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형의 혁신의기술] 〈57〉AI 네이티브(Native), 우리는 어떤 시대에 살고 있는가(하)

김태형 단국대 대학원 데이터지식서비스공학과 교수·정보융합기술·창업대학원장
김태형 단국대 대학원 데이터지식서비스공학과 교수·정보융합기술·창업대학원장

“도시는 모든 사람을 위해 무언가를 제공할 수 있다. 다만 모든 사람이 함께 만들 때만 그렇다.” 도시학자 제인 제이콥스가 남긴 통찰이다. 2026년 행정안전부가 지정한 인구감소지역은 전국 89개 시·군구에 이른다. 이는 '국가균형발전 특별법'에 따라 5년마다 재지정되는 법정 지표로, 특정 정권과는 무관하다. 판단 기준도 단기 등락에 흔들리지 않는다. 해당 내용은 최근 5년의 변화뿐 아니라 20년간의 흐름까지 함께 살펴, 일시적 인구 이동이 아니라 구조적 추세인지를 가려낸다. 서울을 제외한 전국에 걸쳐 있고, 수도권 안에서도 도심 공동화를 겪는 자치구 일부가 포함돼 있다.

이 89곳 안에서도 형편은 균일하지 않다. 행정안전부 지정 기준으로 특별지원지역이 40곳, 우대지원지역이 49곳이다. 국회예산정책처 분석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이들 지역의 인구증감률은 -12.5%, 나머지 지역은 0.1%다. 이 11.4%포인트 차이가 병원, 학교, 대중교통이 함께 줄어드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수도권 대형병원 쏠림과 지방 의료 인력 부족은 지역·필수·공공의료 공백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이에 정부는 이미 해법을 만들어 실행하고 있다. 2026년 7월, 국가AI전략위원회와 보건복지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함께 낸 'AI 기본의료 전략'은 전국 보건소와 취약지 동네의원에 'AI진료지원시스템'을 보급하고 응급환자의 이송부터 병원 선정까지 인공지능(AI)이 지원하는 '공공의료 고속도로'를 구축하기로 했다. 통합돌봄 서비스도 지난 3월 전국 시군구로 확대돼 4만6000명이 서비스를 받았다.

그런데 이러한 정책이 지역까지 뿌리내리려면, 국가 단위와는 조건이 다르다.

첫 번째, 연결이다. 일례로 보건소 하나, 의원 하나가 AI로 대형병원과 이어질 때, 정말 좁혀야 할 것은 거리가 아니라 판단이 늦어지는 시간이다. 이 연결이 끊기면, 아무리 좋은 시스템도 그 지역에서는 종이 위의 계획으로 남는다. 광역 단위로 큰 병원 하나만 연결하고 끝낼 게 아니라, 읍·면 단위 보건지소까지 그물을 촘촘히 짜야 하는 이유다.

두 번째는 속도다. 골든타임을 다투는 응급 이송에서는 판단을 당길 기술이 생명과 직결된다.이송 경로와 병원 선정 등 사람이 전화로 확인하던 절차를 AI가 실시간으로 대신한다. 도시에서는 몇 분 차이지만, 인구감소지역에서는 그 몇 분이 병원까지 가는 거리 전체를 좌우한다.

세 번째는 사람이다. 센서와 로봇이 아무리 늘어도, 그걸 다루고 현장을 지키는 사람이 없으면 서비스는 도달하지 않는다. 장비 예산과 인력 예산을 따로 편성하는 순간, 이 조건은 저절로 무너진다. 인프라를 늘리는 일과 그걸 지킬 사람을 늘리는 일은 '지역'이라는 층위에서는 같은 예산, 같은 결재선 안에서 함께 다뤄야 한다.

이 세 조건이 맞물릴 때, 89개라는 숫자는 결핍이 아니라 다음 방향을 가리키는 나침반이 된다. 어느 하나라도 빠지면, 나머지 둘은 서류 위에서만 완성된 시스템으로 남을 것이다. 지역 정책은 이제 병상이 몇 개인지, 장비가 몇 대인지를 세는 방식에서, 연결과 속도와 사람이라는 세 조건이 함께 갖춰졌는지를 묻는 방식으로 바뀌어야 한다. 예산을 짤 때도, 시설 하나를 놓는 예산과 그 시설을 지킬 사람의 예산을 같은 표 안에 놓고 따져야 한다는 뜻이다.

인프라가 다 갖춰진 뒤에 사람을 챙기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사람과 함께 AI를 설계하는 것', 이것이 우리가 공유해 온 '네이티브'의 의미다. 결국 혁신의 기술은 병원과 로봇을 늘리는 기술이 아니라, 도시에서 몇 시간 거리에 있든 '같은 순간에, 같은 도움을 받을 수 있게 거리를 좁히는 기술'이다. 사람이 다른 세대에서 출발해, 조직은 판단의 자리를 다시 설계하고 국가가 그 방향을 하나로 모으고 지역이 그 방향을 현장까지 데려가는 것, 이것이 진정한 AI 네이티브 시대를 통과하는 우리의 순서이지 않을까.

김태형 단국대 대학원 데이터지식서비스공학과 교수·정보융합기술·창업대학원장

  • ET Ev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