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이 미래다] <1>과학기술 군주 세종대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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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은 미래의 씨앗이다. 예나 지금이나 국민 삶의 생존코드다. 우리 역사에서 과학기술이 가장 융성하던 시대는 조선 세종대왕 시절이다. 세종은 1418년 22세에 조선 4대 왕위에 올라 1450년까지 32년간 조선을 통치했다. 세종은 인재집합소인 집현전을 설치했고, 1443년 한글을 창제했다. 과학기술로 백성의 풍요로운 삶을 위해 조선의 하늘과 시간을 만들었다. 세종을 '애민 군주' '과학기술 군주'라 하는 이유다.

(재)운보문화재단 제공
<(재)운보문화재단 제공>

봄 햇살이 포근하던 지난 4월 초. 경기 이천시 대왕로의 세종대왕이 잠든 영릉에 갔다. 조선 왕릉은 2009년 6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산과 들녘에 초록빛이 차츰 진해지고 있었다. 영릉 경내는 갓 세수한 새댁 얼굴처럼 말끔했다. 솔바람에 아름드리 소나무에서 떨어진 솔방울이 저 혼자 바닥에 '또로로' 뒹굴었다. 소나무 숲속 여기저기에 봄의 전령인 진달래가 붉은 점을 찍듯 활짝 피어 하늘하늘 춤을 췄다. 매표소를 지나 세종대왕릉 쪽으로 10여분 걸어가자 광장 중간에 세종대왕 동상이 서 있었다. 동상 앞 광장에는 세종시대에 만든 각종 과학기구 모형이 설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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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초로 발명한 우량계 측우기가 관람객의 눈길을 끌었다. 조선시대 첨성대인 관천대와 천체를 관측하는 적도의, 천문기기인 혼천의, 조선시대 대표적인 대형 천문기기인 간의와 소간의, 공 모양의 천구에 별자리를 새겨 놓은 천문기기인 혼상, 해시계 일종인 규표, 휴대용 해시계인 천평일구와 현주일구, 혼의와 앙부일구 구조를 융합해 만든 해시계인 정남일구, 조선 표준시계인 자격루 등이 보였다. 낮과 밤 시각을 측정할 수 있는 해시계이자 밤시계인 일성정시의는 세종이 직접 고안했다. 조선시대 최초의 공중 해시계인 앙부일구, 해시계를 올려놓은 받침대인 일구대, 천상열차분야지도, 바람 방향과 세기를 측정하는 깃대를 세워놓았던 풍기대, 청계천과 한강에 설치해 물높이를 측정했던 수표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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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석앙부일구
<오석앙부일구>
측우대 3종
<측우대 3종>

평일인데도 마스크를 쓴 가족 단위 관람객들이 방역수칙을 준수하며 과학기구를 구경했다. “할머니 이건 뭐예요?” “응 그건 비가 올 때 얼마나 왔는지를 재는 기구란다.” 할머니 손을 잡은 유치원생인 듯한 손자가 측우기를 보며 이야기를 했다. 정겨운 모습이었다.

세종대왕은 전시장에서 10여분 올라간 산 중턱 봉우리에 소헌왕후와 나란히 누워 자신과 과학기술자들이 만든 과학기구를 내려다보고 있다. 세종릉은 조선왕릉 최초의 합장릉이다. 15세기 과학기술 세계 1위 국가는 단연 세종시대 조선이었다. 구체적인 근거가 있다. 1983년 일본에서 15세기 전반기인 1400~1450년 세계 과학기술업적을 정리한 '과학사 기술사사전'을 발간했다. 이 책에 세계를 대표하는 최고 기술이 한국 29건, 중국 5건, 일본 0건, 동아시아 지역 이외 지역 28건이라고 기록했다. 세계 기술 62건 중 거의 절반인 29건이 조선에 있었다.

세종 재위기간(1418~1450)을 다른 나라와 비교해 보면 세계 대표 기술이 한국 21건이었다. 이어 중국 4건, 일본 0건, 기타 유럽과 아랍지역 19건으로 기술했다. 세계 최고 기술 44건 중 21건이 한국 소유였다. 한국 과학기술사 개척자로 성신여대 총장을 지낸 전상운 박사는 생전에 “당시 노벨상이 있었다면 조선이 47%를 차지했을 것”이라면서 “세종은 15세기 세계과학사 중심에 있었다”고 말했다.

전 박사는 1985년 물시계인 자격루와 천문시계인 혼천의와 혼천시계 등 과학문화재 18건을 국보와 보물로 지정하는 일에도 큰 역할을 했다. 전 박사는 세종이 이룩한 위대한 과학기술 성과는 △국책과제로 과학기술 자립과 기술개발을 지속적으로 추진했고 △신분이나 지역을 불문하고 능력 있는 인재를 등용했으며 △기술개발을 위한 공동노력과 집현전을 국정과제 토론장으로 운용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세종은 재위 기간에 과학기술 개발 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했다. 특히 천문(天文)을 최우선 국정과제로 선정했다. 국가 주력 산업인 농업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서다. 세종은 즉위 사흘 만에 신하들에게 “함께 논의하자”고 말했다. 세종 2년 집현전을 만들고 경연(經筵)을 열었다. 세종은 “어찌하면 좋겠는가”라는 문제를 제기하고, 신하들과 찬반 토론을 진행해 국정과제를 결정했다. 세종은 재위기간에 모두 1898회의 경연을 열었다. 이는 평균 5일에 한 번 꼴이다.

세종의 인재 등용은 파격 그 자체다. 이천, 이순지, 김담, 장영실과 같은 인재를 발탁해 적재적소에 중용했다. 관노 출신인 장영실의 발탁은 세종 인사의 백미(白眉)에 속한다. 세종은 “인재는 천하국가의 지극한 보배”라고 말했다. 세종은 늘 백성과 동행(同行)했다. 가뭄이 들자 세종은 경회루 앞에 초가를 짓고 집무했다. 세종은 조선을 15세기 세계 최고 과학기술 강국으로 만든 임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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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박현모 여주대 세종리더십연구소장

세종대왕보다 세종을 더 잘 아는 박현모 여주대 세종리더십연구소장을 연구소에서 만났다. 서울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자타가 인정하는 세종대왕 리더십 전도사다. 2년 전 그는 세종대왕릉이 있는 영릉 후문 인근으로 자택을 옮겼다. “세종을 등에 업고 산다”고 했다. 연구소는 사방이 세종 관련 서적으로 빼곡했다.

-모두 몇 권인가.

▲이곳에만 6000여권이다. 대학에 6000여권이 더 있다.(세종실록을 비롯해 일본에서 1983년 발간된 '과학사기술사전'도 있었다. 몇해 전 일본 방문시 어렵게 책을 구입했다고 한다.)

-세종이 과학기술 시대를 이룩한 원인은 무엇인가.

▲싱크탱크인 집현전과 경연에 답이 있다. 세종은 집현전 학사를 우대하면서 최대한 활용했다. 집현전은 활발한 국정회의 이끌기와 국가 인재 양성의 중심이었다. 경연은 세미나식 어전회의다. 집현전의 주된 업무는 어전회의를 알차게 성과를 거두는 토론장으로 만드는 일이었다. 세종은 어전회의 수준이 곧 국력이라고 생각했다. 경연이라는 창의적인 어전회의를 국정 토론 중심장으로 만들었다. 이 자리에서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얻고 국정과제로 정해 추진했다. 세종은 또 집현전이 국가고시를 주관, 우수인재를 선발하게 했다.

사가독서제(賜暇讀書制)라는 심화학습과정을 운용해 전문가를 양성했다. 당대 최고 석학 변계량 등이 이들을 지도했다. 집현전 학사들은 이런 과정을 통해 그 시대를 이끌 리더의 안목과 자질을 갖춰 나갔다. 집현전은 세조 2년에 폐지될 때까지 37년간 100여명의 학사를 배출했다. 이들은 조선 전기의 국가 핵심 인재로서 국정을 이끌었다.

-세종은 인재를 어떻게 발탁했나.

▲세종은 인재를 발탁할 때 신분이나 학파, 지역 등을 따지지 않았다. 신분이 아니라 덕망과 재능을 우선해서 발탁했다. 당시 신분제가 견고하던 시절인데 세종은 그런 일에 얽매이지 않았다. 능력이 있으면 누구나 발탁해서 중용했다. 천민 출신 장영실이 대표적이다. 그를 면천(천민 신분을 면해 줌)하고 정3품 대호군까지 승진시켰다. 아전 출신인 이예를 발탁해 재상급인 종2품 동지중추원사로 중용했다. 통역사 김하와 천문에 뛰어난 이순지를 첨지중추원사와 동부승지로 발탁했다. 황희도 청백리는 아니었지만 그의 업무처리 능력을 높이 샀고, 오래 중용했다.

-어떻게 인재를 활용했나.

▲세종은 인재를 자신의 몸처럼 귀하게 대했다. 신하를 세심하게 보살피고 존중했다. 인재가 맡은 일에 열과 성을 다하도록 그들 부모·형제까지 귀하게 보살폈다. 세종시대 인재는 '이 나라 임금은 세종이지만 내가 곧 주인'이라는 자세로 일했다. 세종은 경청의 달인답게 인재의 말을 집중해서 들었다. 세종은 “인재를 불러오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그 사람의 말을 듣고 쓰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세종은 누구건 그 자리에 적임자면 계속 그 일을 맡겼다. 황희는 24년간 정승 자리에 있었고, 그 가운데 19년은 영의정으로 일했다. 맹사성은 8년간 정승을 했다. 예조, 호조, 병조같이 전문성이 필요한 판서들은 평균 7년여 재직했다. 이렇게 하자 신하들은 나랏일을 자기 책무로 알고 임금이 한 달씩 자리를 비워도 일이 밀리지 않았다고 한다. 예나 지금이나 인사가 만사다.

박 교수는 2005년부터 한해도 빠짐없이 일반인을 대상으로 세종실록을 강의하고 있다. 저서로 세종의 서재, 세종처럼, 세종의 수성 리더십, 세종의 적솔력(위기를 기회로 바꾼 리더십) 등 세종관련 서적만 10권이 넘는다.

이현덕 대기자 hdlee@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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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이현덕 대기자는 전자신문에서 편집국 취재 데스크, 편집부국장, 뉴미디어국장, 논설위원실장, 편집국장, 이사대우 논설주간으로 일했다. 지금은 대기자로 취재 활동 중이다. 민주평화통일자문위원과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이사를 역임했다. 창작수필 신인상과 새마을 포장, 국민훈장 목련장을 받았고, 대한민국 전자정부를 빛낸 인물 30인에 뽑혔다. 저서로 '모든 게 인연일세' '훈수' '암자일기' '기자 반성문' '대통령과 정보통신부' '리더스 싱킹'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