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일(현지시간) 유럽 상공을 운항하던 항공기 7대에 폭발물이 설치됐다는 신고가 잇따르면서 항공편 운항에 큰 혼란이 빚어졌다. 일부 항공기는 예정된 목적지에 도착하지 못하고 다른 공항으로 방향을 틀었으며, 군용 전투기까지 대응에 나서는 상황이 발생했다.
영국 가디언에 따르면, 이날 오전 영국 런던 히스로 공항에서 출발해 폴란드 바르샤바 쇼팽 공항으로 이동하던 LOT항공 소속 보잉 737 맥스 기종에 위험 경보가 전달됐다. 오전 9시 54분경 기내 폭발 가능성이 제기됐고, 해당 항공기는 약 7분 후 바르샤바 인근 모들린 공항으로 기수를 돌려 착륙했다.
폴란드 관계 당국은 안전 확보를 위해 모들린 공항 운영을 일시 중단하고 항공기 내부를 정밀 점검했다. 조사 과정에서 의심스러운 폭발물은 확인되지 않았다. 탑승객 181명은 현장 조치가 끝난 이후 버스를 이용해 당초 목적지인 쇼팽 공항으로 이동했다.
같은 날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폴란드 바르샤바로 향하던 스칸디나비아항공 항공편에도 유사한 제보가 전달됐다. 해당 항공기는 쇼팽 공항에 도착한 뒤 관계 기관의 안전 점검을 받았다고 공항 당국은 설명했다.
이외에도 유럽 여러 노선을 운항하던 항공편이 위협 대상에 포함됐다. 영국 맨체스터에서 스페인 무르시아로 향하는 노선과 포르투갈 리스본-이탈리아 로마, 아일랜드 더블린-로마, 이탈리아 베르가모-불가리아 소피아, 더블린-소피아 노선에서도 폭발물 관련 제보가 이메일 등을 통해 전달됐다. 로마행 항공기 중 한 편은 이탈리아 공군 전투기의 호위를 받으며 공항에 내려앉았다.
이들 항공편 가운데 베르가모와 소피아를 연결하는 노선은 헝가리 저비용 항공사 위즈에어가 운항했다. 그 밖의 항공편은 아일랜드 항공사 라이언에어 소속으로 파악됐다.

각 항공기를 대상으로 진행한 점검에서는 위험 물질이나 폭발물이 나오지 않았다. 신고를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밝힌 단체도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7건의 제보가 서로 연결된 사건인지에 대해서도 수사가 진행 중이다.
항공기뿐 아니라 해상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발생했다. 그리스 시로스섬에서는 이스라엘 하이파로 출항을 준비하던 파나마 국적 크루즈선 크라운 아이리스호에 폭발물을 숨겼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발신자의 신원은 확인되지 않았으며, 선박 내부를 대상으로 안전 검사가 이뤄졌다.
최근 유럽행 항공편을 둘러싼 보안 우려는 계속 커지고 있다. 지난 9월 30일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이스라엘 텔아비브로 향하던 플라이두바이 항공기에서는 부기장을 상대로 한 납치 시도 사건이 발생했다. 이후 유럽 지역을 운항하는 항공편에서 폭발 및 항공기 탈취 가능성을 알리는 신고가 연이어 접수되는 양상이다.
하루 전에도 영국 런던 루턴 공항을 떠나 불가리아 소피아로 향하던 위즈에어 항공편이 위험 통보를 받고 경로를 변경했다. 항공기는 헝가리 부다페스트 리스트 페렌츠 공항에 착륙했으며, 현지에서 진행된 조사에서 특이 사항이 발견되지 않자 다시 소피아로 출발했다.
지난달에도 코렌돈항공과 오스트리아항공 소속 여객기에서 각각 항공기 납치와 폭발 가능성을 알리는 경보가 전달돼 비상 대응이 이뤄진 바 있다.
잇따른 항공 보안 사고는 유럽 각국에서 벌어진 사이버 공격과 맞물리면서 배후에 대한 의문도 키우고 있다. 전날 여러 나라의 대형 슈퍼마켓에서 냉장·냉동 설비를 겨냥한 해킹이 발생한 데 이어 항공편 7대까지 위협을 받자, 러시아가 서방 국가들의 사회적 혼란을 유도하기 위해 벌인 활동일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됐다.
네덜란드 보안정보업체 디아미의 에릭 스하우턴 대표는 철도와 식량 공급 체계 등 사회 기반시설을 대상으로 한 공격이 이어지는 점에 주목했다. 그는 냉장 설비 침해를 비롯한 다양한 형태의 작전이 유럽 사회를 불안정하게 만들려는 러시아의 전략적 방향과 일치한다고 평가했다.
앞서 발생한 냉장 시스템 해킹은 원격으로 설비 설정을 변경해 슈퍼마켓의 냉장고와 냉동고 내부 온도를 최대 섭씨 55도까지 높이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벨기에와 룩셈부르크, 네덜란드, 스웨덴, 에스토니아, 아일랜드, 핀란드, 이탈리아, 포르투갈, 독일 등 적어도 10개국에서 피해가 확인됐다.
지난달에도 프랑스 전역의 슈퍼마켓과 미국 내 미군 시설에 설치된 식료품 매장 6곳에서 유사한 유형의 사이버 침해가 보고됐다.
보안업체 센티넬 소속 톰 헤겔 연구원은 세 차례에 걸친 해킹 사례가 적은 비용으로도 공격 대상에 상당한 재정적 손실을 안길 수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해당 공격들이 러시아와 연계된 조직의 소행일 가능성이 높다는 견해를 밝혔다.
이원지 기자 news21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