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정책포럼]<109>포스트 코로나 시대 과학기술에 거는 기대와 사명

[ET정책포럼]<109>포스트 코로나 시대 과학기술에 거는 기대와 사명

“갑자기 불어닥친 국가 차원의 재난 극복을 위해 과학 기술 역할이 더욱 중요해진 상황에서 21대 국회의 과학 기술에 대한 이해는 더욱 긴요해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난달 16일 열린 한 국회 정책토론회 발제문 일부다. 이날 행사는 과학기술정책연구회와 한국과학기술인단체총연합회가 공동 주관했다.

토론회 주제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 연구개발(R&D) 정책 방향과 입법 과제'였다. 발제를 맡은 김상선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장은 국가 R&D 예산에 대한 초당 차원의 지원, 국가 R&D 성과에 대한 긍정 인식, 입법 추진 과제 등을 제안했다. 이와 함께 과학기술인에 대한 사기 진작의 중요성도 역설했다.

구체화한 제안도 중요했지만 의미가 더욱더 큰 것은 이날 토론회의 발제자와 참석자 모두가 공유한 것 한 가지였다. 그것은 과학 기술과 R&D가 오늘날의 난제를 극복하고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여는 첨병이자 대안일 수밖에 없다는 공감대였다.

그동안 과학 기술에 대한 국민 일반의 관심이나 경제 또는 산업에 대한 영향력이 예전만 못한 것이 현실이었다. 과학 기술 정책의 중요성도 국민의 관심만큼이나 퇴색돼 가는 듯 여겨졌다. 어느 순간부터 국민의 삶이나 사회 문제와는 거리가 먼, 상아탑과 연구단지 안에 갇혀 있는 그들만의 리그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그러나 4차 산업혁명을 거쳐 갑작스레 불어닥친 코로나19가 만든 경제·사회 대전환기를 맞아 모든 분야가 과학 기술에서 해답 찾기를 다시 시작하고 있었다.

왜 포스트 팬데믹은 과학 기술에서 답을 구하게 됐을까. 경제개발기의 총아이던 과학기술 정책을 왜 지금 다시 불러내게 하는 것일까. 이유 가운데 하나는 분명 국가 과제를 직면했다는 절박함 때문이 아닐까 한다.

1960년대 말 '공업기술 및 응용과학연구소 설립'을 추진한 것도 경제 개발이라는 국가 과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만이 돌파구라고 본 절박함이 없었다면 국민의 삶이 빠듯하던 상황에서 이것 말고 다른 선택지는 얼마든 있었을 것이다.

오늘날 4차 산업혁명과 코로나19 사태는 우리 기업과 경제에 가히 국가 과제를 던졌다고 할 만하다. 빅데이터, 인공지능(AI) 같은 신기술이 만들 미래 변화는 우리에게 극복해야 할 과제일 수밖에 없다. 인더스터리 4.0만 보더라도 이런 패러다임 시프트를 통해 제조 경쟁력을 다시 담보하려는 독일·일본 같은 선진국에 의해 주도됐고, 주창됐다. 이런 패러다임 시프트와 팬데믹이 만들어 낼 구조 변화가 제조 수출 중심의 우리 경제에 쉬운 과제일 리 없다.

물론 우리는 이런 도전마저 극복하고 성장과 번영을 구가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 파고를 넘어서기 위해선 새로운 동력이 필요하고, 이 같은 절박감이야말로 과학 기술을 다시금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날 토론 첫머리에서 발제자는 “좋은 위기를 낭비하지 마라”는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총리의 말을 인용했다. 아마도 발제자 역시 지금이 과학기술계에 기회라는 점을 인식했음이 분명하다. 분명 지금 과학기술계는 정책을 새롭게 디자인할 수 있는 여건을 맞게 됐고, 이제 정부와 전문가들은 얼마나 새롭게 과학 기술을 재정의해서 국민에게 미래를 향한 창의 및 혁신의 안목과 비전이 있는지 테스트 받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기회를 놓쳐서도 안 되겠고, 실패해서는 더더욱 안 될 터다.

마치 코로나바이러스가 그렇듯이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과학기술 정책이 생존하고 번영해 나아가기 위해서는 다른 사회 문제와 정책이 '결합 진화'해야만 한다는 것은 분명한 방향이다. 이와 함께 과학 기술이 주도하는 우리 미래 사회의 모습도 제안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과학기술 정책의 혁신과 시프트를 먼저 상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박재민 건국대 교수 jpark@konku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