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P리더를 만나다](5) 소기영 지온컨설팅 부사장 “AI 시대에도 특허번역은 사라지지 않는다”

소기영 지온컨설팅 부사장
소기영 지온컨설팅 부사장

특허번역은 단순히 한 언어를 다른 언어로 옮기는 작업을 넘어 기술과 법률, 언어에 대한 전문성이 복합적으로 요구되는 분야다. 최근 생성형 인공지능(AI)과 거대언어모델(LLM) 발전은 특허번역 산업에도 큰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2001년 설립된 지온컨설팅은 한국어, 일본어, 영어, 중국어, 독일어 등 5개 언어 특허번역을 전문으로 하며 성장해 온 기업이다. 국내 시장을 넘어 글로벌 번역시장에 진출하고, 세계지식재산권기구(WIPO) 번역사업을 수행하는 등 특허번역 분야에서 경쟁력을 구축해 왔다.

지온컨설팅의 번역사업을 이끌고 있는 소기영 부사장을 만나 회사 성장 과정과 특허번역 산업 변화, 그리고 AI 시대를 대비하는 전략에 대해 들어봤다.

-지온컨설팅은 어떤 회사인가.

△지온컨설팅은 2001년에 설립된 특허번역 전문기업이다. 설립 이후 한국어, 일본어, 영어, 중국어, 독일어 등 5개 언어를 중심으로 특허번역 서비스를 전문적으로 제공해 왔다.

2008년에는 사업 다각화를 추진하면서 특허번역사업부를 국내번역사업부와 해외번역사업부로 나누고, IP 컨설팅사업부를 신설했다. 이를 계기로 단순한 번역회사를 넘어 종합 IP서비스기업으로 전환하고자 했다.

2009년부터는 글로벌 번역업체들과 거래를 시작하며 해외시장 진출을 본격화했다. 특히 2015년에는 WIPO에서 발주한 일-영 번역사업 공개입찰에서 한국 업체로서는 처음으로 수행기관으로 선정됐다.

이어 2019년에는 WIPO 한-영 번역사업도 수주하면서 현재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WIPO 한-영과 일-영 번역사업을 동시에 수행하는 기관으로 선정됐다.

해외 기업과 거래가 확대되면서 번역서비스 수출도 꾸준히 증가했다.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2025년 제62회 무역의 날에는 '200만달러 수출의 탑'을 수상했습니다. 이제는 국내 특허번역 시장을 넘어 글로벌 시장에서도 경쟁력을 갖춘 특허번역 전문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고 생각한다.

-본인을 간략히 소개해 달라.

△1994년 대우중공업에 입사해 엔진 주조기술 엔지니어로 약 6년간 근무했다. 이후 IMF 외환위기와 대우 사태를 겪으며 회사를 떠나게 됐다.

당시 입사 동기 중 한 명이 변리사 시험에 합격한 것을 계기로 IP업계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이후 IP 실무를 직접 배우기 위해 특허사무소에 입사했고, 주로 해외 출원과 관련된 Outgoing(외국으로 출원되는 특허문서와 관련된 업무 지칭) 업무를 담당했다. 자연스럽게 영어 특허번역에도 관심을 갖게 됐다.

그러던 중 2004년 지온컨설팅 현 대표이사인 최석훈 대표를 만나 지온에 합류하게 됐다. 이후 현재까지 번역 부문을 책임지며 특허번역사업을 이끌고 있다.

교육 분야에서도 활동하고 있다. 이화여대 통번역대학원 특허전문가과정 교육에 참여하고 있으며, 한국지식재산서비스협회가 주최하는 IP번역아카데미 등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에서 강사로 활동하고 있습다. 업계에 필요한 전문인력을 양성하는 데도 조금이나마 이바지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변리사 시험 준비를 그만두고 특허번역에 집중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2004년 지온에 합류한 이후에도 한동안 변리사 시험공부를 병행했다. 실제로 1차 시험에도 합격했고, 이후 2차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해 해외 글로벌 번역업체로부터 특허소송과 관련된 증거자료 번역을 대량으로 의뢰받은 일이 있었다. 당시 프로젝트 규모가 약 50만달러에 달했다. 그전까지 경험해 보지 못했던 대규모 증거자료 번역 프로젝트였다. 수많은 번역사와 편집자를 직접 지휘하면서 밤을 새워 작업했고, 결국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할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IP 번역은 단순히 특허명세서를 번역하는 데 그치지 않고, 소송자료와 증거자료 등 매우 다양한 번역 수요가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또 이를 새로운 사업으로 발전시킬 가능성도 충분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때 특허번역이라는 분야에서 새로운 사업을 만들고 성장시키는 데 더 큰 가능성과 보람을 느꼈다. 결국 2차 시험을 앞두고 변리사 시험 준비를 중단하고, 지온에서 IP 번역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는 데 전념하게 됐다.

-지온컨설팅이 특허번역 전문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무엇보다 서비스업 핵심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훌륭한 인재를 지속적으로 확보하고 성장시킬 수 있었던 것이 가장 큰 이유다.

IP번역아카데미와 같은 취업연계형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배출된 우수 인재들을 지속적으로 채용했다. 이들이 회사 핵심 인력으로 성장하면서 기존 사업을 안정적으로 확대할 수 있었다. 동시에 구성원들이 가진 다양한 아이디어와 역량이 새로운 사업으로 진출하는 데도 큰 힘이 됐다. 결국 사람에 대한 투자와 인재 양성이 회사 성장의 가장 중요한 기반이었다고 생각한다.

두 번째는 다른 국내 번역업체보다 먼저 해외 번역시장에 관심을 갖고 실제 시장 개척에 나섰다는 점이다. 지온은 2008년 해외번역사업부를 신설하고 본격적인 해외 영업활동을 시작했다. 그 결과 글로벌 번역업체들과 협업할 수 있는 기회 만들었다. 글로벌 기업들과 비즈니스를 하면서 선진화된 품질보증 체계와 운영 시스템을 배울 수 있었다. 특히 글로벌 수준의 특허번역 체계를 경험하고 이를 지온에 맞는 방식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이러한 노력이 새로운 시스템 구축으로 이어졌고, 결국 한국 업체 최초 WIPO 일-영 및 한-영 번역사업 동시 수행이라는 성과로 이어졌다고 생각한다. 이런 경험들이 지온의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고 회사를 성장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AI 시대 특허번역은 어떻게 변화할 것으로 전망하나.

△AI 기술이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면서 점점 더 큰 규모 LLM을 활용한 다양한 AI 번역 기술이 등장하고 있다. 이러한 기술은 특허번역에도 빠르게 도입되고 있다. 단순히 AI가 초벌번역을 수행하는 수준을 넘어, AI가 번역한 결과물을 다시 AI가 검수하는 이른바 'AI 번역-AI 검수' 모델로까지 발전하고 있다.

앞으로 이러한 기술을 특허번역에 효과적으로 접목한다면, 사람이 수행해 온 오타나 오기 확인, 번역문 간 불일치 점검, 가독성 향상 등 업무를 AI가 상당 부분 지원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결국 AI 기반 품질관리 시스템 구축도 가능해질 것이다. 이제 특허번역 분야에서 AI는 더 이상 선택적인 도구가 아니라 필수 경쟁 요소가 되고 있다. AI 도입 여부 자체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시대가 됐다고 본다.

다만 아직 한계도 분명하다. AI는 방대한 데이터를 학습했지만, 특허명세서에 포함된 복잡한 기술 내용을 정확하게 이해하거나 권리 범위와 직접 연결되는 청구항의 의미를 법적·기술적으로 판단하는 데는 여전히 어려움이 있다.

또 하나 중요한 문제는 기밀성이다. 공개되지 않은 특허명세서를 일반적인 클라우드 기반 AI 서비스에 입력하는 것은 자칫 비밀유지 의무와 관련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제약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비용 부담이 있더라도 자체 서버 환경에서 기밀성을 확보한 AI 모델을 구축하고 활용하는 방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AI가 계속 발전한다면 결국 인간 특허번역사를 대체하게 되는 것 아닌지.

AI 발전에 따라 특허번역에도 AI 기술이 적극적으로 활용될 수밖에 없다는 점은 분명하다.

하지만 특허명세서는 단순한 정보전달 문서가 아니다. 발명을 권리화하기 위한 법률적 성격을 가진 문서다. 따라서 AI 번역과 AI 검수만으로 작성된 결과물이 곧바로 최종 출원문서가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출원할 수 있는 수준 문서를 만들기 위해서는 여전히 인간 전문가 개입이 필요하다.

앞으로는 AI가 초벌번역과 기본적인 체크 업무를 수행하고, 인간 전문 번역사가 최종 검수와 판단을 담당하는 형태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 결국 AI와 인간이 경쟁하기보다는 역할을 분담하며 공존하는 구조가 될 것이다.

이러한 변화에 따라 AI 시대에 필요한 번역사 역량도 달라질 것이다. 단순히 문장을 번역하는 능력만큼이나 AI가 생성한 결과물을 정확하게 검수하고 판단하는 능력 그리고 AI를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역량이 더욱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다.

-지온컨설팅은 AI 시대를 어떻게 준비하고 있나.

지온은 약 3년 전부터 AI 도입을 준비해 왔다. 우선 AI 엔지니어를 영입했고, GPU를 직접 구매해 자체 AI 서버를 구축했다. 이를 기반으로 LLMVLM을 활용한 자체 AI 모델인 'ZEONi(지오니)'를 개발했다.

가장 중요한 차별점은 자체 서버 기반의 온프레미스(on-premise) 환경을 구축했다는 점이다. 일반적인 클라우드 기반 AI 서비스와 달리, 기밀성이 요구되는 특허문서를 보다 안전한 환경에서 처리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중점을 뒀다. 이를 통해 기존의 휴먼 번역 방식에서 기계번역-사후편집(MTPE:Machine Translation and Post Editing) 방식으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단가 하방 압력에 대응하고자 한다.

동시에 AI를 활용해 번역 속도와 정확성을 높이고, 번역문 검수와 각종 검색 업무를 자동화함으로써 불필요한 작업 시간을 최소화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소송 증거자료 번역에 필요한 자동 미러 이미지 편집 기능도 AI를 활용해 구현하고 있다. 이를 통해 긴급하게 대규모 소송자료를 제출해야 하는 상황에도 더욱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앞으로 이러한 AI 모델을 미국 소송 분야에도 활용할 계획이다. 특히 캐나다 토론토에 있는 북미 지사를 적극 활용해 미국 내 한국어 소송번역 시장에도 본격적으로 진출할 계획이다.

-앞으로 특허번역사업은 어떻게 변화할 것으로 보는가.

△AI 등장으로 특허번역사업 환경이 이전과 크게 달라질 것은 분명하다. 사업적으로 어려움과 변화가 동시에 나타날 것이다.

하지만 특허제도와 속지주의 원칙이 존재하는 한 특허번역 자체가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특허권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각 국가 언어로 정확한 문서를 제출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특허번역은 앞으로도 계속 필요한 산업이다.

다만 특허문서 가운데 명세서처럼 권리와 직접 연결되는 문서가 아닌 정보전달 중심 문서는 정책 변화와 기술 발전에 따라 점차 휴먼 번역에서 AI 번역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AI의 등장이 국내 기업에 반드시 불리한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새로운 기회가 될 수도 있다. 대표 사례가 소송번역 시장이다. 과거에는 대규모 글로벌 번역업체들이 직접 대형 프로젝트를 수주하고, 국내 번역업체들은 이들 기업으로부터 하청이나 재하청 형태로 업무를 수행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AI 기술을 효과적으로 활용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다. 반드시 글로벌 기업 수준으로 조직 규모를 키우지 않더라도 대규모 특허소송자료 번역시장에 직접 도전할 기회가 생길 수 있다.

과거에는 많은 번역사와 편집자가 투입돼야 했던 대량의 증거자료 번역 업무를 AI가 상당 부분 지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력 규모를 줄이면서도 대규모 프로젝트를 수행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결국 AI의 발전은 국내 번역업체에 새로운 성장 기회를 제공할 수도 있다. 이를 위해서는 미국 소송 디스커버리 제도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필요하다. 동시에 기밀성이 확보된 환경에서 대량의 자료를 신속하고 정확하게 처리할 수 있는 AI 모델을 구축하는 것이 전제돼야 할 것이다.

-AI 시대를 맞아 우리나라 IP서비스 산업이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AI는 이제 단순히 생산성을 높이는 도구를 넘어 산업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인프라가 되고 있다.

이제는 개별 기업이 AI를 도입하는 수준을 넘어 정부와 업계가 함께 IP서비스 산업의 AX, 즉 AI 전환(AI Transformation)을 추진해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특허번역뿐만 아니라 특허조사와 분석, IP 중개, 기술사업화 등 IP서비스 산업 전반으로 AI 활용 기반을 확대해야 한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중요하다. 첫째는 전문인력 양성이고, 둘째는 산업 현장에서 활용할 수 있는 데이터 인프라 구축이다.

AI 기술 자체도 중요하지만, 결국 이를 실제 IP서비스 현장에 적용하고 활용할 수 있는 전문인력이 있어야 한다. 또한 신뢰할 수 있는 데이터와 이를 안전하게 활용할 수 있는 인프라도 필요하다.

정부와 업계, 교육기관이 함께 이러한 기반을 구축해야 국내 IP서비스 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AI 시대는 분명 기존 산업에 큰 변화를 가져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변화에 대응하고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면 국내 IP서비스 산업에도 새로운 기회가 열릴 수 있다.

지온컨설팅 역시 특허번역이라는 기존 전문성을 기반으로 AI 기술을 접목하고, 글로벌 시장에서 새로운 성장 기회를 만들어가는 데 집중할 계획이다.

김현민 기자 minkim@etnews.com

  • ET Ev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