AI 역량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준비 없이 AI 전환을 선언할 경우 기업에는 고가의 설비와 조직 혼란만 남을 가능성이 크다.
이 같은 문제는 한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제조업 경쟁력을 기반으로 성장한 한국 역시 스마트팩토리와 산업 AI, 물리 AI에 대한 관심이 높다. 하지만 생산성 향상을 위한 자동화와 학습 기반 지능화 시스템은 서로 다른 개념이다.
특히 산업 현장에서 AI 활용이 확대될수록 공정 자동화와 AI 기술을 명확히 구분하는 역량이 중요해지고 있다. 단순 반복 작업을 자동화하는 것과 데이터를 기반으로 스스로 판단하고 최적화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은 전혀 다른 과제이기 때문이다.
중국 전통기업들의 시행착오는 결국 AI 전환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AI를 홍보 문구로 활용하는 것은 쉽지만, 조직 구조와 데이터 체계, 운영 모델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일은 훨씬 어렵고 비용도 많이 든다. 실패 사례가 자주 등장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업계에서는 지금 필요한 것이 무조건적인 AI 낙관론도, AI 회의론도 아니라고 지적한다. 무엇이 자동화이고 무엇이 AI인지, 기업의 과제가 단순한 공정 최적화인지 아니면 학습형 시스템 도입인지 냉정하게 구분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것이다.
36Kr가 소개한 전통기업들의 후퇴는 AI 기술 자체의 실패라기보다 AI를 바라보는 개념과 전략 실패에 가깝다. AI 첫 번째 물결 속에서 길을 잃은 기업은 적지 않지만, 그 원인을 정확히 이해하는 기업만이 다음 변화의 파도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전자신문과 36케이알이 공동 기획한 기사입니다.
김현민 기자 minki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