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 日 수출규제 10개월…정부, '소부장 자립' 가속페달

정부, 특별법·예산 발빠른 대응
산업계, 자발적 투자로 화답
극일 넘어 밸류체인 강화 속도

[이슈분석] 日 수출규제 10개월…정부, '소부장 자립' 가속페달

# 일본 정부는 작년 7월 우리나라를 안전보장 우방국인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고 불산, 포토레지스트, 불화폴리이미드를 각각 개별 수출 허가 품목으로 전환했다. 한국이 일본에서 수입한 품목에 대해 충분한 수출 관리를 하지 않고 있다는 납득하기 어려운 명분을 내세웠다. 우리를 상대로 무역 통제에 나서면서 자국 내 정치적 갈등을 해결하는 것은 물론 한국이 세계 시장을 주도하는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 소재 수출을 제한, 경제적 타격을 노린 전략으로 풀이된다. 우리 정부는 발빠른 대응에 나섰다. 수출규제 품목 공급 안정화를 위해 국내생산을 확대하고, 수입국을 다변화하는데 총력을 기울였다. 소재·부품·장비(소부장) 경쟁력 강화를 국가 차원에서 추진하기 위한 특별 조치법도 마련했다. 기업들은 자발적으로 투자를 확대하고 경쟁력 있는 해외 기업을 인수하는 등 힘을 보태고 있다.

◇산·관, '소부장 자립' 가속페달

우리 정부는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 발표 이후 즉각 대응 체계를 가동했다. 민·관의 긴밀한 협조를 기반으로 예산, 금융, 세제, 규제 특례 등 우리나라의 모든 자원과 역량을 쏟아 붓는 범정부 차원 종합대책을 수립하는 한편 이를 신속하게 실행하는 데 주안점을 뒀다.

현재 일본 정부가 지정한 3대 수출규제 품목은 국내 생산 확대, 수입국 다변화 등으로 안정된 공급망을 확보된 상태다.

불산액은 공장 신증설로 국내 생산능력을 기존 대비 2배 이상 늘렸다. 중국 등 일본 이외 국가에서 생산된 제품도 테스트를 거쳐 실제 생산에 투입하고 있다. 불화수소가스는 국내 생산 기반 확대와 미국산 제품 수입을 병행하고 있다.

포토레지스트는 유럽 등에서 확보한 제품을 시험 중이다. 자체 기술 개발을 추진하는 한편 미국 듀폰 등을 유치하면서 국내 공급기반을 강화했다. 불화폴리이미드는 최근 신규 공장을 완공, 시제품을 내놓고 있는 상태다.

향후 이 같은 사태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자체 기술 확보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정부는 포토레지스트 등 25개 품목에 총 2232억원에 달하는 긴급 연구개발(R&D) 자금을 투입했다.

각 품목 수요가 많은 국내 대기업들이 참여해 자사 생산라인에서 개발품을 테스트하는 등 협력 움직임도 확대되고 있다. 현재까지 실증·양산평가 등 211개 협력사례가 발굴됐다.

업계 관계자는 “일본이 수출규제를 단행한 3개 품목은 확실한 수급 안정 기반을 구축했다”면서 “이번 사태를 계기로 우리의 위기 대응력을 확인한 것은 물론 소부장 경쟁력 강화를 위한 강력한 추진 동력을 확보하게 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기업도 소부장 기술 자립화에 힘을 보태고 있다. 효성(2028년까지 1조원)과 현대모비스(2021년까지 3000억원)는 지난해 8월 각각 탄소섬유, 친환경차 부품에 대규모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같은 해 9월에는 SK실트론이 미국 듀폰 웨이퍼 사업부를 인수한다고 밝혔다. 현대자동차는 미국 앱티브 테크놀로지스와 조인트벤처(VC) 설립 계획을 공개했다. 미래 산업분야 핵심 기술을 보유한 해외 기업과 손을 잡으면서 기술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포석이다.

소부장 글로벌 기업 국내 유치 사례도 늘고 있다. MEMC코리아는 지난해 11월 4억6000만달러를 투자해 실리콘웨이퍼 생산공장을 준공했다. 같은 달 세계 3대 반도체 장비회사 램리서치는 우리나라에 1억4000만달러 규모 R&D센터 설립 계획을 밝혔다. 듀폰은 지난 1월 포토레지스트 개발과 생산시설을 구축에 2800만달러를 투자하기로 했다.

◇'소부장 특별법' 시행…기술 강국 기반 마련

지난달 1일 '소재·부품·장비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특별조치법'(소부장 특별법)이 시행됐다. 일본의 수출 규제 이후 9개월여 만이다. 당초 내년 일몰될 예정이었던 특별법을 상시법으로 전환하는 한편 정책 대상을 기존 소재·부품에서 장비까지 확대했다. 각 산업 경쟁력 강화를 국가 차원에서 추진한다는 선언이다.

특별법은 작년 우리 정부가 일본 수출규제에 대응해 발표한 '소부장 경쟁력 강화대책'을 법적으로 뒷받침하는 '쌍둥이 법'이다. 대 일본 소부장 의존도를 낮추고, 자체 기술력과 공급 안정성을 확보해 산업 전체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것이 목적이다. 20대 품목에서 1년 내, 80대 품목에서 3~5년 내 안정된 공급망을 확보한다는 '100대 품목 공급 안정화 대책' 등이 집중 추진된다.

주요 내용을 살펴보면 특별법은 기술개발과 인력양성부터 신뢰성·성능평가, 수요창출에 이르기까지 소부장 산업의 모든 주기를 지원한다. R&D 참여를 확대하고 지식재산권 조사와 분석을 강화한다. 민간 실증설비를 개방하는데 재정 부담비율 완화 등을 지원한다. 해외 우수인력의 취업 절차를 완화하는 등 시책을 신설하는 한편 소부장 특화단지 육성을 위한 법적 기반도 마련됐다.

정부는 소부장 경쟁력 강화를 위한 지속적 추진 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범정부 경쟁력 위원회를 설치하고 올해 2조1000억원에 달하는 특별회계를 신설하는 등 특별법 추진 체계를 정립했다.

또 국제 통상 급변, 천재지변, 코로나19에 따른 글로벌밸류체인(GVC) 변화 등에 대응하기 위한 수급안정화 대책도 마련했다. 상황에 따라 생산·공급 계획 실시·변경, 물류·비축, 설비 개방 등을 조정하는 것이 골자다. 각 사항은 경쟁력위원회와 국무회의 심의를 각각 거쳐 발동된다.

산업부 관계자는 “현재 일본 수출 규제에는 변화가 없으며, 핵심 소부장에 대한 불확실성이 지속될 것”이라면서 “올해 정부와 산업계가 가시적 변화와 성과를 창출할 수 있도록 소부장 정책을 강력히 추진하겠다”고 의지를 다졌다.

윤희석기자 pionee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