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굴이나 땅속에 묻은 항아리에 숨어서 엿듣는 행위를 지난날 절청(竊聽)이라 했다. 명나라 주원장은 그림을 빨리 그리는 특무를 활용해 폐쇄회로(CC)TV의 수동 버전을 운영했다. 일본 전국시대 닌자는 바람과 함께 잠입해서 천장과 벽이 돼 염탐했다. 조선 시대에는 '규비(糾婢)'라는 직책의 하인을 둬서 유력 인사의 주변을 엿듣고 보고하게 하는, 나름 조직 차원의 도청이 일반화돼 있었다고 한다.
이처럼 전쟁과 경쟁에서 우위를 도청에서 찾고자 한 노력은 역사의 어느 순간에서건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실제 현대 의미의 도청기가 제작 운영된 시기는 1800년대 말부터다. 교환원이 직접 연결해주던 초창기 전화를 도청하기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1,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세계는 무기체계뿐만 아니라 도청 역사 진보의 비약을 경험했다. 무선통신과 인터넷으로 넓어진 도청 범위는 원거리에서 레이저 도청, 음성 증폭, 위성, 인터넷 데이터, 펌웨어 해킹 등 헤아릴 수 없는 분류와 기술로 첨단 중 첨단이 됐다.
몇해 전 위키리크스는 2017년 3월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애플, 구글, 삼성 등 기기 펌웨어를 해킹해서 일반인을 상대로 한 무차별 도·감청 플랫폼을 운영해 왔다고 폭로했다. 심지어 스마트TV 상대로는 '가짜로 꺼지는' 기능을 장착시켜서 켜지지 않고 엿듣는 기술을 구현했다고 전한다.
알 수 없는 정보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이니 만큼 개인정보, 인권에 대한 깔끔한 포기와 더불어 오히려 요인으로 분류돼 도청의 주인공이 되면 열심히 살고 있다는 방증으로나마 위안하라는 업계의 위로가 눈물겹다.
그런데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도청에는 전쟁과 첩보, 체제 안전 등과 거리가 있는 주제의 엿듣기 또는 엿보기가 횡행하는 모양이다. 상업 목적의 도청이 만연하는 것이다. 줄여서 상도(商盜)라 부르면 어떨까.
최근 상도의 대표 사례라 할 만한 인공지능(AI) 음성비서의 운영 행태는 접할수록 재미있다. 애플은 시리를 통해 입력되는 음성 데이터를 하청업체 직원이 듣고 평가하게 했다. 마이크로소프트(MS)에서는 스카이프의 번역 서비스를 위해 대화 내용을 청취해 왔다고 한다. 물론 이용자에게 무엇을 수집하는지에 대한 고지는 당연하게도 없었다.
블룸버그 기사에 따르면 아마존 알렉사와 사용자 간 대화 녹음이 세계 수천명의 아마존 직원에 의해 모니터링되고 있었다. 성폭력이 의심되는 정황을 접하기도 했으며, 흥미 있는 내용은 메신저를 통해 아마존 직원들 간에 공유하기도 했다고 한다. 물론 궁금하면 어디 사는 아무개인지 주소 정보를 어렵지 않게 확인했다는 사실은 덤이다.
보도된 문제들에 대해서야 반성이며 다양한 미봉책의 전시가 일상이니 딱히 더 의심하지 않기로 하는 일인이다. 거리를 걸으면 9초에 한 번꼴로 찍힌다는 CCTV의 공해를 넘어 이제는 돈을 들여서 셀프 도청 네트워크를 자발 구축하는 세상이다. 물론 독거노인의 안전지킴이를 표방하거나 편리한 감성 서비스를 지향하는 순기능을 부정할 마음은 없다.
주화작청(晝話雀聽)이요, 야화서청(夜話鼠聽)이라는 이야기가 무색하게 낮말을 알렉사가 듣고 밤 말을 구글 홈이 시도 때도 없이 들어 재끼는 수상한 시절이다.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AI 스피커의 과도한 정보 수집과 사생활 침해 사례를 막기 위해 '정보통신망법 개정안 발의' 논의가 한창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새로운 서비스로 인한 개인정보와 인권 침해의 역기능에 대한 면밀한 고민을 바탕으로 한 국회의 입법 노력에 찬사를 보내면서 하루빨리 재정립되기를 바란다.
이상중 롯데정보통신 전문위원 uspro@lotte.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