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선 논설위원 kspark@etnews.co.kr
세계경제 불황·유가상승·달러화 약세 등 트리플 악재로 가뜩이나 어려운 한국경제가 또한번의 직격탄을 맞게 됐다. 미국이 9·11 테러사태에 대한 보복의 칼날을 빼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오사마 빈 라덴과 아프가니스탄 텔레반 정권에 대한 보복공격이 단기전으로 끝나게 되면 세계경제에 미치는 파장은 최소화된다. 하지만 장기화되거나 아랍권과의 전면전으로 번지면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자칫하면 세계경제가 극심한 불황 속에 물가가 치솟는 스태그플레이션(저성장 고물가)에 시달리게 되는 등 대공황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최근들어 각국 정부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정책금리는 내리고 재정지출은 확대하는 특단의 조치를 취한 것도 그만큼 사태가 심각하기 때문이다. 테러충격과 보복공습에 따른 피해를 최소화하고 침체된 경제를 되살리기 위해 가능한 모든 경기부양책을 동원하겠다는 의도에서 나온 조치들이다.
우리 정부도 예외는 아니다. 이미 시나리오별 3단계 비상경제대책을 마련해 놓고 전쟁상황의 변화에 따라 이를 단계적으로 실행해 나갈 방침이라고 한다.
현시점에서 가장 우려되는 것은 전쟁의 장기화다. 테러와의 전쟁이 장기화되면 한국 수출의 20%를 차지하는 미국의 경기회복이 늦어져 대미 수출이 급격히 줄어들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또 미국의 보복공격이 아랍권으로 확대될 경우 유가가 폭등하는 현상까지 겹쳐 우리 경제를 압박하는 최악의 상황으로 빠져들 수도 있다.
물론 테러와 보복공격이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의 수출부진은 예상됐었다. 미국과 일본의 경제 침체, 중국 등 후발개도국 급부상, 통상압력 심화, 정보기술 경기부진, 반도체 가격 하락 등 대내외적인 요인이 발목을 거머쥐고 있기 때문이다. 수출 주력업종인 전자와 자동차 관련업체들이 연초에 수립했던 전략을 발빠르게 수정하는 등 신시장 개척과 틈새시장 공략에 분주한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과거와 같이 정부가 환율변수를 동원해 가격경쟁력을 보존해 주는 것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통상과 무역 등 미시정책 조합, 틈새품목 및 틈새시장 공략 외에는 대안이 없다. 특히 틈새시장 공략에 거는 기대는 크다.
수출시장의 새로운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는 틈새시장은 크게 두 종류다. 첫째는 구매력은 있으나 여러 가지 이유로 그동안 접근이 어려웠거나 발굴에 힘을 들이지 않았던 신규시장이고 둘째는 CDMA·SI 등 정보통신·생명공학·문화콘텐츠 관련 상품처럼 새로운 과학기술과 접목하거나 현지의 문화적 특성을 활용한 신규 수출품목 발굴이다.
물론 틈새시장이 영원히 틈새에 머무르지는 않는다. 잘만하면 우리의 주력시장, 주력상품으로 확대 발전해 나갈 수 있다.
디지털 세트톱박스 하나로 수출 1억달러를 돌파한 휴맥스, 모니터 전문 생산업체로 지난해 3300만달러를 수출한 아이엠알아이, 수화기를 들지 않고 이어폰으로 통화하는 초소형 핸즈프리 전화기로 달러벌이에 눈코 뜰새 없이 바쁜 YTC텔레콤, 초절전 디지털선풍기로 해외시장 공략에 나선 모닉스, 절전형 배선기구 전문업체인 텔리넷, CDMA 단말기 전문업체인 세원텔레콤, 산업용 모니터 수출업체인 코텍이 단적인 예다.
급감하고 있는 대미수출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반도체 등 소수품목에 대한 수출 의존도를 낮춰야 한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최근 한국무역협회가 비디오게임기·영상프로젝터·발전세트·발광다이오드 등 44개 대미수출 상품을 틈새품목으로 선정한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올 들어 미국내 수입이 전반적으로 둔화되고 있으나 전년동기대비 10% 이상 늘어난 개별 품목이 적지 않다는 것에 착안한 것이다.
미국내 수입이 급증한 품목의 주수입선은 캐나다가 30개 품목, 멕시코가 24개, 중국이 20개, 일본은 18개인 반면 우리는 휴대폰·소형자동차·광섬유케이블·인조섬유제 자켓 등 4개 품목에 불과하다. 최근의 대미수출 부진은 미국의 경기둔화뿐 아니라 우리의 대미수출 품목이 현지 수요 변화에 신속하게 대응하지 못한 것도 한몫을 차지했다는 것을 방증하는 대목이다.
지금부터라도 적극적으로 틈새시장 및 품목을 개발, 가뜩이나 어려운 수출시장의 돌파구로 삼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