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민 교수의 펀한 기술경영]<168>혁신경쟁궤적

X축을 성능, Y축을 가격으로 놓자. 경쟁 제품 5개를 골라 그래프 위에 표시해 두자. 저가 제품은 대개 왼쪽 아래에 위치한다. 시장 세그먼트 상층을 차지한 고급 제품이라면 이 그래프 오른편 위쪽에 표시되기 마련이다. 중가 제품들은 제각각 이들 두 점 사이 어디에 자리 잡는다. 이처럼 가격과 성능은 비례하는 궤적으로 그려진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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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에 경쟁 기업의 신제품은 고민거리임에 분명하다. 가격과 성능 모두 만만찮은 제품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물론 이쪽이라고 해서 신제품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런 전쟁이야 당연히 예상하고 있다. 그러나 경쟁 제품이 예상을 뛰어넘는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동안 애써 짜 둔 전략은 온통 엉망이 되는 셈이었다.

실상 기업에 이런 일은 일상이다. 경영학자의 대안도 백인백색일 터이다.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체계화된 직관 분석 방법은 없을까. 한번 혁신 경쟁 궤적으로 따져보자.

이것을 하려면 먼저 한 가지 준비가 필요하다. 첫째 제품을 비교하는 성능이란 것부터 정해야 한다. 컴퓨터 저장장치라면 저장 용량이 적당하겠다. 물론 성능을 이것 하나로 나타내기는 어렵다. 그러나 하나하나 따질 수도 없다. 소비자에게 가치 있는 요소를 묶어 성능이란 것으로 나타내 보자.

그다음은 경쟁 제품을 추려 내는 것이다. 물론 소비자 관점에서 정해야 한다. 냉장주스라면 과일 맛 청량음료도 당연히 포함해야 한다.

이제 이렇게 고른 경쟁 제품들을 기존 제품과 신제품으로 나누어 그래프 위에 표시해 보자. 첫 궤적은 기존 제품만으로 그려야 한다. 대개 원점 근처에서 시작해 우상향하는 선으로 나타난다. 이제 곧 출시될 신제품만 골라 선으로 표시해 보자. 그래프에는 2개의 궤적이 그려졌다. 하나는 지금 제품, 다른 하나는 신상품의 궤적이다. 당신이 제대로 그렸다면 신제품 궤적은 기존 제품보다 오른쪽에 위치한다. 대개 신제품은 성능이 더 좋거나 가격이 낮은 탓이다. 거기다 신제품이 혁신 제품이고 혁신 제품일수록 기존 궤적에서 한참 더 멀리 벗어난다.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이제 두 궤적을 비교해 보자. 여기엔 당신의 신제품과 경쟁 브랜드의 신제품이 표시돼 있다. 만일 신상품 궤적이 기존 궤적과 평행하다면 그럭저럭 당신은 혁신에 뒤처지진 않았다. 그렇지 않고 당신 제품 사이에서 두 궤적이 붙어 있다면 좋지 않은 시그널이다. 왜냐하면 당신이 다른 기업만큼 혁신을 하지 못했다는 의미기 때문이다.

몇 해 전 한 선도 기업이 이런 궤적을 보고선 화들짝 놀라워했다. 경쟁사 중저가 신제품의 가격 대비 성능이 시장 궤적을 한참 넘어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경쟁사가 미래 중저가 시장을 확고히 장악할 게 분명했다. 문제는 내 신제품이 시장 궤적에도 못 미치는 데 있었다. 특별한 일이 없다면 내 시장점유율이 줄어들 게 빤했다.

이 기업은 두 가지 전략을 세운다. 첫째 신제품이 시장 궤적을 앞서게 재설계했다. 경쟁 기업에 대한 첫 번째 반격이었다. 이 리드 펀치에 따라 던진 카운트 펀치는 두 번째 신제품이었다. 바둑에서 한발 앞서 맥을 짚듯 경쟁사 제품의 가격-성능 공간 앞에 더 나은 제품을 배치했다. 고가품 시장 점유율은 확고해졌고, 중저가 시장에선 경쟁 기업을 밀어내게 됐다.

종종 단순한 그래프 하나가 백 가지 제안보다 나을 때가 있다. 당신이 혁신을 놓고 경쟁해야 한다면 혁신 경쟁 궤적은 기억해 둘 만하다.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jpark@konku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