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텍, 국내 최초 연구중심 의대 설립 추진]<상>초고령화사회로 질주하는 韓…해법은 디지털과 만나는 의학

초고령화사회로 전력질주하는 한국…해법은 디지털과 만나는 의학
4차산업혁명·포스트 코로나19시대, 인류의 관심은 “건강하게 장수하는 법”
노인의료비 급격한 증가…IT기술 기반의 혁신적 헬스케어 도입 시급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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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바이오·의료산업시장은 현재 약 2400조원에 달한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이 자국에 바이오클러스터를 구축해 연구개발을 지원하고 기업을 모으는 이유다. 바이오·의료산업 혁신 도약 필수요건은 공학과 의학 융합이고 공학 기반 의사과학자 양성 없이는 미래 신성장 동력인 바이오·의료산업 성장을 담보할 수 없다. 포항시와 포항공과대학교(포스텍)가 국내 최초로 연구중심 의과대학(의대) 유치에 팔을 걷어붙였다. 정부도 최근 의사과학자 양성을 위한 제도 개선 방안 마련에 나서고 있어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다. 연구 중심 의대 설립 당위성과 해외사례 및 기대 효과를 짚어본다.

대한민국이 급속도로 늙어가고 있다. UN이 정한 고령사회 기준은 총 인구 중 65세 이상 고령인구가 차지하는 비율이 14% 이상이 될 때다. 초고령 사회는 20%를 넘어선 것을 의미한다. 2020년 우리나라 65세 이상 인구는 전체 인구 중 15.7%로 2025년에는 이 비율이 20.3%로 증가할 것으로 통계청은 내다보고 있다. 우리나라는 앞으로 불과 4년 만에 초고령사회로 진입하게 되는 것이다.

포스텍 대학 정문
포스텍 대학 정문

고령사회 진입은 곧 의료비 지출 확대로 이어진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2018년 만 65세 이상 건강보험 가입자 진료비는 31조8235억원으로 처음으로 30조를 넘겼다. 전체 진료비 40.8%를 차지한다. 2011년 진료비가 불과 15조3893억원이었음을 감안하면 고작 7년 만에 2배를 넘긴 것이다. 이대로라면 오는 2060년 노인의료비는 GDP 대비 5.2~5.67%까지 상승할 것으로 예상된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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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반영하듯 우리나라 GDP 대비 의료비 지출도 2014년 6.5%에서 2019년에는 8%로 눈에 띄게 증가했다. 같은 기간 OECD 평균은 8.7%에서 8.8%로 근소한 차이로 늘었을 뿐이다.

더 우려되는 것은 노인빈곤율이다. 우리나라 노인빈곤율은 2018~2019년 기준으로 43.4%다. OECD평균(15.7%) 보다 3배가량 높다. 이런 추세가 계속된다면 노년층이 지불하기 어려운 의료비에 대한 부담은 자연히 사회적 부담으로 이어진다. 정부도 이를 막기 위해 커뮤니티 케어와 돌봄 중심으로 정책을 정비하고 있지만 재원 조달이나 현재 수준 의료기술을 고려하면 환자에 주어지는 치료비 부담을 줄이는 것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포스텍 연구장면
포스텍 연구장면

또 4차 산업혁명으로 확산된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는 단순노동을 줄이는 대신 근로자들에게 디지털화에 따른 변화를 요구한다. 디지털화 적응 과정에서 오는 스트레스, 그로 인한 육체적·정신적 질병 예방은 새로운 노동계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여기에 코로나19 팬데믹이 세계를 덮쳤다. 치료제가 없는 바이러스 공포가 인류를 덮치면서 건강이나 장수에 대한 관심으로 눈길이 쏠리게 됐다.

기술면에서도 변화가 보인다. 인류 평균수명은 불과 한 세기만에 두 배로 늘었다. 하지만 사람 몸속의 조직과 장기는 수명을 따라가지 못한다. 재생의학과 유전정보를 활용해 언제 세포나 장기 이식이 필요하게 될지를 예측하는 예측의학의 중요성도 커지고 있는 이유다. 보건의료산업시장 규모는 2017년 기준으로 1경원에 이르는 천문학적 규모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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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기술과 만난 헬스케어, 고령시대 해법으로

미국의 대규모 인구집단인 베이비부머(1946~1964년생)가 은퇴를 시작하면서 미국 사회도 인구 고령화가 가속될 전망이다. 2017년에는 이미 65세 이상 은퇴인구가 5000만명을 넘겼고 25년 후인 2042년에는 7000만명을 넘길 것으로 예상된다. 더욱이 이들은 의료기술 발달과 생활 여건 개선으로 평균 수명도 늘어날 것으로 예측된다. 의료비 지출이 세계 최대 수준인 미국은 지금 추세대로라면 2027년에는 의료비용이 미국 GDP의 19.4%에 이르게 된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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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 인력과 시설은 더욱 부족해질 것이라는 관측이다. 미국의과대학협회(AAMC)는 오는 2030년에는 의사 인력이 12만명이나 부족해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 해법으로 IT기술을 이용한 헬스케어 기술이 인력난은 물론 시설 부족 현상, 치료비를 줄이는데 기여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포스텍 연구장면. 3D프린터로 만들어낸 사람의 유실된뼈
포스텍 연구장면. 3D프린터로 만들어낸 사람의 유실된뼈

미국에서 고령자를 대상으로 활용되고 있는 디지털 헬스케어는 대체로 웨어러블기기와 AI, 사물인터넷(IoT) 등 IT기술을 활용 심박수나 체온, 혈압, 호흡을 수시로 측정해 위험신호를 감지하고, 데이터를 통해 만성질환을 관리하는, 24시간 간병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일렉트로닉 '케어기버'사 '애디슨 케어(Addison care)'다. AI로 이루어진 가상 간병인이 환자 건강 상태를 모니터링하고 데이터를 축적하는 방식이다. 환자 개인 약 복용, 혈압이나 혈당, 심전도와 같은 검사 스케줄을 관리하거나 낙상 위험도를 측정하기도 한다.

모니터링 결과는 의료인과 공유할 수 있고 비상시에는 24시간 의료인과 연결하는 서비스를 지원한다. 그 외 복용약을 관리하거나 환자 상태를 확인할 수 있는 '프리아(Pria)', 레이더를 이용해 심박과 호흡, 수면 등을 측정하고 구조요청을 할 수 있는 '엔젤 100 퍼스(Nzel 100 Pers)'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또 뉴욕 프리스비테리안 병원은 웹사이트나 앱을 이용하는 'NYP 온디맨드'라는 서비스를 런칭, 디지털 응급의료 시스템을 도입하며 응급실 대기 시간을 절반으로 줄이는 데 크게 기여한 것으로 높은 평가를 받기도 했다.

이처럼 의료산업 인력과 자원 부족, 노년층 의료비 부담에 대한 해법으로 미국에서는 IT기술과 결합한 디지털 헬스가 주목받고 있다. 특히 헬스 모니터링이나 가상 간병인 기술은 비용 절감 효과가 커 전문의료기관이나 보험사가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한국은 과학·공학과 의학을 이어줄 의사과학자 '급구'

미국이 디지털 헬스에서 빠르게 나설 수 있는 것은 과학과 공학 분야 기술을 임상과 바로 이어줄 수 있는 의사과학자(MD-PhD)가 전면에서 활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의사과학자는 의사 면허 소지자로 환자를 진료하거나 전문 분야 질병을 연구함과 동시에 관련 분야의 과학, 공학에 관심을 갖고 이를 서로 잇는 중개연구를 할 수 있는 의사를 의미한다.

과학 인프라 경쟁력이 무려 세계 2위권(IMD)인 한국의 상황은 낙관적이지 않다. 과학기술 논문 발표 수도 세계 10위권이란 눈부신 성적을 낸 반면, 바이오산업 국가경쟁력은 26위(2018년 기준)에 불과하다. 성과지표는 높지만 연구성과가 실제로 사업화되고 활용되는 순환구조 형성에는 실패했다는 의미다. 실제로 바이오 국가경쟁력 평가에서 우리나라가 생산성 분야에서 받은 점수는 8점 만점에 0.1점에 불과했다.

이런 상황에서 의사과학자 수급은 턱없이 부족하다. 대학과 병원에서 의사과학자들이 일할 수 있는 자리가 거의 없고, 의사과학자가 되더라도 연구비의 안정적 확보는 물론, 수입에서도 불리하다는 것이 의학계의 인식이다. 의욕도 저하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의과대학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보면 예과에 재학 중인 학생들이 상대적으로 의사과학자나 기초의학 분야 수련에서 높은 관심을 보인다. 여기에 연구활동 참여 경험이 있는 학생들은 의사과학자 진로에 대해서도 훨씬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초기 단계에서부터 연구 경험을 학생들에게 쌓아주면 의사과학자에 대한 관심도 자연히 증가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의과대학 학생 중 연구활동 참여 경험이 있는 집단은 22.2%에 불과했다. 현재 의과대학에서는 연구 경험을 쌓아줄 기회에 부족함을 의미한다. 더욱이 임상 관련 교육을 중심으로 한 현행 교육에서는 급변하는 IT기술을 교육과정에서 소화하기에는 어려움이 따른다. 의사과학자 양성을 위한 새로운 연구중심 의대 필요성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포항=정재훈기자 jho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