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F 스타트업 이야기]스타트업에도 녹서(Green paper) 도입하자

[GEF 스타트업 이야기]스타트업에도 녹서(Green paper) 도입하자

녹서(綠書·Green Paper)는 유럽에서 정책의 제안을 의논하고 심의하기 위해서 제공한 임시적인 자문용 공문서를 말한다. 다양한 의견을 수렴한 녹서가 먼저 제시돼 공론화된 이후 그 결과를 정리한 결과 보고서가 백서인 것이다.

반면에 백서(白書·White Paper)는 정부가 특정 사안이나 주제에 대해 조사한 결과를 정리해 보고하는 보고서로 매년 기술, 행정, 국방 등의 백서가 발간되고 있다.

백서는 최근 블록체인-가상자산 분야에서 많이 사용되고 있는 용어 중 하나다. 가상자산을 발행함에 있어 기술적 정의나 사회철학을 통한 도입 취지를 선포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되돌아보면 블록체인-가상자산 분야에도 '녹서'가 있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진하게 남는다. 시장의 요구와 다양한 경제 주체의 의견을 수렴하고 시장의 예상반응을 기록한 녹서의 제작과정을 거쳤다면 지금처럼 블록체인-가상자산 분야의 백서가 형이상학적이거나 비현실적으로 작성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녹서의 필요성이 꼭 블록체인-가상자산 분야에만 해당할까? 스타트업 분야에도 녹서의 필요성은 절실하다. 현재 스타트업의 기업가치는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기업기술가치평가 과정이 생략되는 경우가 많다. 스타트업 진입시장의 현재 인기도에 따라 기업가치가 결정되거나, 투자심사역의 개인적 감각에 의존하기도 한다. 시장성과는 무관한 변수들이 가치산정의 원칙이 제시되기도 하고, 차별화된 혁신성을 내세우면서도 기업 가치는 유사기업의 가치에 의존하기도 한다.

스타트업의 투자나 평가에 있어 이러한 방식에 의존하는 것은 KPI(Key Performance Indicator·핵심성과지표)라는 기준을 기업이 제대로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KPI는 창의성을 전제로 하는 스타트업의 탄생철학을 시장이 진정 바라고 있는지를 검증하는 일종의 '스타트업 녹서'라 할 수 있다.

다들 MVP(Minimum Variable Product·최소기능제품)에는 초점을 맞추면서 실제 그 결과값인 KPI를 설계하고 검증하는 데에는 소홀히 하고 있다. 스타트업이나 R&D를 지원하는 정부사업 평가에서도 실제 제품이 구동되는가에 머무르지 말고, 명확한 KPI의 계획과 달성도로 성공과 실패를 판가름해야 한다.

설문이나 블라인드 테스트 등 기업의 작위적 시장조사만으로 시장성을 예측하는 것으로는 진정한 KPI를 도출할 수 없다. 다양한 시장의 소리를 듣고, 그 가능성을 예측하며, 새로운 가능성을 수치화해야 한다. 이 시장 가능성을 측정할 수 있는 기준값이 바로 KPI다.

따라서 KPI는 허황되거나 도달하지 못할 경우 경영적 책임이 뒤따른다. KPI 달성여부에 따라서 체계적인 원인 파악이 가능해지고, 피벗을 통해 전략을 수정할 수도 있다. 따라서 초기기업일수록 KPI의 비중은 높아져야 한다. 이 KPI를 구체화할 수 있는 보고서가 바로 '스타트업 녹서'인 듯싶다.

창의적이기에 시장 검증데이터가 부족한 스타트업 생태계에 KPI를 제대로 설계할 수 있는 '스타트업 녹서(KPI 설계보고서)'의 표준이 제시돼 정부지원사업부터 스타트업 투자심사에 도입됨으로써 초기기업의 시장 안착과 성장에 기여하기를 바란다.

박항준 글로벌청년창업가재단 이사장 danwool@gef.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