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주요 병원들이 의료인력 부족과 고령화에 대응할 지속가능한 의료체계의 해법으로 인공지능(AI)을 제시했다. AI를 진료 보조 수단을 넘어 병원 운영 전반의 혁신 동력으로 확장하고, 병원과 가정의 건강정보를 연결해 예방과 일상 관리 중심으로 의료 범위를 넓혀야 한다는데 뜻을 모았다.
20일 서울 코엑스 마곡 컨벤션센터에서 개막한 '제49차 국제병원연맹(IHF) 세계병원대회'에서는 각국 병원 관계자들이 AI와 데이터를 활용해 의료 현장의 문제를 해결한 경험을 소개했다. 고령화와 의료인력 부족이라는 공통 과제에 직면한 병원들은 지속가능한 의료체계를 위한 해법으로 AI에 주목했다.

기조연설자로 나선 박헌수 삼성전자 MX사업부 디지털헬스팀장(부사장)은 가정에서 수집한 건강정보를 병원 진료와 연결해 질병 예방과 환자 관리 효과를 높이는 미래를 제시했다. 웨어러블 기기와 가전 등으로 일상 속 건강 상태를 파악하고 이를 의료진 판단에 활용하는 구상이다.
박 부사장은 “가정에서 얻은 건강 정보를 병원과 연결하면 환자 상태를 더 입체적으로 파악하고 적절한 시점에 개입할 수 있다”며 “가정과 병원의 데이터를 연결하면 질병 예방 실현의 성공 확률을 높일 수 있고, 질병 예방은 비단 병원만의 역할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미국 의사 출신인 박 부사장은 2020년 삼성전자 미국법인에 합류한 뒤 차세대 헬스케어 플랫폼 구축을 주도하고 있다.
그는 “삼성전자는 디지털 돌봄 프로그램을 병원 업무 현장에 적용하고 환자 참여 정보를 진료에 반영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며 “의료와 웰니스를 연결하고 여기서 새로운 서비스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제안했다.
AI와 데이터로 진료 현장에서 성과를 창출한 각국 병원 사례를 소개하는 세션에는 높은 관심을 반증하듯 200여명이 몰려 강연장을 가득 메웠다.

홍콩 병원관리국(HA)의 오웬 와이 록 응 보건의료정보 분석가는 활력징후와 검사결과 등 21개 임상 변수를 분석해 향후 48시간 내 환자 상태 악화 위험을 예측하는 시스템을 소개했다. AI가 위험 환자를 선별하면 간호사가 환자 상태를 평가하고 의사가 필요한 검사와 치료를 결정하는 방식이다.
응 분석가는 “AI가 위험 경보를 알리면 간호사가 1차로 환자를 평가하고 이후 의료진이 필요한 검사나 치료 등을 판단한다”며 “6개월 운영 결과 하루 평균 약 35명을 식별했고 환자 입원 기간이 평균 1.5일 줄었다”고 소개했다. 사망·중환자실 관련 지표도 개선돼 다른 병원으로 적용을 단계적으로 확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싱가포르 국립대병원은 MRI 검사 전 체내 삽입기기 유무를 확인하는 기록 점검 업무를 자동화했다. 자동화 이후 해당 업무에 드는 시간이 400분에서 5분 미만으로 줄었다.
테오 선임 방사선사는 “하루에 약 160명의 기록을 일일이 검토하지 않아도 AI가 MRI 의뢰서, 기기 관련 기록, 과거 판독문을 검색해 의료진이 확인할 환자를 추려준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 방식을 12개월간 3만2000건 이상의 MRI 검사에 적용했으며 환자가 신고하지 않은 삽입기기 38건을 사전에 발견해 조치했다고 말했다. 반복적인 기록 검토 부담을 줄이는 동시에 검사 안전성을 높인 것이다.
이왕준 대회 조직위원장(IHF 차기 회장)은 “스마트폰이 사회 전반의 변화를 끌어낸 것처럼 AI가 병원과 의료체계에 근본적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며 “병원 리더들이 AI를 안전하고 책임감 있게 활용해 환자와 의료진에게 도움이 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배옥진 기자 witho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