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존 백금 함량 한계를 뛰어넘는 새로운 촉매 합성법이 국내에서 개발됐다. 백금 원자 자리를 미리 설계한 결과다.
기초과학연구원(IBS·원장 장석복)은 현택환 나노입자연구단장(서울대 화학생물공학부 석좌교수), 성영은 부단장(서울대 화학생물공학부 석좌교수), 이병훈 교수(고려대 KU-KIST융합대학원 부교수·IBS 나노입자 연구단 연구원) 및 김민호 교수(경희대 응용화학과 교수) 공동연구팀이 백금 원자 위치를 미리 설계해 백금 함량이 14.9%에 달하는 단원자 촉매를 합성하는 데 성공했다고 2일 밝혔다.
백금은 촉매 성능이 뛰어나지만, 가격이 비싸 적은 양으로도 높은 효과를 내는 것이 중요하다. 이에 따라 백금을 큰 입자 대신 원자 하나씩 분산시켜 반응에 더 많이 활용하는 '단원자 촉매'가 주목받아 왔다.
그러나 백금 함량을 높이면 원자들이 서로 가까워져 뭉치기 쉽고, 고온에서는 원자가 이동하면서 더 큰 입자로 성장할 수 있다. 이를 막기 위해 원자들을 충분히 멀리 떨어뜨려 놓는 기존 방식은 백금 함량이 대체로 1% 미만에 머무르는 한계가 있었다.
연구진은 촉매를 만들기 전부터 백금 원자 위치·결합을 설계하는 '망상 배위' 전략을 개발했다. 산화물이 만들어지기 전 단계에서부터 원자를 고정하는 방식이다. 이를 위해 금속과 유기물이 연결돼 규칙적인 그물 구조를 이루는 '금속-유기 골격체'를 출발 물질로 활용하고, 이 구조 안에 있는 세륨과 산소로 이루어진 원자 집합체에 백금 원자를 하나씩 고정했다. 이후 열처리를 통해 전체 구조를 세륨 산화물인 '세리아'로 바꿨다. 마치 지정석에 한 명씩 앉히듯, 촉매가 만들어지기 전에 백금 원자의 자리를 미리 정해 둔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촉매는 전체 무게의 14.9%를 백금으로 채우면서도 원자들이 낱개로 분산된 상태를 보였다. 또한 촉매의 안정성을 확인하기 위해 수소 환경에서 300~500도 고온으로 처리한 결과, 백금 원자들이 아주 작은 군집을 형성했지만 큰 입자로 성장하는 현상은 억제됐다. 백금과 세리아 사이의 강한 결합이 고온 처리 이후에도 백금의 성장을 제한한 것이다.
이어 연구진은 고온 처리한 백금 촉매를 물을 전기로 분해해 수소를 만드는 고분자전해질막 수전해 장치에 적용했다. 500시간 동안 운전한 결과, 촉매의 구조적 안정성이 유지됐다. 전극에 사용한 백금량은 기존 상용 촉매보다 약 63% 적었고, 성능 저하를 나타내는 전압 상승 속도도 약 4분의 1 수준이었다. 새로운 합성법으로 만든 촉매가 적은 양의 백금으로도 안정적으로 작동할 수 있음을 보여준 결과다.
공동 교신저자인 이병훈 교수는 “백금뿐 아니라 이리듐과 로듐에도 적용할 수 있어, 다양한 귀금속 촉매를 개발하는 합성 전략으로 활용될 수 있다”고 말했다.
현택환 단장은 “향후 화학 원료 생산과 자동차 배기가스 정화 등 다양한 분야로 적용을 넓혀, 귀금속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면서 오래 작동하는 촉매를 개발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네이처 신세시스' 온라인판에 지난달 22일 게재됐다.
김영준 기자 kyj85@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