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CT 거버넌스 새판을 짜자]<1부> 미래가 없다 6. 유명무실한 거버넌스

이명박 정부가 정보통신기술(ICT) 조직을 개편하면서 내세운 논리는 `분산`과 `조화`의 장점이다. 정보통신부와 과학기술부에 집중된 책임과 권한을 여러 부처에 나눠 개별적으로 육성하도록 만들었다.

4년이 넘은 지금 당초 취지는 무색해졌다. 방향타를 잃은 ICT 정책은 오히려 중복과 혼선을 빚었다. 조정 기능은 사라졌고 예산은 줄어들었다. 인력 양성은 뒷전으로 밀렸다. 한마디로 ICT 거버넌스가 무너지면서 당초 취지가 유명무실해진 셈이다.

ICT 거버넌스 분산은 정책 부재로 이어졌다. 국가정보화전략위원회가 지난해 말 발간한 `국가정보화 거버넌스 개편방안` 보고서는 우리나라가 분산형보다 집중형 모델이 적합하다고 분석했다. 그것은 우리나라가 공공 부문 주도의 연구개발 성향이 크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에 ICT 전담 부처가 없기 때문에 우리나라도 필요치 않다는 논리는 어불성설이다. 한국적 특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 오류다. 지난해 11월 방한한 에릭 슈미트 구글 회장은 “한국 고유의 성공 모델을 해체하지 말고 발전적으로 승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명확한 ICT 거버넌스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산업계에서 더욱 높다. 전자신문 미래기술연구센터가 ICT 업계 인사 5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전담 부처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응답이 66.1%, 대체로 필요하다가 24.2%로 나타났다.

열 명 중 아홉 명 이상이 전담 부처를 바라는 셈이다. 전담 부처의 형태 역시 독립 부처가 66.1%로 압도적 결과를 보였다. 바람직한 업무 범위는 분산된 기능을 총괄하는 형태가 51.6%로 과반을 차지했다.

◇실종된 조정 기능=분산형 거버넌스는 우선 조정 기능 부재를 낳았다. 방송통신 규제 기능은 방송통신위원회, 산업 진흥은 지식경제부, 공공정보화와 정보보호는 행정안전부, 콘텐츠는 문화체육관광부로 나뉜 결과 업무 중복 사례가 속출했다.

방통위와 지식경제부는 방송통신 장비 관할로 대립각을 세웠다. 두 부처는 스마트폰산업 활성화를 두고도 충돌 중이다. 지경부와 행안부는 소프트웨어 규제 개선에서 부딪쳤고, 문화부는 방통위와 방송 콘텐츠를 놓고 옥신각신했다.

정보통신진흥기금을 둘러싼 네 부처의 갈등은 조정 부재를 가장 잘 보여준다. 방통위가 기금을 조성하지만 사용은 네 부처가 함께 한다. 지난 2008년 지경부가 기금으로 사업계획을 짤 때 방통위와 문화부가 반발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2009년 터진 분산서비스거부(DDoS) 공격 당시도 마찬가지다. 국가행정망 보호와 보안 정책은 행안부, 민간망 보호는 방통위, 보안산업 육성은 지경부로 흩어져 신속한 대응이 불가능했다. 피해조사 결과 발표도 제각각 이뤄졌고 정보보호진흥원은 같은 보고를 세 번씩 반복했다.

◇혈세 낭비한 투자 중복=조정 기능이 사라지면서 업무와 투자 중복이 이어졌다. 2009년 초 방통위와 지경부는 모바일근거리결제(NFC) 단체를 따로 만들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새로 떠오른 산업을 담당하려는 주도권 다툼이다. 정보통신부 해체 후 1년도 지나지 않아 불거진 일이다.

같은 해 4월 22일 정보통신의 날 행사는 방통위와 지경부가 따로 치렀다. 서로 정보통신 주무부처를 자임하면서 일어난 웃지 못할 해프닝이다. 업계는 어느 행사에 얼굴을 비춰야 할지 몰라 곤혹스러워했다.

방통위와 행안부 사이도 만만치 않다. 무선인식 전자태그(RFID)와 유비쿼터스 센서 네트워크(USN) 사업을 두 부처가 모두 시행했다. 2010년 행안부가 만든 정보보호 자동화 시스템은 2008년 이미 방통위가 개발해 운영 중인 것과 다르지 않았다.

방통위와 문화부는 방송 콘텐츠 육성에서 겹쳤다. 방통위는 5642억원 규모 `방송 콘텐츠 진흥 종합계획`을, 문화부는 6546억원을 들여 `방송영상산업 진흥 5개년 계획`을 각각 추진했다. 이 문제는 정치권까지 번져 여야 대립을 야기했다.

◇예산은 줄고, 인력은 부족하고=투자는 중복됐지만 오히려 ICT 예산은 줄어들었다. 효율이 두 배로 떨어질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소프트웨어 분야 예산 감소는 특히 두드러졌다. 지경부의 ICT 투자 예산 중 소프트웨어가 차지하는 비중은 20%를 밑돈다. 문화부 관련 예산은 10억원 미만이다. 스마트폰이 세계 경제 중심으로 자리 잡으면서 소프트웨어 가치는 더 높아졌지만 우리나라는 역행했다.

세계 ICT 경쟁력 지수를 보면 예산 감소 결과가 여실히 드러난다. 우리나라 ICT 경쟁력은 2007년 3위에서 2008년 8위와 2009년 16위를 거쳐 2011년 19위까지 추락했다. 민간보다 정부의 역할이 큰 항목의 하락세가 뚜렷했다.

민간의 영향이 강한 비즈니스 환경과 인적 자본은 경쟁력을 유지했다. 반면에 정부 지원이나 R&D 환경 등은 크게 떨어졌다. 2008년 3위던 정부 지원은 2011년 28위까지 밀렸다. 같은 기간 R&D 환경은 2위에서 12위로 하락했다.

인력 부족도 자연스럽게 발생했다. ICT 관련 학과 평균 입학정원은 2006년 82명에서 2009년 79명으로 줄었다. 입학 성적도 떨어졌다. 국내 우수 5개 대학 가운데 4곳에서 공학 계열이 중위권으로 밀려났다. 급기야 2010년 서울대 컴퓨터공학부가 미달되는 사태까지 일어났다.

장동준기자 djj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