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 차이나] “신규도 중고도 없다”…中 반도체 장비업계, 공급난이 기회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투자 확대로 글로벌 반도체 제조장비 공급 부족이 심화되고 있다. 신규 장비 납기가 길어지는 데 이어 중고 장비까지 품귀 조짐을 보이면서 중국 반도체 장비업계가 새로운 전환점을 맞고 있다. 해외 장비 조달이 어려워질수록 중국산 장비 생산라인 진입이 빨라질 수 있다는 전망이다.

이번 장비 공급난은 과거 반도체 업황에 따른 단기적인 수급 불균형과 성격이 다르다. 대규모언어모델(LLM), AI 가속기, 고대역폭메모리(HBM), 첨단 패키징에 대한 투자가 동시에 확대되면서 반도체 생산능력 증설이 구조적으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생성형 AI 이미지.
생성형 AI 이미지.

글로벌 주요 반도체 업체들은 잇따라 설비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 마이크론, TSMC, 인텔 등이 메모리와 파운드리 생산능력을 늘리고 있으며, 구글 등 빅테크도 AI 데이터센터 구축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고 있다. 생산라인을 늘리는 속도가 빨라지면서 제조장비 확보가 새로운 병목으로 떠올랐다.

ASML, 애플리드 머티어리얼즈, 램리서치, 도쿄일렉트론(TEL), KLA 등 주요 장비업체도 증설에 나섰지만 단기간에 공급량을 크게 늘리기는 쉽지 않다. 장비 생산시설과 클린룸 구축에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장비를 만드는 데 필요한 반도체와 부품 공급도 불안정하다. FPGA, 드라이버IC, 고성능 CPU 등 일부 핵심 부품이 AI와 데이터센터 수요에 우선 배정되면서 장비업체 조달 부담도 커지고 있다.

HBM과 첨단 패키징 확산은 장비 제조 난도도 높이고 있다. 식각·증착·본딩 등 주요 공정에서 요구되는 정밀도가 높아지고 장비 부품 수와 조립·검증 과정도 증가하고 있다. 장비 수요가 늘어나는 동시에 장비 한 대를 생산하는 데 필요한 시간도 길어지는 구조다.

중국 반도체 업계가 특히 주목하는 부분은 중고 장비 시장이다. 신규 장비 납기가 1년 이상으로 길어지면서 중고 장비는 생산라인을 조기에 가동할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으로 떠올랐다. 중국 반도체 업체들은 그동안 해외 장비 공급 제약을 중고 장비로 보완해왔다.

하지만 중고 장비마저 공급이 줄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주요 반도체 업체들이 과거라면 외부에 매각했을 장비를 성숙공정이나 첨단 패키징 생산에 재활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생산능력 확대 과정에서 기존 장비를 내부에 계속 활용하면서 중고 장비 시장으로 유입되는 물량이 감소하고 있다.

중고 장비를 찾는 수요는 오히려 늘고 있다. 중국뿐만 아니라 인도와 베트남 등 신흥 반도체 생산기지에서도 신규 팹 건설이 추진되면서 중고 장비 확보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결과적으로 중고 장비 시장은 공급 감소와 수요 증가가 동시에 나타나는 구조로 바뀌고 있다.

중국 장비업계에는 기회가 커졌다. 그동안 중국 반도체 제조업체들은 해외 장비를 우선 도입하고 중국산 장비는 검증을 거쳐 단계적으로 투입하는 방식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신규 해외 장비 공급이 제한되고 중고 장비까지 부족해지면서 중국산 장비 우선순위가 높아지고 있다.

과거에는 '국산 장비가 해외 장비보다 경쟁력이 있는가'가 구매 판단의 기준이었다면, 이제는 '국산 장비로 생산라인을 제때 가동할 수 있는가'가 더욱 중요한 기준이 되고 있다. 중국 장비업체 입장에서는 기술을 검증받을 수 있는 시장 진입 기회가 커진 셈이다.

중국의 주요 장비업체들은 식각, 증착, 세정, 열처리, CMP, 검사·계측 등 상대적으로 국산화가 빠른 분야를 중심으로 고객사 확대에 나서고 있다. NAURA(北方华创), AMEC(中微公司), Piotech(沈阳拓荆), Hwatsing Technology(华海清科)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기업은 중국 내 반도체 생산능력 확대와 장비 국산화 흐름을 기반으로 시장 입지를 강화하고 있다.

특히 성숙공정과 메모리, 첨단 패키징 분야가 중국 장비업체의 중요한 성장 영역으로 꼽힌다. 해외 장비의 공급이 제한될수록 중국 내에서 조달할 수 있는 장비 중요성이 커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다만 시장 진입 기회가 곧 기술 경쟁력 확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노광, 고정밀 계측·검사, 이온주입 등 핵심 전공정 장비는 여전히 높은 기술 장벽이 존재한다. RF 전원, 진공펌프, 정밀 센서 등 핵심 부품의 해외 의존도도 중국 장비업계가 해결해야 할 과제다.

장비 공급난이 심해질수록 고객사 요구 수준도 높아질 전망이다. 단순히 장비를 납품하는 것보다 높은 가동률과 공정 안정성, 신속한 유지보수, 부품의 안정적 공급 능력이 중요해진다. 중국 장비업체가 이번 기회를 일시적인 매출 증가에 그치지 않고 장기적인 경쟁력으로 연결하려면 장비 자체뿐만 아니라 부품과 소프트웨어, 서비스까지 포함한 생태계 구축이 필요하다.

AI발 반도체 투자 확대가 이어지는 동안 장비 공급 부족은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신규 장비와 중고 장비가 동시에 부족해질수록 중국산 장비 시장 진입 문턱은 낮아질 수 있다. 반대로 고객사 생산라인에서 안정적인 성능을 입증하지 못하면 기회를 유지하기도 어렵다.

결국 이번 공급난은 중국 반도체 장비업계에 '수입 대체'를 넘어 '시장 경쟁력 확보'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해외 장비 공급이 제한되는 상황에서 중국 장비업체가 얼마나 빠르게 기술력을 높이고 양산 경험을 축적하느냐가 향후 글로벌 장비 시장에서의 입지를 좌우할 전망이다.

신규 장비도, 중고 장비도 부족한 시대. 중국 장비업계에는 지금이 가장 큰 기회이자 가장 혹독한 시험대다.

※전자신문과 36케이알이 공동 기획한 기사입니다.

김현민 기자 minkim@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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