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미래학을 위한 변명

[기고]미래학을 위한 변명

최근 미래 불확실성이 높아지면서 '미래학' 관심이 부쩍 늘어났다. 4차 산업혁명도 미래학에 관심을 높이는 요인의 하나다. 반가운 현상이다. 그만큼 우리 사회가 대응력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미래학에 쏠린 관심이 높아질수록 미래학 비판도 늘었다. 이 또한 반겨야 하는 현상이긴 하지만 비판의 다수가 미래학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데서 출발했다. 미래학을 미래를 과감하게 점치는 것쯤으로 여기고 있다.

미래학의 학문 대상은 미래 불확실성이다. 우리가 미래를 알고 있음과 모르고 있음으로 나눈다면 공학은 이미 알고 있는 것을 근거로 한다. 과학은 노력하면 알 수 있는 것을 주요 대상으로 한다. 이에 반해 미래학은 노력해도 알 수 없는 것을 주요 대상으로 한다. 노력해도 알 수 없는 것은 너무 복잡해서 알 수 없는 것과 아직 정해지지 않아서 알 수 없는 것으로 나뉜다. 두 가지가 미래 불확실성을 이룬다.

기존 학문은 미래 불확실성을 제대로 다루지 않고 있다. 경제학, 경영학, 물리학 등에서 불확실성을 다루기는 하지만 주요 대상이 아닐 뿐만 아니라 확률에 의해 다룰 수 있다고 본다. 미래에 대해 '알지 못함'과 '알지 못함도 모르는' 절대적 불확실성을 직시하고 대응하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미래학 이해가 필요하다.

미래학에는 3대 공리가 있다. 첫째는 미래가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다. 둘째는 미래에 대한 유의미한 예측은 터무니없는(Ridiculous) 것이다. 셋째는 지금 우리의 의사결정과 행동이 미래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즉 미래란 가능성으로 가득 차 있는 시공간으로, 우리 사회와 인류가 바람직한 미래를 만들기 위해 고민하고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 미래학의 결론이다.

다른 한편으로 미래는 가능성으로만 가득 차 있는 것이 아니다. 물리 법칙, 과학 기술 등의 추세, 인류의 심리 한계 및 역사 맥락에 의해 일정한 제약이 존재한다. 그래서 미래는 '가능성으로 열려 있지만 완전히 비어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한다.

여기에 미래를 점치는 사람들이 설 수 있는 작은 늪지가 존재한다. 특정한 시기에 어떤 기술이 개발될 것으로 주장하거나 그러한 기술로 인해 정치, 경제, 사회가 확정적으로 바뀔 것으로 예언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미래를 미리 알 수 있다면 매우 자극적인 일이다. 그러나 우리가 정해야 하는 미래를 점친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다. 예를 들어 자율주행자동차가 언젠가 현실화될 것은 틀림없지만 그로 인해 정치, 경제,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알 수가 없다. 왜냐하면 우리가 아직 결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별한 일이 발생하지 않는다면 인류 평균 수명이 150세를 넘는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그 시기는 알기 어렵다. 인공지능(AI) 발달, 생명과학 기술에 대한 투자, 생명 연장에 대한 사회 합의에 따라 달라진다. 이는 우리가 정해야 하는 일이기도 하다.

미래학은 과학 기술 지식을 바탕으로 하고, 인문학을 지향하기도 한다. 또는 인문학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과학 기술 촉매제 역할을 수행하기도 한다. 미래 불확실성에 대해 기업이 대응할 수 있도록 하고, 바람직한 미래를 만들기 위해 사회 합의를 유도하기도 한다. 인류가 지구 온난화와 같은 미래 위험을 직시하게도 하며, 유전자와 기계 등으로 인해 변화할 인류의 모습을 미리 전망하게도 한다.

미래학에서 '미래 예측'이란 이미 정해진 미래를 점치는 것이 아니다. '바람직한 미래를 설계하기 위한 복잡한 미래에 대한 대화'로 정의된다. 우리는 좀 더 바람직한 미래를 만들기 위해 미래와 관련한 다양한 대화를 해야 한다.

윤기영 에프엔에스컨설팅 대표 synsaje@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