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너무 앞서가는 시험인증기관 개방

 정부가 전기통신기자재 형식승인시 내년부터 새롭게 적용하기로 한 전기안전시험(일명 안전규격)의 인증기관 지정을 외국기관에까지 개방해 놓고 있다는 것은 아무리 개방이 시대적 흐름이라고 해도 현재 한국·유럽연합(EU)간은 물론 아·태경제협력체(APEC) 차원에서 국가간 품질적합성 평가에 대한 상호인증협정(MRA) 체결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 현 시점에서 볼 때 너무 앞서가는 조치라 여겨진다.

 정보통신부 산하 전파연구소는 내년부터 전기통신기자재 형식승인시 전기안전시험을 새롭게 적용하기로 확정하고 동 업무를 전담할 인증기관 지정신청을 받고 있는데 지정대상에 외국기관에까지 개방해 놓고 있는 것으로 밝혀져 국내 시험기관들이 반발하는 등 많은 논란이 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현재 전파연구소에 전기안전시험기관 지정을 신청해 놓고 있는 기관은 산업기술시험평가연구소·한국통신·삼성전자·현대전자 등 기존 전기통신기자재 형식승인 지정시험기관과 한국EMC·써티텍 등 사설 규격시험기관 등 모두 9개 기관에 달하는데 그 중에는 노르웨이 인증기관인 넴코의 한국법인 「넴코KES」가 포함돼 있는 것으로 확인됐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관계기관은 현재 국내에 진출해 안전규격 시험시설을 갖췄거나 준비중인 외국 규격인증기관으로는 이밖에도 영국 SGS, 독일 TUV라인란트·TUV프로덕트서비스, 미국 UL, 캐나다 CSA 등 상당수에 달하는데 정부가 넴코를 시험기관으로 지정할 경우 여타 외국기관의 대거진출이 우려된다고 밝히고 있다.

 특히 정부의 이같은 전기안전시험기관의 개방계획은 내년 1월부터 전화기·팩시밀리·모뎀·전기통신기자재류에 대한 형식승인시 기존 「통신규격」과 함께 「전기안전시험(SAFTY)」이 추가돼 통신업계에 적지 않은 파장이 예상되고 있는 가운데 나온 것이어서 앞으로 이에 대한 논란은 더욱 가열될 것으로 보인다.

 전파연구소 관계자는 이에 대해 『일단 새롭게 도입되는 제도이고 기술기준이나 시행절차를 국제화에 맞추다 보니 국제수준(IEC)에 부합되는 시험기관이면 지정해 주는 게 기본방침』이라고 밝혔고 이같은 기본방침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기술기준이나 시행절차의 국제화가 아무리 시급하다고 해도 최근 EU와 APEC를 중심으로 각국 규제제품에 대한 적합성 평가서(Conformity Assessment)를 서로 인정함으로써 교역을 촉진하는 이른바 다자간 MRA체결 움직임이 가시화되고 있고 정부에서도 이에 대비, 정보통신기기(정보기기·통신기자재·무선기기)·기계·자동차·의료기기 등 기기의 종류와 특성에 따라 그동안 각각 다른 근거법과 절차·방법으로 제조 및 판매를 규제해온 국내 품질인증시스템에 대한 대대적인 통합작업을 추진하고 있는 마당에 통신기자재만 따로 떼어 별도로 국제화를 추진하겠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

 정부가 최근 전기용품(산업자원부)·정보통신기기(정통부)·의료기기(보건복지부)·자동차(건설교통부)·기계류(노동부) 등으로 분산, 복잡하게 적용되고 있는 현재의 국내 품질인증시스템을 하나로 묶는 방안을 모색키로 한 것도 국제적인 MRA체결 추세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다.

 현재 관계기관 전문가들이 참여한 가운데 결성된 정보통신기 형식승인 제도개선 추진단에서는 정책 및 제도, 시험기관, 지정기관, 인증 및 사후관리, 전기안전 등 전반적인 개선안 마련에 나서고 있다.

 이에 따라 「전기통신기자재 형식승인」 「무선기기 형식검정 및 등록」 「전자파장해(EMI) 적합등록」 등으로 각각 달리 적합평가돼온 정보기기, 유·무선 통신기기 형식승인 및 등록 제도가 대폭 바뀔 것으로 예고되고 있다.

 이밖에도 정부위탁업무인 전기안전시험 인증업무까지 외국 사설기관에 위임하는 것이나 외국의 사설기관이 인증업무를 담당하게 될 경우 통신기기 기술이나 인증비용의 해외유출, 국내 시험기관의 보호 등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요인들에 대해서도 신중한 검토가 있어야 한다. 너무 앞서가는 시험인증기관 개방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