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와 기업이 해마다 막대한 예산을 연구개발에 쏟아붓지만, 그 성과가 산업 현장으로 이어지는 길목은 여전히 좁다. 대부분의 대학이 산학협력단을 두고 기업 자문위원을 위촉하지만, 그 실질적 접점은 명함을 주고받는 행사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기업은 학계의 통찰에 목말라 있고, 학계는 기업의 살아 있는 데이터에 목말라 있는데도, 둘을 실질적으로 잇는 시스템은 좀처럼 작동하지 않는다. 연구비의 규모를 늘리는 것만으로는 이 간극이 메워지지 않는다.
헨리 에츠코위츠와 로엣 레이데스도르프가 제시한 '삼중나선(Triple Helix)' 모델은, 대학·기업·정부라는 세 축이 각자의 역할에 머무르지 않고 서로의 영역에 적극적으로 관여할 때 비로소 혁신이 발생한다고 설명한다. 대학이 연구만, 기업이 생산만, 정부가 규제만 담당하는 분업 구조로는 혁신의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다는 것이다.
경영학자 헨리 체스브로가 저서 '오픈 이노베이션(Open Innovation)'에서 주창한 개방형 혁신 이론 역시 같은 문제의식을 공유한다. 그는 기업이 내부 연구개발 역량만으로는 더 이상 혁신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으며, 대학을 포함한 외부의 아이디어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밖에서 안으로'의 경로와, 내부 기술을 외부와 공유해 사업화하는 '안에서 밖으로'의 경로를 함께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산학관 협력이 형식적 자문 수준에 머무르는 한, 이 두 경로는 모두 막힌 채로 남는다.
실제로 이런 개방형 매칭을 성공적으로 제도화한 사례들이 있다. 1948년 설립된 MIT의 산업연계프로그램(ILP)은 기업 회원사와 MIT 연구진을 상시로 매칭해, 기업이 던진 현장의 문제를 곧바로 연구 과제로 전환하는 구조를 반세기 넘게 운영해 왔다. 1970년 니얼스 라이머스가 설립한 스탠퍼드대학교 기술이전사무국(OTL)은 코헨-보이어 유전자 재조합 특허를 여러 기업에 비독점으로 라이선싱해 2억5000만달러가 넘는 로열티 수익을 이끌어냈고, 이후 구글 창업 초기 페이지랭크 특허의 지분 라이선싱에도 관여하며 대학의 연구 성과가 실제 산업과 시장으로 옮겨가는 통로가 어떻게 작동해야 하는지를 보여준 대표적 모델로 꼽힌다. 두 사례 모두 핵심은 매칭을 개별 교수의 인맥에 맡기지 않고, 대학 차원의 상설 조직이 전담했다는 점이다.
연구실의 지식이 기업의 책상 위에 놓이지 않는다면, 그 연구는 아직 완성된 것이 아니다. 이론과 현장을 잇는 다리는 우연한 만남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정부가 학계와 기업의 목소리를 상시로 모아 정책 의제로 벼려내는 상설 협의체를 제도화해야 한다. 형식적인 자문위원회가 아니라, 현안이 생길 때마다 실제로 가동되는 창구가 있어야 산학관의 대화가 끊기지 않는다.
기업은 현장의 데이터와 문제를, 대학은 분석 역량과 연구 인력을 실질적으로 맞물리게 하는 상시 매칭 구조에 함께 참여해야 한다. 기업이 가진 문제를 연구 주제로, 대학이 가진 통찰을 현장의 해법으로 바꾸는 이 연결은 우연한 만남이 아니라 반복 가능한 시스템으로 설계되어야 지속된다. 특히 이제 막 걸음을 뗀 스타트업에는 이런 연결이 생존의 문제다. 미국 국립과학재단(NSF)이 2011년 시작한 I-Corps 프로그램은 스티브 블랭크의 린 스타트업 방법론을 바탕으로, 연구비를 지원받은 과학자와 공학자에게 고객 발굴 훈련을 제공해 실험실의 기술을 시장이 원하는 제품으로 옮기는 경로를 제도화한 사례로 꼽힌다.
이렇게 만들어진 연구 성과가 정책 결정자의 책상까지 닿을 수 있도록, 학계는 연구 성과를 두세 쪽 분량의 정책 브리프로 정리해 정부에 전달하고, 정부는 이를 정기적으로 검토해 필요할 경우 정책에 반영할 수 있는 통로를 공식화해야 한다. 정부와 기업, 대학이 하나의 순환 고리로 이어질 때, 경영학은 비로소 사회에 실질적인 가치를 증명하는 학문이 된다. 연구실과 현장을 잇는 다리를 놓을 골든타임은 바로 지금이다.
이동원 고려대학교 경영대학 교수·前 한국경영정보학회장(2025) mislee@korea.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