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국고 관리에 '상생결제' 적용 논의...'인건비 빼돌리기' 막는다

재하청사 인건비 등 '기성비' 분류
중간 마진 극대화 등 악용사례 다수
기재부, 인프라 적용·확대 추진
도입 기관에 파격 인센티브 검토

#정부 산하기관 사업 수주에 참여한 플랜트 기업 A사는 재하청사 용역비와 인건비 등을 '기성비'로 분류해 3배에 달하는 금액을 청구했다. 재하청 용역 근로자에게 줄 돈을 늘려잡아 중간 마진을 극대화했고 이를 사업 수주에 필요한 접대비 등으로 사용했다.

#2년 전 정부 산하 발전소 협력사는 인건비 상당을 '경상정비'라는 명목으로 분류해 상당액을 뒤로 빼돌렸다. 정부가 하위 근로자 임금까지 확인하지 않는다는 점을 노렸다. 이 같은 경상정비 악용사만 10곳에 달했다.

ⓒ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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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하청 기업이나 사회적 약자 등의 임금체불 개선을 위해 도입된 상생결제 제도를 정부 국고관리에 적용하는 방안이 본격화한다. 또 정부부처가 상생결제 확산에 동참하는 산하 공기관에 파격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도 검토된다. 건설사, 1차 원도급사, 장비·자재 협력사 등이 '기성비' 명목을 악용해 예산 등을 중간에 뒤로 빼돌리거나 과잉 상계하는 폐해를 막기 위한 특단 조치다.

28일 정부부처와 산업계에 따르면 올해 상생결제 취급액 500조원 돌파가 유력시 되는 가운데 정부와 지자체 국고 관리에 상생결제 인프라를 적용하는 논의가 시작될 전망이다.

상생결제 제도는 대기업과 1~3차 하위 협력사 간 신용거래 폐단을 개선하기 위해 정부와 금융사가 만든 중소기업 유동성 보호 대책이다. 대기업이 발행한 결제 채권을 2·3차 협력사가 대기업 수준 수수료로 주요 시중은행에서 현금화할 수 있다. 중소 하도급 기업은 대기업으로부터 정산을 받기 전에 미리 협약한 은행을 통해 자금을 융통할 수 있다. 1차 원도급사 등이 하위 하청업체에게 제대로 자금이 갔는지, 적시에 근로자들에게 임금이 지불됐는지를 파악할 수 있는 정보통신기술(ICT) 기반 인프라다. 추석을 앞두고 삼성, LG, SK하이닉스 등 주요 대기업이 상생결제를 계열사로 확대하고 하도급 기업 상생에 동참하고 있다.

민간기업에 적용되던 상생결제를 정부 국고관리와 주요 공기관에도 적용·확대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박종찬 중소벤처기업부 상생협력정책관은 “임금 체불 없는 안심일터를 만들자는 정부 취지에 따라 국고 관리에도 상생결제를 적용하는 협의를 준비 중”이라며 “주무부처인 기획재정부 예규 수정이 필요해 해당 부처와 곧 논의에 착수할 것”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어 “상생결제를 도입하는 곳에는 상당한 인센티브를 늘리는 방안도 검토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산업통상자원부도 정부 사업 수행 기관 대상으로 상생결제 도입에 적극 나서고 있다.

이미 중부발전과 서부발전이 용역계약을 체결한 청소용역 근로자를 포함, 모든 노무비를 상생결제로 전면 전환했다. 이들 발전소가 1년에 지급하는 인건비만 400억원에 달한다.

노무비 전용 계좌를 만들어 청소용역자나 외주 노동자에게 정확한 임금 등이 지급됐는지, 적시에 지급됐는지 등을 실시간 확인할 수 있는 인프라로 전면 전환했다. 압류도 할 수 없도록 개선해 용역 노동자가 임금을 제때 받지 못하는 일을 없앴다. 발전사 2곳 외에 다른 발전사도 논의에 착수했다. 지자체 등도 상생결제 도입을 검토한다. 서울시에 이어 부산시 등 다양한 지자체가 상생결제 전환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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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지난 7월 국토교통부, 중소벤처기업부, 행정안전부 등 정부 합동으로 공공발주자 임금직접지급제 세부운영기준을 수립했다. 하청기업 등 대상으로 대금지급시스템을 전면 개편하는 게 골자다. 전자적 대금지급 시스템을 적극 활용하는 방안이다. 이 중 하도급 공사나 용역계약 노무비 지급 기능을 모두 수행할 수 있는 상생결제가 대안으로 부상했다.

정부 관계자는 “강력한 노무비 지급 기능과 부도방지 기능을 갖춘 상생결제 인프라가 민간 발주 영역, 정부, 지자체로 확산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며 “발주기관 계좌에서 노무비 등이 출금되면 당일 모든 하위단계 근로자에게 입금처리 되는 전자시스템은 상생결제가 유일해 눈여겨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길재식기자 osolgil@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