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 AI 시대 국경선 긋기

생성형 AI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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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정보통신기술(ICT) 업계에서 세기의 소송이라면 단연 2011년 촉발된 '애플-삼성' 소송전을 들 수 있다. 애플은 삼성전자의 갤럭시 스마트폰이 아이폰의 디자인과 특허를 침해했다며 미국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이는 10여개국으로 번져나가 2018년 7년 만에 합의로 종결됐다. 어느 쪽이 이겼는지는 데이터가 공개되지 않았으므로 명확한 평가는 어렵다.

당시 취재 과정에서 한 특허전문가가 삼성과 애플 스마트폰 전쟁의 '국경선 긋기'라고 한 표현이 뇌리에 깊이 남아 있다. 인터넷과 데이터 통신을 핵심 기능으로 한 '스마트폰'이라는 새로운 유형의 휴대폰이 등장했다. 스마트폰의 원조는 애플이었지만, 삼성전자를 필두로 후발 주자들이 도전장을 던졌다. 휴대폰 업계의 라이벌이던 두 회사가 어느 선까지 상대방의 디자인, 기능, 통신기술을 활용 가능한지 정리해 안정적으로 시장과 수익을 확보하기 위한 분쟁이었다는 해석은 상당한 설득력이 있었다.

새로운 기술·시장이 열리면 분쟁이 뒤따르고, 업계에서는 판결 또는 합의를 통해 새로운 거래질서가 형성되는 양상이 지속된다.

초고속·대용량 통신망을 기반으로 동영상 시대가 열리자 구글·넷플릭스등 콘텐츠기업은 자체 콘텐츠전송네트워크(CDN)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글로벌 통신사는 처음에는 CDN이 데이터트래픽을 줄여주는 효과에 주목했다.

하지만 데이터트래픽이 폭증하고, 망 연결에 돈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 지속되자 정당한 비용지불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넷플릭스와 SK브로드밴드의 망 이용대가 분쟁을 비롯해 구글과 오랑쥬, 메타와 도이치텔레콤 등 세계 곳곳에서 분쟁이 발생했다. 이후 직접적인 망 연결에 대해서는 대가를 지불한다는 암묵적인 거래질서가 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인공지능(AI) 시장도 아직 완벽한 국경이 형성되기 전이다. AI 토큰 시장을 들 수 있다. 국내 통신사들은 대규모 AI데이터센터(AIDC) 건설을 통한 'AI 팩토리'를 신성장 동력으로 내세운다. 대규모 AIDC를 통해 AI 구동과 연산에 필요한 그래픽처리장치(GPU) 운용을 최적화하고 AI 연산에 필요한 최소 단위인 '토큰'을 효과적으로 생산해 AI 서비스 기업에 제공하겠다는 구상이다. 통신사는 안정적 에너지와 통신망을 갖춘 AIDC를 제공하고, 글로벌 AI기업은 한국의 AIDC에 GPU를 두고 토큰을 생산해 세계에 서비스한다.

이 과정에서 통신사는 토큰 생산 비용을 받겠다는 구상이다. AIDC 임대료, 토큰 생산·서비스 비용 등은 AI기업과 통신사 간 새로운 분쟁의 전장이 될 가능성이 높다. 원만한 협상이 전개될 수도 있지만, 통신사 입장에선 미리 준비해야 한다.

AI 데이터 분야에서도 분쟁이 확산할 수 있다. 오픈AI가 부동산 찾기를 핵심 서비스로 내세운 상황에서 네이버는 로봇 배제 표준(robots.txt)을 통해 자사 데이터에 대한 무단 크롤링을 차단했다. 지상파 방송사들은 오픈AI를 상대로 영상데이터 무단 사용을 금지하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글로벌 AI 기업이 개방성을 앞세워 방대한 콘텐츠와 데이터를 사실상 무상 학습하고 서비스에 활용하는 관행에 경종을 울렸다.

우리 기업이 공들여 구축한 인프라와 데이터를 최소한 '공짜'로 쓰지 않게 하려면 미리 준비해야 한다. 지피지기(知彼知己)와 속전속결 전략이 필요하다. 기업 입장에서는 인프라·데이터의 명확한 가치를 집계하고, 상대방이 무엇을 원하고 어떻게 나올지를 미리 계산해 협상을 준비해야 한다. 정부는 AI를 둘러싼 통상 문제 등이 본격화되기 전에 공정한 AI 거래 질서에 입각한 선제적인 제도개선을 모색해야 한다.

박지성 기자 jisung@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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