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반도체 50년]<끝> 성장판 닫힌 한국 팹리스 업계의 부침

한국 팹리스 산업계의 업력은 짧지 않다.

그동안 정부도 적잖은 정책자금을 지원하며 팹리스 산업계 활성화를 지원했다. 그러나 현 시점에선 이 산업의 성장이 성공했다고 말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한때 국내 팹리스 업계 성장을 주도하던 엠텍비젼은 스마트폰 시장 활성화 등 전방산업 변화에 능동 대처를 하지 못해 어려움에 빠졌다. 대규모 외환파생상품인 키코(KIKO)에 가입해 800억원 이상의 손실을 본 후 코스닥에서 퇴출됐다. 코아로직 역시 전방산업계의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이 회사는 최근 중국 자본에 인수됐다. 반도체 사업은 하지 않을 계획이다.

2005년. 권기홍 전 에이디칩스 사장이 독자 코어를 내장한 MCU와 개발보드를 소개하고 있다(전자신문DB)
2005년. 권기홍 전 에이디칩스 사장이 독자 코어를 내장한 MCU와 개발보드를 소개하고 있다(전자신문DB)

씨앤에스테크놀로지는 삼성전자 디자인하우스와 팹리스 사업을 함께하며 성장했다. 그러나 자금난에 빠져 창업주가 회사를 떠났다. 이 회사는 아이에이라는 사명으로 새로운 도약을 꿈꾸고 있다. 아이앤씨테크놀로지는 휴대폰용 DMB 칩으로 한때 성장가도를 달렸으나 시장이 사라지면서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지 못했다. 4년 연속 적자로 현재 관리 종목에 지정돼 있다. 한국형 중앙처리장치(CPU) 코어 기술을 보유한 에이디칩스 역시 같은 이유로 상장 폐지 위기에 몰렸다. 최근 회사 주인이 바뀌면서 재무 구조를 개선해 나가고 있다. 멀티미디어 분야 제품군을 다루는 네오피델리티는 2013년, 2014년에 이어 지난해에도 적자를 지속했다. 올해 흑자 전환을 이루지 못하면 내년에는 관리 종목으로 지정된다.

팹리스 업계의 다크호스로 등장했던 피델릭스. 2008년.안승한 대표가 웨이퍼를 들어보이고 있다. 피델릭스는 지난해 중국 자본에 인수됐다. (전자신문 DB)
팹리스 업계의 다크호스로 등장했던 피델릭스. 2008년.안승한 대표가 웨이퍼를 들어보이고 있다. 피델릭스는 지난해 중국 자본에 인수됐다. (전자신문 DB)
2008년. 김종갑 하이닉스반도체 사장이 경영권을 인수한 실리콘화일을 찾았다. 김종갑 하이닉스반도체 사장(왼쪽에서 네 번째)이 신백규 실리콘화일 사장(왼쪽에서 세번째) 등과 상생협력·동반발전을 위해 힙을 합치기로 하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전자신문 DB)
2008년. 김종갑 하이닉스반도체 사장이 경영권을 인수한 실리콘화일을 찾았다. 김종갑 하이닉스반도체 사장(왼쪽에서 네 번째)이 신백규 실리콘화일 사장(왼쪽에서 세번째) 등과 상생협력·동반발전을 위해 힙을 합치기로 하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전자신문 DB)

메모리 설계 팹리스인 피델릭스는 지난해 중국 자본에 인수됐다. 상보형금속산화반도체이미지센서(CIS) 전문 팹리스 업체로 시작한 실리콘화일은 하이닉스로 인수된 뒤 홀로 사업 영역을 개척해 오다가 SK하이닉스 100% 자회사로 편입됐다. 최근 SK하이닉스가 CIS 사업을 강화하면서 사실상 반도체 설계 사업을 접었다.

이처럼 많은 팹리스가 무너지자 디자인하우스 업체도 어려움을 겪었다. 디자인하우스는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업체 공정에 맞춰 실제 생산에 활용될 마스크 제작과 테스트 등 설계 분야 백엔드 작업을 맡는 업체를 말한다. 국내 최대 디자인하우스이자 팹리스 업체이던 다윈텍(현 한컴지엠디)은 한컴에 인수된 뒤 디자인하우스 사업을 접었다. TSMC 디자인하우스 지정업체인 에이디칩스도 최근 실적이 내리막길이다. 삼성전자 디자인하우스 파트너인 알파칩스 역시 실적 부진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최근 업계에선 이 같은 팹리스 산업계의 부진에 대해 “한국 반도체 산업의 허리가 끊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2000년대 중반까지 설립된 팹리스를 1세대와 2세대라고 규정할 수 있다. 1세대와 2세대는 팹리스 산업을 만들고 실적을 쌓았다. 이제는 새로운 기술로 신시장을 창출할 수 있는 3세대 팹리스가 출현해야 한다. 각 산업 분야에서 세계 기술 트렌드를 이끌어 가야 세계 일등 기업으로 올라설 수 있다. 장기 개발 로드맵을 세워 놓고 연구개발(R&D)에 임해야 한다. 과감한 인수합병(M&a)도 불사하겠다는 열린 마인드도 필요하다.”

김달수 티엘아이 대표가 디스플레이 구동칩과 웨이퍼를 들어보이고 있다(전자신문 DB)
김달수 티엘아이 대표가 디스플레이 구동칩과 웨이퍼를 들어보이고 있다(전자신문 DB)

김달수 티엘아이 대표의 의미심장한 말이다.

한주엽 반도체 전문기자 powerus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