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시론]중국식 마키아벨리즘의 부활

향후 5년 동안 중국의 정치, 외교, 경제, 사회 운영 핵심 방향을 결정하는 중국공산당 제20차 전국대표대회가 막을 내렸다. 일주일간 진행된 당대회에서 시진핑 주석은 3연임에 성공함과 동시에 다음 당대회에서 종신집권 추진이 가능한 정치적 발판을 확고히 마련했다. 가장 주목받는 부분은 당 권력 서열 최고 정점인 정치국 상무위원 자리를 시자쥔(習家軍)을 포함한 최측근과 충성파로 구성했고, 제19차 당대회 때처럼 차기 주석과 총리 후보를 지명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는 덩샤오핑 이후 자리 잡은 당내 파벌 간 견제와 균형의 관행과 격대지정의 원칙이 이미 파기되고 시진핑 개인에게 모든 권력이 집중됐음을 의미한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3일 공산당 총서기 및 정치국 상무위원회(상무위) 구성원을 뽑는 당 20기 중앙위원회 1차 전체회의(1중전회)를 마친 뒤,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신임 상무위 기자회견장에 리창, 자오러지, 왕후닝, 차이치, 딩쉐샹, 리시 등 새 최고지도부와 함께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3일 공산당 총서기 및 정치국 상무위원회(상무위) 구성원을 뽑는 당 20기 중앙위원회 1차 전체회의(1중전회)를 마친 뒤,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신임 상무위 기자회견장에 리창, 자오러지, 왕후닝, 차이치, 딩쉐샹, 리시 등 새 최고지도부와 함께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중국공산당 헌법인 당장(黨章) 수정안에 시진핑 개인 권위를 명시하고, 시진핑 사상을 공산당 지도지침으로 확립해 이데올로기와 법률적 차원에서 절대권력에 대한 어떤 도전도 용납하지 않는 철옹성을 구축했다. 의도된 결과인지 확인할 방법은 없지만, 당대회 마지막 날 후진타오 전 주석이 강제로 퇴장당하는듯한 모습까지 연출해 권력 장악 효과를 극대화했다. 이 모든 것은 마오쩌둥 집권기를 제외한 시진핑 이전 시기 당과 국가 운영 기반으로 작동했던 권력분점, 지도 사상, 제도, 관행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음을 방증하는 것이다.

당대회 기간 시진핑 주석이 발표한 보고 문건, 전체 대회를 관통했던 주제, 최종 결과가 미래 중국 정치에 미칠 영향과 함의를 요약할 수 있는 핵심 개념은 '갈라파고스 함정'과 '진지전'이다. 찰스 다윈은 남미 대륙에서 멀리 떨어진 갈라파고스 군도에서 진화론 아이디어를 체득했다. 갈라파고스 교훈의 핵심은 자유경쟁에서 소외된 채 자가 발전만을 거듭하던 생명체가 더 강력한 외부 도전에 직면하게 되면 결국 경쟁력을 상실하고 소멸한다는 것이다.

[ET시론]중국식 마키아벨리즘의 부활

덩샤오핑 이래 중국 지도부는 비록 제한적이지만 정치 분야에서 개혁적인 모습을 이어왔다. 그리고 덩샤오핑 사후 집단지도체제, 격대지정, 파벌 견제와 균형, 10년 주기 권력 교체가 안정적으로 정착하는 모습을 두고 일부 학자들은 이를 '중국식 민주주의'로 개념화하며 중국 특색의 정치 발전, 경제 성장, 세계화를 강조하는 '중국 예외주의'를 정당화하는 근거로 삼기도 했다.

하지만 제20차 당대회를 통해 중국이 주창해온 중국식 민주주의의 특성은 모두 증발했다. 시진핑 주석 집권 이후 지난 10년간 관찰된 중국 정치는 오랜 기간 수렴돼 온 비공식적, 부분적, 점진적 제도화 경로에서 이탈해 현대 중국 초기 시절로 역진하는 모습을 연상시키는 과정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이번 당대회를 통해 중국은 '칠라파고스'라는 섬으로 전락한 거대한 대륙 국가임을 만방에 공표했다. 절대군주에 대한 충성 경쟁과 집단사고라는 위험 요소가 제도에 기반한 논쟁과 협의를 대체한 중국 정치의 미래는 예측성과 안정성이 크게 떨어져 주변 국가의 불안감을 증폭시킬 것이다.

1978년 개혁 개방의 길을 선택한 후 중국의 경제 성장은 역동성이 넘치는 '기동전' 형태로 전개돼왔다. 중앙 정부의 빠른 결정과 집약적인 자원 동원, 관료 업적 평가의 핵심 지표로써 공고해진 성과주의, 이에 따른 지방 정부 간 치열한 경쟁, 발전을 가로막는 제도적 장벽에 대한 과감한 혁파는 개혁 개방 이후 질주하는 중국 경제를 상징하는 특징이었다. 인류사에서 보기 드문 최대 압축성장의 실제와 진가를 여과 없이 입증한 중국 경제는 국제무역, 투자, 기술, 시장, 노동의 구심점으로 작동하며 세계 경제 발전의 견인차로 기능해왔다.

하지만 외부 환경이 미·중 패권 경쟁 심화로 서구의 중국 견제가 본격화되는 상황에서 개최된 이번 당대회에서 중국은 향후 발전 동력을 내수에 기반한 쌍순환 정책, 공동부유, 국유기업 역할 증대, 자립적 과학 기술 발전 등 폐쇄적 자립노선에서 찾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상호의존이 극대화된 세계화 시대에 전개되는 패권 경쟁에서 승리할 추진력을 외부와의 고립을 통해 힘을 키우는 진지전 전략으로 선회한 것이다.

시진핑 주석은 집권 후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역사적 소명으로 호출했으며 이를 실현하는 구체적 과정으로 '두 개의 100년'을 구상했다. 첫 100년은 공산당 창당 100주년인 2021년까지 모든 중국인이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사회로 진입하는 것이고, 다음 100년은 중국 건국 100주년인 2049년까지 중국을 세계 일류국가로 건설하겠다는 것이다. 소강사회와 일류국가 건설은 중국이 사회주의 사상에 기반한 현대화에 성공해 세계 최강대국의 지위에 도달하는 것을 지칭한다. 이를 반영하듯 이번 당대회에서 공산당은 2035년을 두 번째 목표 달성을 위한 기반을 확립하는 시기로, 향후 5년을 이를 추진하는 '관건적 시기'로 규정했다.

문제는 한반도를 포함해 세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한 관건이 바로 향후 5년의 관건적 시기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점이다. 미·중 패권 경쟁,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북한의 핵 위협으로 긴장이 고조되는 글로벌 안보 위기 상황에서 자유주의 질서의 이념, 체제, 정체성과 현격히 구분되는 중화민족의 부흥과 사회주의 현대화라는 목표가 충돌하며 내는 굉음이 갈수록 커지기 때문이다. 실례로 얼마 전 미국 바이든 정부가 발표한 국가안보전략은 중국을 최고 경쟁자로 규정하며 중국과의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일 것을 명백히 밝히고 있다. 공화당 트럼프 정부와 민주당 바이든 정부 모두 중국과의 경쟁을 피할 수 없는 도전으로 규정했다는 것은 미·중 경쟁이 지닌 체제 대결의 성격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중국 정치 2인자인 덩샤오핑을 넘어 이미 마오쩌둥 반열에 오른 시진핑 삶의 궤적에서 마지막 경쟁자를 뛰어넘고 싶은 마키아벨리적 욕망을 억제할 근거를 찾기 힘들다. 그리고 중국공산당 영수와 중화민족의 신화로 동시에 기록되길 원하는 시진핑의 욕망과 이에 반응해 광장에 모인 군중의 열기가 합해져 터져 나오는 순간에 대한 우려가 점차 커지는 상황이다. 이런 점에서 향후 5년은 중국의 내적 정치 상황과 국제정치의 상호작용이 극도로 주목받는 시기가 될 것이다. 한국 정부도 이에 대비하는 외교적 성찰과 장기 비전 수립에 최선을 다하는 작업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asymmetryir@naver.com

함명식 중국 지린대 교수· 한국외대 HK+ 국가전략사업단 공동연구원
함명식 중국 지린대 교수· 한국외대 HK+ 국가전략사업단 공동연구원

○…함명식 교수는 중국 지린대 공공외교학원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한국외국어대 문학사, 연세대 정치학 석사, 미국 버지니아 대학 박사과정을 거쳐 지린대에서 국제관계사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북·중 관계와 미·중 패권 경쟁, 중국의 동아시아 외교가 주 연구 분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