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민 교수의 펀한 기술경영]〈359〉제품만의 경계를 넘어

[박재민 교수의 펀한 기술경영]〈359〉제품만의 경계를 넘어

무풍대. 바람이 불지 않거나 약한 곳을 말한다. 무역풍과 편서풍이 나뉘는 위도 30도 부근 또는 두 무역풍이 만나는 적도 부근을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대항해 시대에 의외로 많은 범선이 무풍대에 갇혀 조난했다. 용케 바람을 만나기도 하지만 그렇지 못하면 배를 버려야 할 수도 있다. 기업에 변화의 바람이 멈추면 평온할지는 모르지만 그 결과는 자칫 두려운 것일 수 있다.

혁신이 녹록지 않은 데는 애초에 이것이 쉽지 않았다는 것에만 있지 않다. 일단 성공하더라도 그것을 지속한다는 건 만만치 않은 일이다. 이것만이 아니다. 잠깐 사이에 속도를 잃고, 얼마 지나지 않아 혁신의 기억마저 놓치기도 한다.

노키아는 지금 혁신 전당에서 한참 아랫자리에 위치하지만 한동안 모든 기업의 지향점이자 혁신기업의 표상이었다. 물론 노키아가 처음부터 그 자리에 있은 건 아니었다. 오랫동안 셀룰러 장비 분야 2군 업체였다. 이곳은 사실 짧은 제품 주기에다 차별화는 어렵고 경쟁은 심한 시장이었다. 그러나, 한때 강자이던 모토로라를 제치고 선두 주자가 됐다. 때는 1990년대 중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즈음 모바일 통신 서비스라는 비즈니스가 세 가지 변화를 맞는다. 첫째 아날로그 기술이 디지털로 넘어가고 있었다. 문제는 통신사업자가 거의 알지 못하던 영역이었다는 것이었다. 둘째 통신사는 빠르게 느는 수요를 따라가는 데 허덕이고 있었다. 게다가 기술이 디지털로 넘어가고 있었으니 어떻게 네트워크를 구축해야 할지 간단한 질문이 아니었다. 셋째 그즈음 탄생한 수많은 소규모 통신사에는 그동안 모바일 통신사업을 지배해 온 전화회사보다 따라잡아야 할 것이 많았다.

노키아는 모바일 통신사에 휴대폰, 전송 장비, 스위치를 포함한 포괄적 제품을 내놓는다. 이런 제품에만 그친 것은 아니었다. 이들 제품에 맞춘 다양한 서비스를 제안했다. 통신사라면 골칫거리인 네트워크 관리에서 고객 유지관리와 기술 지원을 포함하는 것이었다. 심지어 새로운 송신탑 건설을 위한 구역 설정까지 도왔다. 물론 모바일 통신사는 제품이나 서비스 따로 계약하던 것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노키아의 고객이 된다는 건 시간과 비용 절감을 의미했다. 신생 통신사에는 이 같은 통신 기술을 따라가는 것조차 만만치 않았다.

노키아의 통합 솔루션 비즈니스 모델은 고객충성도를 만들었다. 이렇게 고마진인 네트워크 인프라 사업의 상당 부분도 확보할 수 있었고, 서비스는 물론 업그레이드로도 수익을 낼 수 있었다. 점유율이 가장 큰 휴대폰 사업이 큰 수익을 냈지만 가장 큰 이윤은 네트워크와 개발 서비스에서 나왔다.

이렇게 노키아는 전통적 제품을 넘어 고객인 모바일 통신사의 모든 장비와 서비스 요구 사항을 해결하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이것은 제품과 서비스를 긴급한 고객 요구를 해결하는 완벽한 제안으로 결합하는 것이 되었고, 노키아의 비즈니스 모델은 노키아를 기술과 수익성 모두에서 최고의 혁신기업으로 자리 잡게 한다. 물론 2013년 마이크로소프트(MS)에 인수되는 운명을 맞지만 한때 노키아의 순이익률은 모토로라의 4배에 달했고, 1990년 10억달러이던 기업가치는 10년 만에 65배가 된다.

무풍대는 북동무역풍과 남동무역풍이 만나는 적도 근처를 따라 형성된다. 역설적이게도 바람을 타고 순항하고 온 끝에 무풍대에 들어서는 셈이었다. 이곳에 닻을 내린다면 잠시 고요하고 평화로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곳은 기업이 닻을 내려서는 안 되는 장소이기도 하다. 그곳에선 결코 작은 바람이라도 놓쳐서는 안 된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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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jpark@konku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