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립스(LIPS)가 생기기 전까지 로컬기업은 투자자들의 관심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립스가 제도화되면서 로컬기업에 대한 투자가 본격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했습니다.”
신진오 와이앤아처 대표는 4일 제주에서 열린 '2026 로컬창업 페스타' 로컬투자 토크쇼에서 이같이 말했다. 중소벤처기업부의 민간투자 연계형 매칭융자 사업인 립스가 로컬기업에 대한 투자자들의 인식을 바꾸는 전환점이 됐다는 평가다.
이날 토크쇼에는 신진오 대표를 비롯해 조재만 BNK벤처투자 상무, 전용덕 KOC파트너스 대표, 한완희 뉴키즈인베스트먼트 대표, 김영록 넥스트체인지 대표 등 투자 전문가 5명이 참여했다. 이들은 립스 도입 이후 달라진 로컬투자 환경을 진단하고, 로컬 창업자들이 투자유치를 위해 갖춰야 할 전략을 제시했다.
신 대표는 “과거 투자자들은 로컬기업을 성장성과 확장성을 갖춘 투자 대상으로 보지 않았다”며 “립스 도입 이후 액셀러레이터(AC)를 중심으로 투자가 확산됐고, 최근에는 벤처캐피털(VC)들도 후속 투자를 적극 검토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전용덕 대표 역시 “립스 도입 전후로 투자자들의 시각이 확연히 달라졌다”며 “정책적 지원과 매칭 자금이 마련되면서 투자자들이 로컬기업에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고 평가했다.
그는 기술창업 지원 프로그램인 팁스(TIPS)와 립스의 차이도 강조했다. 전 대표는 “팁스는 기술이 앞으로 얼마나 성장할 수 있는지를 본다면, 립스는 기업과 브랜드가 얼마나 매출을 올리고 수익을 낼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투자 전문가들은 로컬기업의 투자유치 전략도 달라져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브랜드의 매력만 강조하기보다 투자자가 궁금해하는 수익성과 성장 가능성을 구체적인 숫자로 증명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전 대표는 “로컬기업들이 IR 자료 20장 중 19장을 브랜드 소개에 쓰고, 마지막 한 장에 재무 관련 내용은 '추후 협의'라고 적어오는 경우가 많다”며 “브랜드는 고객에게 파는 것이고, 투자자에게는 숫자를 팔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대출을 받으면 되는데 왜 굳이 투자를 받아야 하는지 설명하지 못하는 창업자도 많다”며 “투자금이 왜 필요하고 어디에 사용해 어떤 성과를 낼 것인지 재무제표와 손익계산서를 통해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조재만 상무는 회사 소개서와 투자유치용 IR 자료를 구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회사 소개서는 제품과 기업을 설명하는 자료지만 IR은 투자자가 궁금해하는 내용을 담아야 한다”며 “투자자가 얼마나 수익을 얻고 어떤 방식으로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는지까지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다만 숫자만큼 지역 고유의 색깔도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조 상무는 “제주 로컬기업은 다른 지역과 구별되는 뚜렷한 특색이 있다”며 “지역의 브랜드와 스토리에 정확한 숫자를 입히는 것이 경쟁력 있는 투자 전략”이라고 말했다.

특히 제주 기업에는 매출을 세분화해 분석할 것을 주문했다. 그는 “관광객이 빠지면 매출이 어떻게 되는지, 제품을 육지에서도 판매할 수 있는지 투자자들은 궁금해한다”며 “월별·분기별 매출은 물론 도민과 관광객 매출을 구분해 분석하면 기업의 성장 방향을 보다 명확하게 제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완희 대표는 투자자의 회수 전략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제가 창업자 시절에는 사업계획서와 IR의 차이를 몰라 창업 동기와 브랜드 이야기만 열심히 설명했지만 실제 투자 검토로 이어지지 않았다”며 “핵심은 투자자가 어떤 방식으로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는지 구체적인 계획을 제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기술기업은 급격한 성장을 의미하는 J커브를 기대할 수 있지만 로컬기업은 점진적으로 성장하는 경우가 많다”며 “통상 7~8년인 펀드 운용기간 안에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을지 창업자도 투자자 관점에서 고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신 대표는 로컬기업의 성장 가능성을 설명하며 대전의 '성심당'을 사례로 들었다. 그는 “성심당은 전국으로 매장을 확장하지 않고도 소비자가 대전을 직접 찾아오게 만든 브랜드”라며 “지역 원물을 활용했다는 사실만으로는 차별화가 되지 않는다. 지역에 기반을 두면서도 전국 소비자를 끌어들일 수 있는 브랜드의 성장 비전을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매출이 없는 예비창업자에게는 고객 확보를 우선하라고 조언했다. 신 대표는 “최근 투자심사를 통과한 기업 중에는 매출이 없지만 신뢰할 만한 상장사를 매출처로 확보한 사례가 있다”며 “투자자를 설득하기 전에 먼저 고객과 매출처를 설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영록 대표는 숫자와 함께 로컬만의 자원과 이야기를 경쟁력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투자자에게 단위경제성을 명확하게 설명하는 것은 기본”이라며 “여기에 서울이 갖지 못한 지역의 재료와 원료, 자원, 스토리, 커뮤니티를 결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로컬에는 사람 냄새가 나는 공동체와 고유한 이야기가 있다”며 “지역 시장에만 머물지 않고 외부 시장까지 확장할 수 있도록 생각의 크기를 넓혀야 한다. 기술보다 더 중요한 것은 생각의 격차”라고 말했다.
투자 전문가들은 투자유치 자체를 목표로 삼기보다 기업의 성장 단계와 사업모델에 맞는 투자 방식을 선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대표는 “투자는 성장에 필요한 시간을 줄이는 도구이자 결혼과 비슷한 관계”라며 “무조건 많은 투자자를 만나기보다 자신의 사업과 맞는 투자자, 적합한 성격의 펀드를 찾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성현희 기자 sungh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