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통령실이 쿠팡의 개인정보 유출 사태와 관련해 25일 긴급 장관급 회의를 소집한 배경에는 쿠팡 측이 '통상 마찰' 프레임을 내세워 국내 규제 무력화를 시도한다는 판단이 깔린 것으로 분석된다.
외교·안보 라인의 이례적인 동참은 정부가 이번 사안을 단순 정보 유출 사고 이상의 중대 현안으로 규정하고 있음을 뒷받침한다.
그간 국회 및 관계 부처를 상대로 방어권을 행사하던 쿠팡은 최근 본 사안을 미국 기업에 대한 차별 및 무역 마찰 사례로 전환하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쿠팡은 이를 위해 트럼프 행정부 및 공화당 핵심 인사 출신 로비스트를 고용하며 미국 내 정·관계 네트워크를 강화 중이다.
쿠팡아이엔씨는 지난 1월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에 100만달러(약 14억5000만원)를 기부했으며, 지난 5년간 미국 내 로비 자금으로 총 1039만달러(약 150억원)를 지출했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국내 규제 당국의 압박에 대응하기 위해 자금 투입을 본격화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쿠팡의 이러한 행보는 미국 정계의 반응으로 이어지고 있다.
로버트 오브라이언 전 국가안보보좌관은 지난 23일(현지시간) SNS를 통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과의 무역 관계 재균형을 위해 노력해왔다”며 “한국이 미국 테크 기업(쿠팡)을 타깃으로 삼아 그 노력을 저해하는 것은 불행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미국 기업에 대한 공정한 처우와 중국의 영향력 확산에 맞선 전략적 균형 유지를 위해 미국의 조율된 대응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는 한국 정부의 법 집행을 미국 기업에 대한 차별적 압박으로 규정하려는 시도로 해석된다.
여기에 최근 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디지털 규제 이슈를 사유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회의를 연기한 배경을 놓고 쿠팡의 로비가 작용했다는 관측도 제기됐다. 대통령실은 이번 긴급회의를 통해 쿠팡의 통상 마찰 프레임 구축 시도를 차단하고, 국내법 적용 회피를 방지할 종합 대책을 점검한 것으로 전해졌다.
향후 정부의 영업정지 등 제재안과 쿠팡의 통상 압박 카드가 충돌하는 양상이 전개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과징금 부과와 영업정지 등 행정 제재뿐만 아니라 형사고발을 포함한 법적 대응을 검토 중이다. 국회 역시 오는 30일 5개 상임위 연석 청문회를 개최하고 김범석 의장의 동생을 증인으로 채택하는 등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으며, 국세청의 특별 세무조사 등 전방위 압박도 이어질 전망이다.
최호 기자 snoop@etnews.com, 윤희석 기자 pionee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