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반도체 인력 유출을 막으려면

반도체 웨이퍼. <사진=SEMI 코리아>
반도체 웨이퍼. <사진=SEMI 코리아>

중국 반도체 업체들이 국내 인력 채용사이트와 헤드헌팅 업체를 통해 우리나라 핵심 반도체 인력을 수혈하려는 정황이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다.

중국은 최신 제품군에 속하는 10나노(㎚) DDR4 D램을 설계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최고 대우 조건'를 내세우며 인력을 유혹하고 있다. 또 S(삼성전자), H(SK하이닉스) 경력자를 우대한다는 조건을 명시하는가 하면 반도체 핵심 전(前) 공정들을 구체적으로 언급하는 등 엔지니어 영입을 노골화하고 있다. 그러나 업체명은 찾을 수 없고 근무지만 '중국'으로 표시해 놓을 뿐이다. 고용주가 정확히 드러나지 않으니 그 뒤에 깔린 의도가 무엇인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중국은 '반도체 굴기'를 내세우며 우리나라를 바짝 뒤쫓고 있다. 현지에는 이미 128단 초고층 3D 낸드플래시 개발을 완료했다고 주장하는 업체가 있는가 하면 10나노 후반 D램 양산을 시작한 회사도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 핵심 인력이 중국으로 옮겨 가는 것은 우려스럽다. 인력 이동이 빈번해질 경우 수십 년 동안 쌓아 온 국내 회사들의 기술 노하우가 쉽게 노출되는 상황이 발생, 기술 격차가 단숨에 좁혀질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대책이 없는 것은 아니다. 메모리 반도체 기술은 국가 핵심 기술로 지정돼 해외에 기술을 유출하면 법률에 의거해 3년 이상의 징역형을 받는다. 그러나 이 법률은 기밀문건이나 핵심 설계도를 유출했을 때 얘기다. 또 고급 기술을 머릿속에 담고 있다는 이유로 직업 선택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반론도 있다.

이에 따라 업계에서는 핵심 기술 인력 통제 법을 강화하기보다 이들에게 어떠한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을 만한 대우를 제공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국가에서 우리 고유 문화를 지키기 위해 빼어난 예술인을 인간문화재로 지정하는 것처럼 반도체 '초격차' 기술에 공헌한 기술 장인도 그에 걸맞은 예우를 해 줘야 한다는 것이다.

아직 국가가 토종 핵심 기술 엔지니어에게 이 같은 혜택을 제공한다고 발표한 사례는 거의 전무하다. 이제부터라도 국내 반도체 생태계가 이들의 기술을 어떻게 존중해 줄 수 있는지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강해령기자 k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