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유산 처리, 사회적 논의 시작돼야

“2주기네요. 잊지 않고 항상 기억하며 살겠습니다. 너무 죄송하고 감사합니다.”(강**)

“당신은 자랑스런 대한민국 군인입니다. 나라를 위한 충심.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편하게 쉬세요…충성…!”(김**)

지난 26일 백령도에서 천안함 추모식이 열리던 시간, 싸이월드 미니홈피에도 눈물이 흘렀다. 적지 않은 사람이 희생 장병 25명의 미니홈피를 찾아 그리움을 전했다. 홈피 사용자는 세상을 떠났지만, 제3자에 의해 사실상 추모공간으로 관리되고 있는 것이다.

SK컴즈 관계자는 “많은 사람이 방문하기 때문에 회사에서도 모니터링을 해 악성 댓글이나 비방글이 실리지 않도록 관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잊혀질 권리`와 함께 법률적 공백 상태인 `디지털유산 처리` 가이드라인이 마련돼야 한다는 필요성을 제기한다.

◇사회적 논의 시작돼야=현행법에서는 불의의 사고를 당한 망자의 유가족이 디지털유산을 상속할 수 없고, 자살한 청소년의 부모가 경찰 수사를 진행하지 않고선 기록물을 볼 수 없다.

정보통신망법 21조와 통신비밀보호법 10조에 따르면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 등이 제3자에게 이용자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선 반드시 이용자의 동의를 받도록 하고 있다. 죽은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비공개로 저장된 정보는 이를 공개하는 것이 사자의 의지에 반하거나 명예를 훼손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행법상으로 이용자가 사망하면 그가 ISP업체와 맺은 약관상 계약은 소멸되고, 제3자가 망자의 ID와 패스워드를 이용해 사이트에 접속하는 것은 위법 논란에 휘말릴 수 있다. 인터넷 서비스사업자들은 사별로 서로 다른 약관을 적용 중이다.

◇관련법 제정, 19대로 넘어가=박대해·유기준·김금래 의원 등이 발의했던 디지털유산 처리 관련법 처리는 사실상 무산됐다. 이들 3개 개정안은 1년 6개월 이상 처리되지 않고 있다.

김유향 국회입법조사처 팀장은 “관련법은 폐기될 가능성이 커졌고, 19대 국회에서 다시 논의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반면에 해외에서는 독일 등을 중심으로 관련법 제정 논의가 시작됐고, 레거시 로커·데드 스위치 등 디지털유산을 처리해 주는 민간기업도 생겨나는 등 신규 비즈니스로 부상하고 있다.

디지털유산 처리는 △망자 개인의 프라이버시 △망자와 메일을 주고받은 제3자의 사생활 보호 △망자가 남긴 글이나 사진의 재산권 인정 여부 △상속으로 인정할 경우 상속 범위 등 복잡한 문제를 안고 있다.

◇포털 업계 관망 중=인터넷 업계는 가이드라인 제정에는 공감하면서도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

다만 이용자들의 편익을 기본으로 한 자율규제를 추진 중이다. 유력한 방안은 망자가 사용한 사이트 계정을 폐쇄하되, 상속권자들이 증빙서류를 제출하면 메일과 블로그 등에 남긴 콘텐츠는 상속권자들에게 제공하자는 것이다.

황용석 건국대 교수는 “망자가 남긴 글이나 사진 등은 상법상으로 유산이 가능하다”며 “이용자 편익 관점으로 접근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설명했다.

디지털유산=사망한 사람이 남긴 디지털 형태의 모든 자료를 말한다. 사이버 공간에 남긴 글과 그림, 동영상을 말한다. 법률상 정보에 해당하며, 정보통신망법 등의 적용을 받는다.

디지털 유산 관련 발의된 법안 현황

디지털 유산 처리, 사회적 논의 시작돼야


김원석기자 stone201@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