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대전환 'ON']<2부-3>[르포] 글로벌 에너지 전환 현장을 가다-원전과 공존, 佛 '노장 쉬르센'

지난달 24일(현지시간) 프랑스 상파뉴 지역의 노장 쉬르센(Nogent-sur-Seine) 마을 전경. 마을 가옥들 뒤에 원전 냉각탑에서 수증기가 분출되고 있다. <사진 변상근기자 sgbyun@etnews.com>
지난달 24일(현지시간) 프랑스 상파뉴 지역의 노장 쉬르센(Nogent-sur-Seine) 마을 전경. 마을 가옥들 뒤에 원전 냉각탑에서 수증기가 분출되고 있다. <사진 변상근기자 sgbyun@etnews.com>

파리의 시작점인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약 110km. 자동차로 약 2시간을 달려가면 프랑스 샹파뉴 지역의 작은 마을 '노장 쉬르센(Nogent-sur-Seine)'이 나온다. 마을은 유럽의 중세시대를 떠오르게 하는 고풍스러운 작은 집들이 즐비했고 외지인들이 탄 것으로 보이는 차들이 쉴새 없이 움직였다. 작은 관광지처럼 보이는 이 마을의 배경에는 원전 냉각탑 2개가 보였다. 유럽 중세시대와 닮은 프랑스의 작은 마을과 최첨단 현대기술 상징 중 하나인 원전이 함께 자리한 풍경은 이질적이면서도 묘하게 어울렸다.

노장 쉬르센은 프랑스 파리에 전력을 공급하는 대표적인 원전 소재지다. 수도인 파리로 흐르는 센 강이 위치한 이 지역에서는 강물을 활용해 원전을 운영하고 있다. 유럽에서는 우리나라와 달리 바다가 아닌 내륙의 강물을 냉각수로 활용하는 원전이 많다고 한다. 강물 수량이 풍부하고 지역 주민들의 원전 수용성이 높기 때문이다.

에스텔 봄버거-리봇(Estelle Bomberger-Rivot) 노장 쉬르센 시장은 “노장 쉬르센에 있는 원전 2기는 파리 근교에 전력을 공급하고 있다”면서 “(노장 쉬르센의 원전이) 센 강 물을 쓰긴 하지만 물을 순환해서 계속 쓰지는 않고 냉각수는 센강으로 다시 가기보다는 수증기로 주로 배출한다”고 말했다.

에스텔 봄버거-리봇 시장은 이어 “센 강은 노장 쉬르센에서 파리로 이동하지만 바람은 반대로 파리에서 노장 쉬르센 쪽으로 분다”고 덧붙였다. 혹여나 원전에서 사고가 나더라도 수도인 파리에는 영향이 없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서울과 강원도 원주 정도 위치에 원전이 자리잡을 수 있었던 배경이다.

지난달 24일(현지시간) 프랑스 상파뉴 지역의 노장 쉬르센(Nogent-sur-Seine)의 원전에서 수증기가 분출되고 있다. <사진 변상근기자 sgbyun@etnews.com>
지난달 24일(현지시간) 프랑스 상파뉴 지역의 노장 쉬르센(Nogent-sur-Seine)의 원전에서 수증기가 분출되고 있다. <사진 변상근기자 sgbyun@etnews.com>

노장 쉬르센에서 운영되는 원전 명칭은 정확히 △NOGENT-1 △NOGENT-2다. 각각 1987년과 1988년 상업운전을 시작했다. 34~35년간 지역 주민과 함께 호흡하면서 안정적으로 전력을 공급하고 있다. 각각 1310㎿로 한국형 원전의 최신 노형인 APR1400의 1400㎿ 용량과 맞먹는다. 1980년대에 이 정도로 대용량 원전을 건설한 것을 감안하면 프랑스의 원전 기술력을 가늠할 수 있다.

프랑스 정부는 원전 설계 수명을 40년으로 규정하고 있다. 2027년과 2028년이면 수명이 만료되는 노장 쉬르센 원전 수명도 최근에 연장했다. 우리나라에서는 노후 원전으로 규정될 법함에도 노장 쉬르센 지역 주민들은 오히려 수명연장을 반겼다고 한다. 지역 주민들이 지방자치단체와 소통하면서 함께 협의하면서 수용성을 높인 것이 배경이다.

에스텔 봄버거-리봇 시장은 “지역의 주민위원회가 1년에 한 번씩 미팅을 하며 지역 주민의 3분의 1이 온다”면서 “원전에 관심 있는 주요 인물들은 다 참석하고 있고 참석을 안 하는 주민들도 원전에 대해 신뢰하고 있다”고 밝혔다.

노장 쉬르센 주민들은 원전을 유치하면서 지역경제가 활성화됐다는 체감효과로 원전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원전을 유치하면서 지역경제가 살아났고 원전 건설과 함께 운영과 유지를 위한 협력사 직원들이 지역으로 이사를 하면서 지방자치단체 인구가 확대됐다. 지자체 인구가 확대되면서 세수가 늘고 지역경제가 되살아나는 선순환 효과가 일어나고 있다. 실제 이날 방문한 노장 쉬르센 시청 근처 중심지 도로에는 활발하게 자동차들이 오가고 상점에도 손님들이 북적이는 등 활기가 눈에 띄었다.

에스텔 봄버거-리봇(Estelle Bomberger-Rivot) 노장 쉬르센 시장. <사진 노장 쉬르센 제공>
에스텔 봄버거-리봇(Estelle Bomberger-Rivot) 노장 쉬르센 시장. <사진 노장 쉬르센 제공>

에스텔 봄버거-리봇 시장은 “원전을 건설하고 나서 지역 경제가 훨씬 빠르게 성장을 했고 주변 도시들도 같이 경제효과를 누렸다”면서 “노장 쉬르센에는 원전 관련 협력사만 15개가 있다”고 강조했다.

원전에 대한 주민 수용성은 노장 쉬르센뿐만 아니라 프랑스 국민이 대부분 높다고 한다. 프랑스의 국가산업으로 추진한 원전에 대해 국민들은 자연스럽게 인식하고 있고 먹거리를 책임지는 하나의 산업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에너지 정책이 정치화된 그 중에서도 원전이 정치적으로 첨예한 논쟁거리로 떠오른 우리나라와는 다르다.

정동욱 중앙대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한국원자력학회장)는 “프랑스는 원전에 대해 상당한 자부심이 있다”면서 “샤를 드골 정권 시절에 원자력과 초음속 비행기인 콩코드, 고속열차인 떼제베(TGV)를 육성했는데 가장 성공했다고 보는 것이 원자력이고 실제 우리나라와 중국 등에 원전을 수출했다”고 설명했다.

프랑스는 지금도 발전량의 70~80%는 원전으로 충당하는 세계적인 원전 강국이다. 원전안전운영정보시스템(OPIS)에 따르면 프랑스는 현재 원전을 56기 운영하고 있다. 미국(93기)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운영하는 원전이 많다. 인구수와 비례한 원전 밀집도는 세계에서 가장 높고 특히 전력 생산에서 원전이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으로 크다.

국제에너지기구(IAEA)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프랑스의 전력공급 중 69%(36만700GWh)는 원전이 담당했다. 지난해 우리나라가 전체 전력 생산량의 28%(15만163GWh)를 담당한 것과 비교해 두 배 넘는 수치다. 원전을 주력 에너지원으로 다른 에너지원들이 보조하는 구조이며 계통이 연결된 유럽 내에서 전력을 판매하기도 한다.

노장 쉬르센(프랑스)=변상근기자 sgbyu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