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듀플러스]“전공·졸업요건 '셀프 탐색'…AI 시대 역행하는 대학 행정”

이미지=클립아트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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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 필수 과목요? 학생이 직접 사이트 뒤지거나 행정실에 물어보는 수밖에 없습니다.”

인공지능(AI)이 논문을 쓰고 코드를 짜는 시대지만, 정작 대학 학사 행정 시스템은 여전히 20년 전 모습에 머물러 있다는 지적이 거세다. 특히 매 학기 반복되는 수강 신청은 '디지털 사각지대'로 불릴 만큼 학생들의 불편과 불신을 키우고 있다.

학생들은 졸업요건을 확인하려면 공지사항을 직접 뒤지거나 책자를 참고해야 한다. 전공·복수전공·전과 등 학사 이력이 다양해질수록 불확실성은 커지고, 수강 신청 때마다 서버 불안정에 시달리는 것은 일상이다. AI가 첨단 산업을 혁신하는데, 대학은 아직 행정실 전화에 의존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대학 측은 '시스템 통합의 기술적 한계'를 항변한다. 학과·학년별로 다른 졸업 기준, 끊임없이 바뀌는 전공 명칭, 자유전공·융합전공 등 예외 상황이 너무 많아 자동화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숭실대 관계자는 “학생들이 시간표를 미리 설정하고 졸업에 필요한 과목이 무엇인지 찾아 미리 설정해 놓으면 부족한 부분을 시스템에서 확인할 수 있지만 기능적으로 자동 맞춤 되는 부분은 아니”라면서 “학과마다 변수가 다양하고 융합 자유 전공이 많아 개개인 상황 반영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세종대 관계자는 “새로운 졸업 요건이 생기고 복잡해져 시스템에서 계속 수정해야 하는데 그 상황을 쫓아가기 어렵다”면서 “이러한 문제들은 다른 대학도 상황은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고 전했다.

그러나 결국은 방대한 로직과 비용 부담을 이유로 '시스템 고도화'를 미뤄온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된다. 외부 개발사들도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편이다. 대학별 학사 시스템이 제각각이라 여러 대학에 공통 적용할 수 있는 표준 솔루션이 부족하고 사업성도 낮기 때문이다.

서울대 관계자는 “여러 업체와 논의한 적도 있지만 방대하고 정확한 데이터가 필요하고 기존 시스템을 개선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다”고 설명했다.

[에듀플러스]“전공·졸업요건 '셀프 탐색'…AI 시대 역행하는 대학 행정”

반면 해외 대학은 이미 학생 맞춤형 학사 플랫폼을 도입해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 미국 워싱턴대는 '워크데이 스튜던트(Workday Student)'를 통해 졸업요건 충족 여부를 자동 계산하고, 부족 과목은 즉시 확인할 수 있다. 한 국내 상위권 대학 대학원생도 “공지사항을 뒤지는 대신, 해외 대학처럼 시스템이 학업 경로를 안내해준다면 훨씬 효율적일 것”이라고 토로했다.

일부 국내 대학도 늦게나마 변화를 모색 중이다. 성균관대는 학사 포털 GLS에 졸업요건 확인 기능을 강화했고, 세종대도 유사한 시스템을 개발 중이다. 하지만 예산 여력이 있는 대학만 변화에 나서면서 대학 간 격차는 더 벌어지고 있다.

한국교육개발원(KEDI) 관계자는 “대학 재정 지원 없이는 시스템 구축 자체가 어렵다”며 “AI 시대에도 예산 따라 행정 서비스 수준이 나뉘고 있다”을 꼬집었다.

권미현 기자 mhkw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