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정상이 글로벌 무역통상에 대한 각기 다른 관점을 재확인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미국 중심의 보호무역주의를 비판하며 다자간 자유무역주의를 강조했다. 반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자신이 밀어붙이고 있는 자국 중심의 보호무역주의 성과를 자찬했다.

◇다자무역 복원 강조한 李
이 대통령은 29일 경주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2025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최고경영자(CEO) 서밋 개막식 특별연설을 통해 다자무역 복원과 공급망 협력 강화, 인공지능(AI) 혁신 등을 축으로 한 연대 구상을 제시했다. 한국이 글로벌 책임국가로서 협력과 신뢰의 연결고리를 회복하겠다는 의지도 드러냈다.
이 대통령은 “20년 전 APEC에서 단결된 의지를 모아냈던 대한민국이 다시 의장국으로서 위기에 맞설 다자주의적 협력의 길을 선도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보호무역과 자국 우선주의가 재확산하는 국제 질서 속에서도 APEC이 위기 극복의 연대 플랫폼이 되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 대통령은 경주의 역사적 상징성에도 의미를 부여했다. 삼국시대 패권 경쟁과 외세 압박 속에서도 개방과 교류를 멈추지 않았던 신라의 정신을 언급하며, 분열을 넘어 통합을 이룬 경험이야말로 오늘날 APEC이 추구하는 '연결·혁신·번영'의 가치와 맞닿아 있다고 평가했다.
연대의 핵심 수단으로 공급망 협력을 제시했다. 이 대통령은 “한국은 APEC 최초로 공급망 지속가능성을 주제로 한 민관 합동 포럼을 개최해 민간의 참여 기반을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혁신 동력으로는 인공지능(AI)을 지목했다. 이 대통령은 “대한민국은 이번 정상회의에서 AI 이니셔티브를 제안할 것”이라고 밝혔다. AI가 산업 발전을 이끄는 동시에 책임 있는 기술 활용을 위한 규범이 돼야 한다며 “모두를 위한 AI 비전이 APEC의 새로운 기준이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번영의 의미를 '미래세대와의 약속'으로 규정했다. APEC이 무역과 투자 자유화의 선봉에 서며 역내 성장을 견인해온 만큼, 이제는 그 성과를 지속가능한 발전과 공동번영으로 확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美중심 보호무역 고수한 트럼프
트럼프 대통령도 이 대통령의 특별연설 이후 같은 자리에서 마이크를 잡았다. 자신의 취임 후 추진해온 자국 중심의 보호무역주의에 대한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며 만족감을 나타냈다. MAGA(Make America Great Again·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로 자신의 성과를 내세우는데 초점을 맞췄다.
그는 “대통령으로 취임하고 나서 1년도 안 돼 18조달러의 투자를 확보했다. 조만간 21조달러까지 투자금이 미국으로 들어올 것”이라며 “(미국) 증시는 41차례나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고 GDP 성장률은 4%를 넘어섰다. 미국은 다시 '황금의 시대'를 열고 있다”고 주장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두 번째 대통령 임기가 시작되자 철강·알루미늄에 고율 관세를 부과하고, 중국산 수입품 3600억달러 규모 최대 25%의 추가 관세를 매기는 등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을 전면에 내건 무역정책을 밀어붙여왔다. 전 세계를 상대로 상호관세 체계를 도입하고 자동차·부품에는 별도로 25% 관세를 부과했다. 일본, 영국, 유럽연합(EU) 등은 이미 트럼프 대통령이 밀어붙인 관세 협상을 타결했다.
이 같은 성과를 통해 자국을 떠나 해외로 빠져나간 제조 일자리를 되찾고, 반도체·자동차·배터리 등 전략산업의 생산기지를 미국 본토로 회귀시키는 성과를 거두었다고 강조한 것이다. 특별연설 후 이 대통령과 가진 한미 정상회담에서 관세 협상을 최종 타결한 후에도 한미 간 무역합의 사실을 자랑스럽게 강조하기도 했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 외 조선·방산 등 한국과의 경제안보 협력에도 연설의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그는 “우리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세계 1위 조선국이었다. 우리는 이를 다시 시작하려 한다. 한국과 함께 아주 번성하는 조선업을 만들어 갈 것”이라고 말했다.
안영국 기자 ang@etnews.com, 최호 기자 snoop@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