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 ‘마피아 R&D’

글자 작게 글자 크게 인쇄하기

 “정부 관료들을 만나 제안하려는 과제의 핵심 기술을 설명하다 보면, 이해하려는 노력은 고사하고 낙서나 해대면서 딴전피우듯 전화받으며 애써 듣는 척하는 모습에 속에서 열불이 나신다고요? 그렇다면 당신은 아직까지 자기세계에만 갇혀 사는 ‘바보’입니다.”

 정부출연연구기관의 일부 책임연구원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다.

 이들을 만나 보면 때론 반도체 와이퍼를 생산하는 ‘클린룸’이나 ‘온실’ 속의 화초처럼 때가 안 묻어 별스럽다는 생각마저 든다. 정부출연연구기관을 포함한 공공기관의 선진화 개혁 강도가 심상치 않고, 대기업의 구조조정이 임박했다는 소식과 매스컴에 공기관 월급 수준이 연일 거론돼도 그 의미에 관심이 없다.

 그러나 이젠 정부출연연구기관도 스스로 변해야 산다. 이미 사회 전체가 ‘서바이벌 경쟁’에 돌입해 있다. 정부에 기대 오로지 ‘연구’나 하며 남보다 더 많이 월급받던 시절은 과거사일 뿐이다.

 연구기간을 단축하자는 ‘속도전’이니 ‘애로사슬관리(CCPM)’ 기법이니 하는 경영효율화 방안이 도입되고, 이를 위해 조직은 ‘어얼리 버드’에 ‘멀티 플레이어’를 요구하는 세상이다.

 모 벤처기업 CEO가 전하는 말은 출연연 연구원에게 여전히 뼈 아픈 반성을 요구한다.

 “시스템을 100번 돌리면 100번 모두 제대로 된 결과물이 나와야 하는데 그중 85번만 좋은 결과가 나오는 시스템이 무슨 소용입니까. 출연연 연구원들의 연구는 100의 95가 그런 식이에요. 도대체 시장에서 쓸 수가 없어요.”

 당연히 이 이야기에는 연구원들의 인력 및 시간 부족과 예산 타령이 따라 붙는다. 그러나 그걸 만들어내야 생존하는 시대가 오고 있다.

 R&D만이 아니라 과제 수주도 마찬가지다. 연구과제중심제도(PBS) 아래에서 신규과제를 기획하고, 담당 공무원을 강력하게 설득하고, 남과 치열하게 경쟁해야만 ‘내가 살 수 있는’ 최악의 환경이다.

 살기 위해선 상대방이 내 제안과제를 이해해주기 바라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OK’ 하는 식이 돼야 한다.

 이스라엘 물리학자 E M 골드랫 박사가 창시한 경영혁신 방법론인 강제이론(TOC)에 ‘마피아 오퍼’라는 말이 있다. 이탈리아 범죄 집단인 마피아의 제안은 거절하기 힘들다는 데서 나온 말이다. 그만큼, 누가 들어도 거절하면 ‘바보’가 되는 강력한 제안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제 제안 분야에서만이 아니라 연구 분야에서도 ‘마피아’ 개념이 도입돼야 한다. 정부에서 내려오는 ‘말도 안 되는’ 톱다운 형태의 과제를 수주하느니, 정부를 설득하는 기막힌 과제제안을 바텀업으로 던져보자.

 기술이 어렵다고, 또 관료가 무능하다고, 그냥 포기하며 상대방에게 “무식하군…” 하는 식의 넋두리는 필요 없다. 상대방이 “아!” 하고 탄성을 자아내도록 내가 먼저 만들어야 한다.

 정부가 수십억원을 들여 추진하고 있는 출연연 발전위원회 일환의 ‘코어(CORE) 프로젝트’도 마찬가지다. 정부가 먼저 방향을 내놓기 전에 스스로 출연연이 환골탈태해 발 벗고 나서 정부를 리딩하면 안 되나? 출연연에도 이제 강력한 기획과 R&D를 수행할 ‘마피아 R&D’가 필요하다.

 왜냐고? 출연연이 우리나라 최고의 두뇌집단이자 국가 성장동력을 책임질 핵심이기 때문이다.

전국취재팀장 박희범 hbpark@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