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진의 AI시대 스토리노믹스] 〈2〉콘텐츠 AX의 아킬레스건:비용을 아끼려다 더 쓰는 역주행

전대진 前 스토리위즈 대표
전대진 前 스토리위즈 대표

광고도, 숏폼도, 웹소설 대사 한 줄도 인공지능(AI)이 찍어낸 것 같다. 처음의 놀라움은 금방 사라졌고, 지금 독자들은 그게 이거 같고 이게 그거 같다고 말한다. 잠깐 즐기는 콘텐츠에서도 사람 냄새를 찾는다는 뜻이다. 작가 고유의 문체가 대체 불가능하다는 걸 시장이 먼저 증명했다. 숫자로도 나타난다. 완독률과 별점은 그대로인데 이탈 시점이 빨라졌다는 이야기가 현장에서 자주 들린다. 독자는 끝까지 보되, 다시 찾지는 않는다. 재구매도, 후속작 기대도 함께 식는다. 시장이 차가워졌다면 지표라도 좋아져야 한다. 초고 시간을 줄였고 비용을 몇십 퍼센트 아꼈다는 보고서가 넘친다. 그런데 그 보고서에 재작업 시간은 잘 나오지 않는다. 절감한 시간과 다시 들어간 시간을 나란히 놓고 보는 회사는 드물다. 지표만 보면 성공한 프로젝트처럼 보이지만, 그 뒤에 숨은 재작업은 다음 분기 회의에서야 드러난다.

그런데 현장 책임자들의 한숨은 더 깊다. AI가 빠르게 뱉어낸 서사를 사람이 다시 뜯어고치면서 리소스가 두 번 들어간다. 비용을 아끼려다 더 쓰는 역주행이 벌어지는 것이다. 절감한 초고 비용보다 재작업 비용이 더 큰 경우도 드물지 않다. 이 두 번째 비용은 예산안에도, 보고서에도 잘 잡히지 않는다.

필자는 반대 방향으로 가본 적이 있다. 2020년에 웹드라마 '컬러 러쉬'를 만들면서 통상 제작비의 두 배를 넣었다. 웹드라마는 수익성이 낮아 제작비를 깎고, 그러다 퀄리티가 떨어지고, 다시 안 팔린다. 그 고리를 반대로 끊어보기로 했다. 결과는 사전 판매로 제작비의 60%를 회수했고 굿즈로 5000만원이 더 붙었다. 원작은 번역돼 나갔고 웹툰 판권도 팔렸다. 처음에는 다들 무모하다고 했지만, 끝나고 보니 아끼지 않은 자리가 오히려 회수를 빠르게 만들었다. 돈을 어디에 쓰느냐가 결과를 갈랐다. 아끼는 자리와 쓰는 자리는 따로 있었다. 이 경험은 이후 다른 프로젝트를 판단할 때도 기준이 됐다. 아끼는 게 항상 이기는 전략은 아니었다. 필자도 비슷한 유혹을 느낀 적이 있다. 초안을 빨리 뽑아 물량을 늘리면 그 분기 실적은 좋아 보인다. 그런데 그 숫자는 다음 분기에 다른 표로 돌아왔다. 재작업 비용, 반품, 이탈한 독자. 사라진 게 아니라 자리를 옮겼을 뿐이었다.

지금 시장은 그 판단을 훨씬 어렵게 만들고 있다. 지난 몇 년 사이 국내 플랫폼들이 줄줄이 문을 닫았다. 10년 넘게 이어온 피너툰이 서비스를 종료하고 법인을 해산했고, NHN 코미코와 프랑스 포켓코믹스도 운영 종료를 발표했다. 리디 자회사 오렌지디는 사업을 접었고, 카카오엔터 자회사 타파스의 한국 법인은 청산됐다. 몇 해 전만 해도 신규 플랫폼이 계속 생겨나던 시장이었다. 플랫폼 하나가 문을 닫을 때마다 그 자리에 있던 작가와 독자도 함께 흩어졌다. 기술이 싸졌는데 회사는 더 어려워졌다. 이게 지금의 역설이다. 이 붕괴의 원인을 AI 하나로 돌릴 수는 없다. 다만 방향은 같다. 만드는 값이 싸질수록, 무엇을 만들지 못 고르는 회사부터 무너졌다.

AI 프로젝트가 개념 검증 단계에서 못 벗어나는 이유도 같다. 기술을 확인하는 데까지는 가는데, 그 다음 상업적 성과로 넘어가는 허리가 끊겨 있다. 원인은 품질을 통제하는 기준이 없다는 것이다. 생성형 AI는 확률이 가장 높은 단어를 이어 붙이기 때문에 겉은 매끄럽지만, 긴장이 조여드는 지점이나 감정이 꺾이는 순간은 못 잡는다. 그래서 사람이 다시 쓰고, 그 과정에서 처음 기획이 어그러지고 비용은 더 나온다. 가이드라인 없이 AI부터 들이는 조직과, 먼저 기준을 세우고 AI를 나중에 들이는 조직의 차이는 여기서 갈린다. 먼저 들인 조직이 항상 앞서가는 것도 아니다. 기준을 먼저 세운 조직은 실패해도 그 실패에서 다음 기준을 뽑아낼 수 있었다. 많이 빠르게 찍어내는 단계는 끝났다. 이제 필요한 건 설익은 원고가 유통으로 직행하지 않게 막는 장치다.

지금 필요한 건 더 좋은 모델이 아니라, AI가 내놓은 것 중 무엇이 원석인지 고르는 사람의 통제권이다. 그 통제권을 쥔 창작자들은 어떻게 살아남고 있을까.

전대진 前 스토리위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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