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베어링이 한 공장에서는 제조사 품번, 다른 곳에서는 설비 이름, 또 다른 곳에서는 현장 별칭으로 등록돼 있다면 세 주문은 서로 다른 수요로 남는다. 공급자는 각각 견적을 내고 공장은 제각기 재고를 쌓는다. 중국의 산업재 플랫폼이 풀려는 문제는 이 흩어진 주문을 같은 물건의 수요로 읽어 내는 것이다. 상품의 이름을 맞추는 작업이 구매와 보관, 배송을 함께 처리할 규모를 만든다.
유지·보수·운영 자재를 뜻하는 MRO에는 공구·안전용품·세정제·설비 예비부품 등이 들어간다. 완제품에 직접 들어가는 자재와 달리 구매 부서와 사용처가 흩어져 있고 품목별 주문은 작다. 많은 상품을 등록하는 일보다 서로 다른 주문에서 함께 살 수 있는 물건과 별도 확인이 필요한 물건을 가려내는 일이 이 시장의 통합을 좌우한다.
![[테크 차이나] 부품 이름을 맞추다…중국 MRO가 주문을 모으는 법](https://img.etnews.com/news/article/2026/10/27/news-p.v1.20261027.75c7f91e733540278144474602e67004_Z1.png)
징둥공업(京东工业)의 2025년 연차보고서는 연말 제공 상품을 약 9770만개 식별 단위로 제시했다. 창고 보유품의 수가 아니라 구매할 수 있는 상품목록의 폭이다. 이 회사는 표준상품 데이터베이스와 공급자 심사, 엔지니어의 식별·추천을 함께 설명한다. 제조사와 유통업체가 각자 올린 물건을 비교 가능한 선택지로 바꾸는 데 목록의 실질적 가치가 달렸다.
제조사 품번이 같아도 포장수량과 부속품 구성이 다르면 단가 비교가 어긋난다. 이름이 비슷한 밸브도 재질과 압력·온도 조건, 밀봉재에 따라 쓰임이 갈린다. 제조사 자료와 도면을 공통 항목으로 정리하면 구매 담당자가 다시 전화해 묻던 일을 여러 고객의 주문에서 한 번에 처리할 여지가 생긴다. 상품정보의 정합성이 유통사의 처리 원가를 낮추는 출발점이다.
다른 제조사 부품까지 묶으려면 사용 승인이 필요하다. 치수가 맞아도 내식성이나 수명, 장착공차가 달라질 수 있어서다. 구매팀이 찾은 후보를 정비·품질팀이 검증하고 승인한 설비에 연결하면 다음 주문부터 같은 확인을 되풀이할 필요가 줄어든다. 이 기록이 쌓일수록 고객에게는 대체 공급원이 늘고 유통사에는 반복 처리할 주문이 생긴다.
설비가 개조되면 승인정보도 달라진다. 지멘스 서비스부품 관리가 실제 자산 구성과 정비용 자재명세를 연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같은 설비 계열이라도 설치연도와 개조 내용에 따라 맞는 부품이 달라진다. 사진과 문장으로 유사 후보를 찾는 인공지능 역시 이 이력에 기대야 한다. 검증된 품목과 사용처의 관계가 넓어져야 추천의 정확성과 구매 편의가 함께 높아진다.
문제는 그 기록을 만드는 사람의 보상이다. 구매팀은 단가 인하를, 정비팀은 고장 없는 작업을 평가받는다. 대체품 확인의 수고는 정비팀에 남고 절감 성과는 구매팀에만 잡힌다면 익숙한 지정품을 고수하기 쉽다. 승인시간과 고장·재작업까지 함께 평가할 때 현장의 지식이 공통목록에 들어온다. 중국 플랫폼의 데이터 축적도 고객 안의 이런 업무 조정을 통과해야 깊어진다.
전쿤항(震坤行)은 고객군의 차이를 사업 안에서 드러낸다. 2025년 연차보고서에 따르면 기업 고객에게는 구매·관리 서비스를 제공하고, 별도 플랫폼에서는 공구상·유통업체와 영세 사업자의 간편한 구매를 지원한다. 후자는 대체로 외상기간 없는 현금결제를 이용한다. 고객이 필요로 하는 상담과 승인, 정산의 복잡성이 다르므로 가격과 투입 인력도 달라지는 구조다.
미국 그레인저 역시 복잡한 구매 요구를 다루는 밀착형 서비스와 넓은 상품 구색의 온라인 사업을 나눠 운영한다. 소액 주문마다 대형 공장의 시스템 연동·현장관리 인력을 붙이면 비용이 커지고, 간편 구매만 제공하면 전문 상담이 필요한 고객을 놓친다. 고객이 지불할 서비스의 깊이와 유통사가 공통 처리할 범위를 맞추는 분업이다.
이 차이는 같은 고객의 주문 안에도 있다. 장갑 한 상자와 도면을 확인해야 하는 단종 부품의 가격에는 서로 다른 상담·검수·배송이 붙는다. 불필요한 개별배송을 줄여 얻는 할인과 긴급 납품에 내는 대가가 구분되면 고객도 주문 방식을 바꿀 수 있다. 운영사가 모든 요청을 같은 가격에 받는 대신, 고객의 선택을 통해 비용을 줄일 길이 열린다.
중국 제조업의 집적은 이 분업을 뒷받침한다. 쿤산(昆山)시가 공개한 징둥공업의 2025년 매장 사례는 견본 확인과 온라인 주문, 현장 수령, 사후지원을 잇는다. 두 시간 배송의 범위는 반경 3㎞다. 전국의 넓은 상품목록과 가까운 상담·배송망을 결합하는 방식이다. 지역 공구상은 없어질 중간상이 아니라 고객의 사용환경을 확인하고 긴급 주문을 처리하는 접점이 될 수 있다.
기업과 지역의 접점을 잇는 정책도 정보의 공통화에 초점을 둔다. 상무부(商务部) 등 8개 부처의 2025년 공급망 디지털·지능화 촉진 특별행동계획(加快数智供应链发展专项行动计划)은 구매·수요예측·재고관리의 연계와 제품정보의 일관된 표현을 제시했다. 서로 다른 기업이 같은 제품을 식별하고 주문·납품 정보를 주고받는 기반이 갖춰지면, 거래 상대가 늘어날 때마다 정보를 새로 맞추는 비용도 낮아질 수 있다.
같은 물건의 수요를 읽어 내면 재고를 함께 보유할 여지가 생긴다. 여러 공장이 꾸준히 쓰는 공통품은 지역창고에서 공급하고, 특정 설비에만 맞으며 조달기간이 긴 부품은 현장에 둘 수 있다. 품목별 구매액과 회전속도만으로는 이 배치를 설명하기 어렵다. 드물게 쓰이는 값싼 부품도 대체품이 없고 조달에 오래 걸린다면 현장 보관의 가치가 크다.
공동재고가 절감으로 이어지는 정도는 수요의 시간차에 달렸다. 공장들의 사용 시점이 어긋나면 같은 재고가 여러 수요를 받친다. 같은 업종의 정기보수가 겹치거나 공급원이 멈추면 반대로 주문이 몰린다. 거래량을 많이 모았어도 평균 출고량만 보고 채워 놓은 재고는 이 순간에 부족해진다. 고객의 보수일정과 공급자의 조달기간이 주문정보에 더해져야 공동보관의 효과가 커진다.
전쿤항은 2026년 2분기 말 고객 생산현장에 자재 지급기 6000대 이상을 뒀다고 발표했다. 소비지 가까이 물건을 두면 작업자의 이동이 줄고 사용량도 보인다. 반면 잘못 채운 물건은 오래 머문다. 고객 창고의 재고를 유통사 소유로 바꾸는 것만으로는 공급망 전체의 보유비용이 줄지 않는다. 보충과 미사용품 회수, 설비 폐기 뒤 남는 부품의 처분까지가 현장재고 사업의 비용이다.
공급자 직송은 비용이 이동하는 다른 경로다. 드물거나 부피가 큰 물건을 유통사 창고에 넣는 부담은 줄지만, 배송 약속을 지키기 위해 공급자가 재고를 더 쌓을 수 있다. 유통사 장부에서 사라진 재고가 공급자에게 남는다면 절감의 주체만 바뀐다. 직송이 지속되는 범위는 고객이 요구하는 속도와 공급자가 감당할 보충·보관 부담의 접점에서 결정된다.
납품 역시 작업에 필요한 물건이 모두 갖춰지는 시점까지 이어진다. 정문을 통과한 뒤 검수와 사용부서 인계가 남고, 여러 부품을 함께 바꾸는 정비에서는 나머지 한 품목을 기다릴 수도 있다. 공통품을 묶어 출고하면 운송비가 낮아지지만 긴급품을 기다리게 하면 현장의 비용이 커진다. 주문 통합의 이익은 소포 수를 줄이는 것과 정비 일정에 맞추는 것을 함께 계산할 때 생긴다.
이 계산에는 반품도 들어간다. 전쿤항의 온라인 주문 안내는 품질불량과 파손·수량 부족, 주문과 다른 제품의 수령을 구분하고 증빙을 요구한다. 단순 변심 반품은 개인소비자 대상이며 기업 구매는 제외된다. 잘못 고른 물건을 손쉽게 돌려보낼 수 없다면 발주 전 규격 확인의 가치가 커진다. 오발주와 배송 오류, 사용 중 불량의 기록은 다음 상품정보와 비용 부담을 고치는 근거가 된다.
제조사와 지역 유통업체의 참여도 이 비용에 좌우된다. 플랫폼에 들어와 주문을 더 받아도 문의·포장·긴급배송·반품이 늘고 대금까지 늦어지면 공급자는 가격에 위험을 얹거나 취급품을 줄일 수 있다. 정확한 수요정보와 예측 가능한 정산은 공급자를 붙잡는 대가다. 유통단계를 줄이는 힘은 중간상을 없애는 데서만 나오지 않는다. 남은 주체가 같은 일을 되풀이하지 않을 때 비용이 줄어든다.
유통사가 자체브랜드로 들어가면 분업의 경계도 움직인다. 전쿤항은 최근 실적에서 자체브랜드 확대를 설명했다. 상품 기획과 조달을 맡으면 가격 선택지를 넓힐 수 있지만 이익이 큰 품목을 추천할 유인도 생긴다. 지정품과 대체품의 성능 근거가 구매자에게 보이지 않으면 정보의 통합이 선택권의 축소로 바뀔 수 있다. 품목정보를 관리하는 권한이 커질수록 승인 근거의 공개가 신뢰를 좌우한다.
상품을 사서 파는 거래와 공급자의 판매를 중개하는 거래는 이 부담을 서로 다르게 나눈다. 전쿤항은 직접판매의 상품대금과 중개의 수수료를 각각 매출로 인식한다. 직접판매에는 재고와 가격하락 위험이 붙고, 중개에도 품목 확인과 납품 지원이 든다. 거래액의 증가가 매출이나 현금의 증가와 같은 모양으로 나타나지 않는 이유가 사업 안에 있다.
민성증권(民生证券)의 2024년 전쿤항 보고서도 고객군별 서비스와 현장 인력, 공급자 직송을 함께 다뤘다. 지금까지 남은 쟁점은 규모 확대가 사람의 작업을 얼마나 공통화하는가다. 고객마다 품목을 새로 확인하고 창고를 따로 관리하면 주문과 인력이 함께 늘어난다. 반대로 공통목록·승인 이력·정산자료를 여러 거래에서 다시 쓰면 다음 고객을 지원하는 추가 비용이 낮아진다.
자금 회수는 이 효과를 더 엄격하게 시험한다. 전쿤항의 2025년 매출채권 회전일수는 받을어음을 포함한 매출 기준 142.2일이었다. 물건을 빨리 팔아도 대금을 늦게 받으면 자금은 묶인다. 공급자 지급기간을 늘려 이를 메우는 방식은 공급자의 참여 유인과 충돌한다. 금융권이 연체·반품 뒤 회수액과 재고 처분손실, 공급자 정산을 함께 보는 이유다.
2026년 2분기 전쿤항은 처음 분기 영업흑자를 발표했지만 영업이익률은 0.2%였다. 주문 확대와 비용 관리가 이익으로 이어졌으나 여유는 얇았다. 품목 확인과 창고·배송·현장지원 중 한 단계가 예상보다 비싸지면 성장의 성과도 흔들릴 수 있다. 중국의 거대한 제조 수요가 플랫폼의 잠재력이라면, 그 수요를 적은 추가 작업으로 처리하는 능력은 수익의 한계선을 정한다.
한국에는 서브원과 아이마켓코리아의 통합구매·물류 기반이 있다. 중국처럼 상품목록의 폭을 먼저 키우기보다 기존 거래에서 묶을 수 있는 수요를 찾을 출발점이다. 제안할 첫 사업은 한 산업단지의 펌프·밸브 예비품 공동공급이다. 참여 공장들은 구매·정비·품질팀이 함께 쓰는 품목과 승인 대체품을 정리하고, 공통품의 지역 보관과 설비별 전용품의 현장 보관을 나눈다.
발주자는 참여 공장이며 물품대금과 합의한 현장관리료를 구매예산에서 낸다. 지역 공구상·정비업체는 사용조건 확인과 긴급 배송·회수를 맡고, 통합구매 사업자는 공동 조달과 정산을 맡는 방식이다. 물품 매매차익에 모든 현장 작업을 숨기지 않고 긴급 납품의 대가와 미사용품의 귀속 계약에 드러내면 각자의 손익을 비교할 수 있다. 빠른 공급을 원한 공장이 그 비용에도 참여하는 구조다.
지자체는 새 창고 건설 대신 기존 점포와 배송망에서 빠진 시간대·품목을 찾아 참여기업을 묶을 수 있다. 정부의 초기 지원은 중복 품목 정리와 시험자료의 공통 항목에 한정하고, 반복되는 물품 구매와 재고 보유를 계속 보조하는 구조는 피할 만하다. 대학·시험기관은 지역 공급자의 대체품을 참여 공장의 사용조건으로 비교시험한다. 공공 지원이 끝난 뒤에도 구매자가 쓸 수 있는 승인자료를 남기는 역할이다.
스타트업의 첫 고객은 이 공동공급을 운영하는 구매·정비팀이다. 도면·품번·설비 이력과 승인자를 연결해 빠진 정보가 있는 주문을 걸러 주고, 운영 공장이나 유통사로부터 이용료를 받을 수 있다. 처음부터 자동 대체품 추천을 넓히기보다 문의와 오발주가 줄어드는 범위에서 유료화를 시험하는 편이 합리적이다. 금융권도 재고자금과 매출채권을 지원할 때 참여 공장의 결제일과 남은 부품의 처분 주체를 함께 평가할 수 있다.
사업의 확대 여부는 정기보수를 한차례 포함한 시험기간에 정한다. 같은 보수물량의 구매비에 문의·긴급배송·품절·반품 때문에 발생한 금전비용을 더한다. 문의 횟수와 대기시간은 별도 운영지표로 둔다. 이 비용이 줄고 공급자 정산이 지켜지면 다음 설비군으로 넓힌다. 재고가 공급자에게 옮겨 쌓이거나 현장관리료를 포함한 비용이 개선되지 않으면 품목과 서비스 범위를 줄일 수 있어야 한다. 한국 산업계는 어느 산업단지의 펌프·밸브 수요부터 이런 공동공급 계약으로 묶을 것인가.
박지민 36kr코리아 공동 대표 3guowill@krstar.c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