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호의 퓨처로그] 상상의 무한가치, 이야기의 주인이 되자

이진호 논설위원실장.
이진호 논설위원실장.

중세 전장에 지금보다 미래인 아이언맨을 능가하는 수트를 장착한 전사가 나타나 악마적 기사들을 처단한다. 수트속 인공지능(AI) 에이전트는 현재의 개발자와 통신한다. 영상미는 조금 인위적이지만, 화려하고 눈부시다. 며칠 전 유튜브에서 '중세에 티타늄수트를 입음'이란 낯설면서 이색적인 제목의 영상을 접했다.

30분 넘는 전편 압축본 스토리에 빨려들 듯 들어갔다. 나 같은 사람이 400만명이 넘은 것도 확인했다. 알아보니, 이 영상의 원작은 지난 2024년 1월 문피아란 곳에 연재되기 시작한 동명의 웹소설이다. 이를 가져와 AI 시네마틱 영상으로 구현한 것이 내가 본 바로 그 작품이다.

중세 기사의 두꺼운 철갑 투구 앞에 2043년산 최첨단 티타늄 수트가 등장하는 설정은 그 자체로 파격적이다. 최첨단 과학 기술을 마법이나 신성한 기적으로 오인하고 굴복하는 중세 세계관의 대립 구도는 보는 이에게 직관적인 몰입감을 선사한다.

그러나, 나를 진짜 빠져들게 한 것은 정교한 시각 연출 그 자체가 아니었다. 여느 대작 애니메이션을 능가하는 프레임과 다국어 음성 지원이 수백 명의 컴퓨터그래픽(CG)팀이나 거대 자본의 투입 없이, 오직 생성형 AI와 소수 창작자의 협업으로 탄생했다는 점이다.

과거 영화나 애니메이션에서 판타지 공상과학(SF) 대작을 영상화하려면 수백억원의 제작비는 물론이거니와 수년의 수작업 시간이 필수적이었다. 하지만 생성형 AI는 이 거친 진입 장벽을 단숨에 허물었다.

텍스트 형태의 훌륭한 지식재산권(IP)만 있다면, 이제 1인 크리에이터나 소규모 스튜디오도 할리우드급 시각 효과를 지닌 영상 콘텐츠를 내놓을 수 있는 시대가 됐다. AI 기반 자막과 오디오 합성 덕분에 국경과 언어의 장벽 마저 출시와 동시에 소멸한다. 미디어·콘텐츠 산업 전체의 생산성과 글로벌 유통 구조가 거대한 지각변동 속에 휘말리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시사하는 바는 명확하다.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도무지 이해 못하거나 납득되지 않는 수많은 현상들이 매혹적인 이야기로만 짜여질 수 있다면 거의 0에 가까운 투자와 시간으로 사실상 무제한의 수익 창출 콘텐츠로 재탄생할 수 있다는 얘기다. 어떠한 거대 플랫폼이나 제작사에 의존하지 않고도, 창작자 개인이 스스로의 아이디어만으로 글로벌 시장의 주인공이 되는 판이 열린 셈이다.

결국, 인류와 함께 영원히 존재할 콘텐츠의 힘은 기술이 아닌 '고유한 IP'에서 나온다. 인간 고유의 깊은 창작 영역을 거쳐, AI라는 도구를 거치며 그 가치가 폭발하는 구조다.

이런 측면에서 전자신문이 매년 하반기 벌이는 'SF판타지 웹소설 공모전'에 올해만 2400여명의 작가와 3200여 작품이 몰린 것을 보면, 우리 이야기가 가진 가공할 잠재력과 크기를 짐작케 한다. 새로운 기술을 흡수해 세계로 뻗어나갈 무궁무진한 씨앗들이 이미 우리 곁에 준비되어 있는 셈이다.

우리는 현실을 살아가면서 “상상도 못할 일이 일어났다”거나 “그게 말이나 돼?” 같은 표현을 수골백번도 더 내뱉는다. 오늘도 내일도 그런 표현을 써야할 일들이 이어질 것이다.

현실이 아무리 어렵고, 도저히 수용하기 힘들더라도 그 시간을 살아내고 경험한 우리의 이야기와 느낌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잘 만들고 다듬으면, 우리 다음 세대가 웃고 울며 즐기는 거대한 서사가 된다.

기죽지 말자. 다시 한번,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과 거기서 생겨나는 수많은 이야기들일 것이다.

이진호 논설위원실장 jholee@etnews.com

이진호 기자 jholee@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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