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이 미래다]<6>첫 과학정책 산실 '경제기획원 기술관리국' 신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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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 6월 19일 김현철 경제기획원 장관이 취임 선서를 하고 있다. <국가기록원 제공>
<1962년 6월 19일 김현철 경제기획원 장관이 취임 선서를 하고 있다. <국가기록원 제공>>

우리나라 첫 과학기술 정책의 산실은 경제기획원 기술관리국이다. 이전까지는 정부에 과학기술 정책만 전담하는 행정 기구가 없었다. 1962년 6월 18일. 국가재건최고회의는 이날 오후 2시 이주일 최고회의 부의장 주재로 소회의실에서 제47차 상임위원회를 열고 경제 부처 조직개편안을 논의했다. 당시 최고회의는 입법·사법·행정의 모든 권한을 행사했다. 최고회의는 경제기획원에 과학기술 정책 전담 기구인 기술관리국을 신설키로 결정했다.

정부 조직 개편은 태산을 옮기는 일보다 힘들고 어렵다고 한다. 부처 조직 확대나 축소에 따라 부처 간 이해가 크게 엇갈리기 때문이다. 이날 조직 개편 대상은 경제기획원과 국방부, 농림부, 상공부, 국토건설청(현 국토교통부) 등이었다. 회의에는 상공부 장관, 농림부 장관, 내각 사무처장(현 인사혁신처), 법제처장, 경제기획원 부원장 등과 부처 실무 국장이 긴장한 표정으로 참석했다.

이주일 부의장이 사회봉을 들고 개회를 선언했다. “지금부터 경제 부처 기구개편안 논의를 시작하겠습니다.” 뒤를 이어 김병삼 내각사무처장이 그동안 마련한 경제 부처 조직 개편 경위와 개편 원칙, 개편 내용을 소상하게 보고했다. 김병삼 처장은 정부안대로 조직을 개편할 경우 공무원 정원이 256명 증가한다고 보고했다. 보고가 끝나자 위원들의 질의가 이어졌다.

경제기획원 직제 개편과 관련해서는 당시 최고회의 재정경제위원장인 김동하 위원과 조시형 위원이 주로 의견을 개진했다. 위원들의 질문에는 송정범 부원장이 답변했다.

◇조시형 위원=경제기획원 부원장 2명은 부책임자이며, 부원장보(현 차관보)는 그 대리인 역할을 합니다. 상공부와 농림부 차관보도 업무량이 많아 신설을 요구한 것입니다. 국토건설청은 국토건설부로 명칭을 바꾸자는 의견이 재경위에서 나왔습니다.

◇김동하 위원=경제기획원에 기획담당을 따로 두지 말고 부원장이 운용까지 담당하게 하면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부원장보를 2명 둔다고 해도 원장 부재 시 운용담당 부원장이 업무를 대리할 것입니다.

◇송정범 부원장=박정희 최고회의의장에게 사전 보고 시 부원장보를 2명 둔다고 한 바 있습니다. 부원장은 대외 활동을 할 때 기획원을 대표해야 하지만 기획담당 부원장보는 운영을 잘 모르고 운영담당 부원장은 기획에 대해 전문성이 없습니다.

◇조시형 위원=행정부에서 그동안 연구하고 검토한 사안이니 원안대로 두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주일 부의장=좋습니다. 다른 의견이 없으시면 다음 부처 개편안 설명하세요. (이어 농림부, 상공부, 법제처 등 다른 부처의 조직 개편을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국토건설부는 건설부로 명칭을 변경키로 했다) 이날 오후 4시 15분. 이주일 부의장이 폐회를 선언했다. “이의 없으면 정부 조직 수정 개편안을 통과시키겠습니다.”

정부는 이날 오후 5시 정부조직법 개정(법률 제1092호) 내용을 발표했다. 경제기획원의 조직 개편 폭이 경제 부처 가운데 가장 컸다. 개편 내용을 보면 원장과 부원장을 보좌하는 1급 부원장보를 2명 두기로 했다. 부원장 1명은 기획에 관한 사무, 다른 1명은 운영에 관한 사무를 각각 담당한다. 여기에 기획 업무 조정과 심사 분석을 담당한 기획조정관(1급)을 두기로 했다. 국내 처음으로 경제기획원에 기술관리국을 신설, 과학기술 정책 개발과 계획 업무를 전담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종합기획국과 1차 산업국, 2차 산업국, 3차 산업국을 신설해 산업 정책 개발 및 계획 업무를 담당하기로 했다.

정부는 이날 조직 개편을 단행하면서 경제기획원원장을 교체했다. 신임 원장에는 재무부 장관과 부흥부 장관을 지낸 김현철(전 내각수반)씨를 임명했다. 29일에는 서울대 교수를 지낸 차균희 박사를 부원장에 임명했다. 경제기획원 조직 개편에 이어 원장과 부원장을 모두 교체, 새바람이 불도록 했다.

정부는 이어 각령(閣令. 현 대통령령) 제850호로 경제기획원 부원장보 업무 범위와 과학기술 정책 전담인 기술관리국 조직과 업무 범위를 구체적으로 명시했다. 기술관리국에는 기술관리과, 기술진흥과, 기술조사과 등 3개 과를 두기로 했다. 기술관리과는 과학기술진흥에 관한 종합적 기본 정책과 입안, 연차별 시행 계획 입안과 수립 조정, 과학기술 행정 총괄, 기술관리와 관계 법령 입안 및 조정, 과학기술진흥에 관한 예산 관리 조정, 외국기술 협조사업 관리조정 등을 관장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행정계, 기획계, 관리계, 조정계 등 4개 계를 두기로 했다.

기술진흥과는 국내외 각종 자원에 대한 기술협력 계획 수립 및 관리 조정, 인적 자원의 해외 훈련 계획 및 관리, 기술 도입을 위한 계획 수립, 기술 도입과 보급을 위한 국제기구나 외국 정부·기관과의 협조, 기술계 인적자원 훈련계획 및 관리 등 사항을 담당키로 했다. 기술진흥과에는 계획계, 운영계, 훈련계를 두기로 했다.

기술조사과는 과학기술 자원 조정과 수급 계획 수립, 국내외 기술 용역사업 계획과 조정, 국내외 과학기술 정보 취합과 활용, 가용 자원에 대한 과학기술 연구와 투자사업에 대한 계획 등의 사항을 분장키로 했다. 이를 위해 조사계, 연구계, 용역계를 두기로 했다.

어느 부처건 직제가 바뀌면 대폭의 승진 인사(人事) 바람이 불기 마련이다. 경제기획원은 1급 상당 부원장보와 4개 국(局)을 신설함에 따라 그 어느 때보다 승진 인사에 대한 기대감이 높았다.

7월 초 어느 날 아침. 전상근 경제기획원 기술관리과장(현 삼전복지재단 이사장)이 출근하자 마자 차균희 부원장실 비서로부터 전화가 왔다. “전 과장님, 부원장님이 찾으십니다.” 부원장실로 들어선 전상근 과장을 보자 차균희 부원장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전 과장, 축하해요.” “무슨 말씀이신지….” “이번에 전 과장을 신설한 기술관리국의 국장으로 내정했어요.” “감사합니다.”

그러나 전상근 과장은 내심 어리둥절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전상근 삼전복지재단 이사장의 증언이다. “나는 촉탁 공무원으로 일을 했어요. 그러다가 전형시험을 거쳐 과장이 됐어요. 서기관 발령을 받은 게 6개월 정도 지났어요. 당시 공무원법 승진 규정에 따르면 3급 갑류 서기관은 2년이 지나야 국장급인 2급 승진 자격이 있었어요. 규정대로 하면 저는 국장 승진이 불가능했어요.” 전상근 과장은 이 규정에 묶여 국장 임명을 받지 못하고 대신 국장서리 발령을 받았다. 이후 국장 신규 채용 형식으로 다시 시험을 본 후 2급 갑류국장으로 정식 발령을 받았다.

신설된 3개 과의 과장 인사도 현안이었다. 국장 내정을 통보받은 전상근 과장은 기술관리과장에 언론인 출신으로 재무부 공보관을 지낸 문영철씨, 기술진흥과장에는 송재휘 사무관, 기술조사과장에는 이응선 사무관을 승진 대상자로 추천했다. 문영철 과장은 당시 김학렬 부원장보가 강력히 추천했다. 문영철 과장은 전상근 국장 내정자의 경기고 선배로, 전상근 과장은 그동안 '선배님'으로 깍듯이 모셨다. 그런 선배를 직속 부하로 두고 일한다는 게 부담스러웠다.

김 부원장보는 이런 사정을 듣고 “공직 사회에서 선후배 관계를 초월하지 못하면 공무원 자격이 없어요. 그는 언론인 출신으로서 사회 경험도 많고 세상을 보는 눈이 공무원들과 다르니 과학기술 정책 입안에 큰 도움을 줄 겁니다. 부담스럽게 생각할 게 없어요.” 3개 과의 과장 가운데 이응선 사무관은 이공계 출신이었다. 전상근 국장 내정자는 기술관리국이 앞으로 과학기술 행정을 전담하려면 과장 가운데 한 사람 정도는 이공계 출신이 있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우여곡절이 있긴 했지만 과장 인사는 전상근 국장 내정자가 추천한 대로 이뤄졌다.

새 진용을 갖춘 기술관리국은 국내 첫 과학기술 정책 산실로서 미래를 향한 과학기술 항해를 힘차게 시작했다. 기술관리국은 1967년 4월 과학기술처가 출범할 때까지 우리나라 과학기술의 산실 역할을 했다.

이현덕 대기자 hd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