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일 반도체 업계의 연구기금 비축

우리나라 반도체업계가 4년째 대호황을 맞고 있다. 특히 세계적인 메모리 수요확대에 힘입어 D램 등 메모리를 주력 생산하고 있는 반도체 업계는 호황이 라는 말로는 다 표현하지 못할 정도로 재미를 보고 있다.

올해 또한 특별한 일이 없으면 대풍작을 거둘 것이라 한다. 올들어 지금까지반도체 수출은 순항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특히 올들어 가격이 급락할 것으로 예상했던 4MD램 가격이 의외로 고가를 유지하고 있고 경쟁상대인 일본도 예상보다 16MD램의 본격적인 양산이 늦어지고 있다는 말이 들린다. 또한 올해들어 486DX2에서 펜티엄급 사이의 고성능 CPU를 장착한 이른바 멀티미디어PC의 보급이 가속화되고 있는데다 하반기에는 많은 메모리를 요구하는 32비트 시스템 운용 소프트웨어(OS)의 보급이 시작될 것으로 알려져 PC의메모리 요구량은 한층 가속화 될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엔고가 계속되고 있어 해외시장에서 국산 반도체의 성가가 한층 높아질 것이 확실시돼 올해도 양적 팽창과 함께 내실을 거둘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분석이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반도체업계가 수년째 계속되는 호황을 각자 업체들만의 잔치로 치부하고 관련 인력양성이나 기초기반기술 개발 등 반도체산업의 뿌리깊은 문제들을 해소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데는 인색하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물론 국내 반도체업체 관계자들은 그동안 고질적인 인력문제로 골치를 앓아왔고 때문에 업체별로 대학에 반도체장비를 비롯한 실습기자재를 기증하는 등 나름대로 구조적인 문제해소를 위한 노력을 해온 것도 사실이다. 반도체3 사의 장비기증은 감가상각이나 회계처리상 차이는 있을 수 있겠지만 한 회사 당 연간 20억원을 웃도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한 대학들과의 공동연구 나 위탁과제 등을 통해 기초.기반 및 응용기술연구에도 적극성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반도체업체들의 학.연과의 협력은 개별업체 단위로 이뤄지고 있어 총체적인 계획성이나 균형성 측면에서 효율을 잃고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특히각사의 주력 공장이 있는 일부 연고지역의 학교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지원이 몇몇 특정대학이나 연구소에 몰리고 있는 실정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최근 일본 반도체업체들이 "반도체산업 공동연구기금"을 설치하기로 결정했다는 보도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NEC.도시바.히타치 등 일본의 10대 반도체업체들은 최첨단 반도체재료나 제조기술을 대학과 공동으로 연구하기 위해 "반도체산업 공동연구기금"을 내년 창설키로 했으며 이를 위해 조만간 준비위원회를 설치하고, 이어 공동연구기 금의 추진모체가 될 법인조직을 설립할 계획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내년에 1억엔 정도로 연구기금을 발족시키고 2000년까지 단계적으로증액해나갈 방침인데 일본업체는 물론 일본에서 전공정을 처리하는 외국계 기업들의 참여를 허용하는 방안도 검토중이라는 것이다.

이번 연구기금 창설은 대학의 반도체연구를 활성화시키고 제조업체가 단독으로 하기 어려운 기초연구를 효율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것으로 각 제조업체로 부터 공모한 테마의 연구를 대학에 위탁하며 연구에 필요한 자금은 기금에서 조달하게 된다. 이들 업체들은 초년도 5、 6건의 테마를 모집하고 이후 3년 을 목표로 대학에 관련연구를 위탁하고 필요하면 제조업체의 연구시설도 개방할 방침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또 연구성과로 취득한 특허는 추진모체 인 법인조직이 소유하는 방향으로 조정해나갈 방침이라는 것이다.

현재 구체적인 테마로는 반도체 재료나 성막기술、 배선구조에 관한 연구 등이 거론되고 있는데 이들이 모두 2、 3년내에 실용화될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렵지만 가까운 장래에 업계에 필요한 기초기술이 되리라는 것이다.

물론 일본 기업들의 이같은 계획은 내용면에서는 우리나라에서 그동안 해왔던 정부주관의 이른바 "국책과제"와 크게 다를 바가 없다. 다만 일본의 경우는 우리에 비해 훨씬 방대하고 깊은 기초기반 기술을 확보하고 있으면서도업체들 스스로가 대학과의 공동연구를 활성화하기 위한 "구조적인 방안"을 마련한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많은 이익을 남겼다고 자랑하고 있을 것이 아니라 평소에는 하기 어려운 국내 반도체 산업의 취약한 부분들을 호황기에 공동으로 보완하는 방향으로 컨 센서스가 모아져야 할 것 같다. 그래야만 재벌을 위한 반도체가 아닌 국가전략산업으로서의 반도체사업을 한다고 자부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