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민 교수의 펀한 기술경영]<285>그 흔한 혁신통로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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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套). 버릇이 된 어떤 일정한 틀을 뜻한다. 일의 방법 또는 방식을 의미하기도 한다. 길 장(長) 자 위에 클 대(大) 자를 씌운 모양새다. 그 원래 의미야 나쁨이 없겠지만 이 버릇처럼 굳어진 본새를 뜻하는 이 단어는 왠지 실속 없거나 겉모양만 번지레한 느낌도 준다. 어쩌면 먼 옛적 큰 모자에 긴 옷을 입고 폼을 잡던 누군가를 빗대 만들어진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기업에도 늘 걸치거나 쓰는 것이 있다. 모양만 내거나 첫 열정이 식어 이젠 상투가 돼버린 것도 있다. 실상 많은 기업에 혁신도 이 모양새가 되었다.

하지만 이게 꼭 기업의 불성실이나 무관심 탓인 것만은 아니다. 진심으로 원했고 지금도 바라지만 성공의 경험이 없어 이리 되었을 수도 있다. 하기는 해야겠는데 어찌해야 할지 모른다면 모양내는 외에 다른 도리가 없지 않겠나.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실상 어느 대가에 따르면 흔한 통로부터 들르는 게 우선이다. 바로 쓰임새를 생각하는 것 말이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IBM은 1933년 그럴듯한 천공카드 계산기를 내놓는다. 하지만 대공황기 기업은 뭐든 돈 드는 투자는 꺼렸다. 숨통을 틔워준 곳은 공공도서관이었다. 뉴딜로 예산을 들고 용처를 고민 중이었다. 수백대를 팔고 IBM은 고비를 넘긴다.

IBM을 우리가 아는 그 컴퓨터 기업으로 만든 것도 새 쓰임새란 통로였다. 이즈음 컴퓨터는 온전히 연구용이었다. 가장 앞선 유니박(Univac)은 비즈니스용에 관심 없었다. IBM은 기업의 급여명세서 처리용으로 내놨고, 5년 만에 업계 리더가 됐다.

더 쓰임새 있게 만드는 것도 통로다. 세계 최초의 상업용 제트 여객기는 하빌랜드 코멧(Comet)이다. 안타깝게 얼마 뒤 보잉 같은 후발주자들에게 자리를 내준다. 보통 추락사고를 원인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누군가는 정작 다른 이유가 있다고 말한다. 정작 문제는 사고가 난 사각형 창문이 아니라 코멧의 어중간한 크기였다. 이 크기로 항공사가 수지를 높이기 어려웠다.

거기다 항공기금융이란 새 서비스도 한몫했다. 하빌랜드가 새 제품을 들고 시장에 돌아올 즈음 후발 제조사는 여객기를 항공사에 훨씬 더 쓰임새 있게 만들어놓고 있었던 셈이었다.

쓰임새란 당연한 혁신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하지만 너무도 당연한 탓에 간과되는 모양이다. 하지만 이 통로를 진지하게 바라본 기업에 여전히 많은 것을 보여준다.

우리가 종종 들어본 적 있는 어느 여행전문기업의 원래 이름은 클럽 메디터라니(Club Mediterranee)다. 실상 이 기업의 성공 뒤에도 쓰임새란 한 단어가 있었다. 1970년 즈음 되자 유럽에는 잘 교육 받고 고소득 전문직의 젊은이들이 늘어난다. 이들이 여행과 휴가를 생각했을 때 여행사들이 그들 앞에 내놓은 곳 태반은 바로 그들 부모에게 소개됐던 그 여행지였다.

그들의 기억 속의 그 곳은 따분하기 그지 없었다. 누군가 기억에 클럽 메디터라니는 이들이 십대에 기억하는 여행지보다 훨씬 산뜻하고 이국적인 제안을 내놓았다. 그리고 이렇게 바뀐 것이 오늘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것이 됐다. 바캉스는 그 전부터 있었으되 더 나은 쓰임새로 재구성했던 셈이다.

다시 한번 이 흔한 통로 앞에 한번 서보면 어떨까. 혹 당신이 여행업계에 있다면 한번 더 물어 보자. 코로나가 끝나는 예전 브로슈어를 꺼내 먼지를 떨어내면 되는 걸까. 아니면 여행의 새 쓰임새는 한번 쯤은 생각해 봐야 할 때일까.

[박재민 교수의 펀한 기술경영]<285>그 흔한 혁신통로 앞에서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jpark@konku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