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방송법(안)의 국회 상정이 내년 3월로 연기된 가운데 정보통신부가 이 법안에 대한 대대적인 손질의 필요성을 제기한 것은 방송과 통신의 세계적인 융합추세에 부응하기 위한 것으로 그동안 정치논리로 접근해 갖가지 부작용을 낳았던 동 법안에 대해 경제적·기술적 논리로 접근했다는 점에서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
배순훈 정통부 장관이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통합방송법안의 국회 상정이 유예된 것은 오히려 잘된 일』이라며 『차제에 좀더 완벽한 법 체계를 담을 수 있도록 활발한 논의와 토론이 필요하다』고 밝힌 것은 앞으로 통합방송법안의 보완방향을 예고해 주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배 장관이 『방송정책은 물론 통신위·방송위·통신윤리위 등 방송관련 각종 규제기관도 일원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힌 대목은 현재 방송관련 주무부처가 정통부·문화관광부·방송위원회 등으로 분산돼 있고 규제기관 역시 방송위원회·통신위원회·정보통신윤리위원회 등 4, 5개에 이르는 등 책임과 권한이 명확하지 않은 점을 고려할 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밖에도 배 장관은 그동안 정통부가 통합방송법안과 관련, 제시한 내용은 케이블TV를 비롯한 망 부문에 치중돼 왔지만 앞으로는 방송산업의 경쟁력 확보 차원에서 방송진입 규제기준을 포함한 전반적인 규제완화 조치에 대해 충분한 논의를 가질 것이라고 밝힌 것은 앞으로 정통부가 이 부문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것을 시사하는 것이 아닌지 궁금하다.
사실 방송과 통신의 융합이라는 현재의 기술추세를 감안할 때 이를 각각 독자적 역무로 한정한 채 정책을 수립, 집행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또 지금까지의 통합방송법안 구상이 대기업의 지분참여나 언론사의 참여 등 너무 정치적 이슈에만 매달려 시장과 기술흐름이라는 세계적 조류와는 동떨어진 방향으로 흘러들어갔다는 지적도 수긍할 만하다. 통신과 방송의 세계적인 융합추세를 담아내지 못한 통합방송법안이 설사 이번 국회 회기중에 통과됐더라도 조만간 개정 필요성이 제기되는 등 진통이 예상되므로 차제에 제대로 된 법을 만들어야 한다는 정통부의 구상은 일리가 있다
그러나 통합방송법안의 국회처리 유보조치와 거의 때를 같이해 나온 정통부의 이같은 새로운 방향제시는 지난 4년간의 기나긴 논의과정이 있었고 새 정부 들어서도 비슷한 제안이 있었는데 이제 와서 이런 문제점을 다시 들고나온 점에서 능률과 효율을 중요시하는 정부의 정책방향에도 부합하지 않을 것으로 판단된다.
통합방송법안이 이번 정기국회에 상정되지 못한 것은 여당의 발표대로 「정부 부처와 업계의 불만, 방송정책에 대한 난맥상 진단」이 이유인 것으로 알고 있을 뿐 의원입법으로 추진돼 온 통합방송법안을 정통부가 갑자기 결정적인 순간에 브레이크를 건 것으로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왕 국회 상정이 뒤로 미루어졌다면 좀더 시간이 걸리더라도 제대로 된 법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정통부의 근본취지인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우리는 방송과 통신의 진입규제는 철폐돼야 하고 완전 시장경쟁원리에 맡기는 방향이 바람직하며 따라서 정부가 개입하는 정책적 범위는 불건전 프로그램 규제 등 콘텐츠 규제로 최소화하는 것이 옳은 방향이라고 본다.
그러나 이같은 구상의 실현에 있어서도 내년 봄까지 불과 몇 개월 남지 않은 이 시점에서 보완작업을 마무리한다는 것은 여러 가지 난관이 예상된다. 우선 통신방송정책 일원화 및 규제기관 단일화 문제는 방송통신위원회 혹은 통신위원회라는 명칭으로 방송통신 규제기관을 단일화하고 궁극적으로는 정부가 방송통신정책에 일절 개입하지 않는다는 논리이나 지금까지 보아왔듯이 기득권층의 반대주장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는 만큼 이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협조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본다.
이제는 다채널 디지털 위성방송이나 인터넷방송 등에 대한 법적 근거도 확실히 마련해야 한다.
특히 규제완화가 늦춰져 고사직전의 경영난이 더욱 심각해질 것으로 우려되고 있는 케이블TV업계에 대한 대책이 시급하다. 국민회의측에서도 이같은 사정을 감안, 일단 종합유선방송법 개정안을 이번 국회에서 처리한다는 방침이지만 규제기관 일원화 조치 등을 내년 2월까지 마무리한다는 것은 사실상 시간이 매우 촉박한 만큼 좀더 현실적이고 실현가능한 구체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