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F 스타트업 이야기] 〈80〉괜찮지 않아도 괜찮다:극한 속 감정 정지

함성룡 (재)글로벌청년창업가재단 상임이사(CFP)
함성룡 (재)글로벌청년창업가재단 상임이사(CFP)

새벽 6시 30분. 한겨울 출근길에 교통사고가 났다. 차는 폐차 수준으로 부서졌고 에어백이 터졌다. 그런데 나는 차에서 내려 상대 운전자를 확인하고, 보험사에 전화를 걸고, 견인차를 기다리는 동안 오늘 해야 할 일을 처리하고 있었다. 스산하게 추운 길 한가운데서 방금 폐차시킬 사고를 겪었는데도 말이다.

사고 소식을 들은 사람들이 연락해왔다. “몸은 괜찮아?” 익숙하지 않은 질문이었다. 나는 무조건 괜찮아야 했고, 괜찮다고 답했으며,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았다고 생각했다. 감정이 없는 걸까? 비인간적인 걸까? 사이코인 걸까? 아니면 이것이 극한 상황에서 작동하는 또 다른 형태의 생존 메커니즘일까? 심리학에서는 이를 '감정 마비(emotional numbness)'라고 부른다. 재난이나 극심한 스트레스 상황에서 인간의 뇌는 생존을 위해 감정 시스템을 일시 정지시킨다. 감정을 느끼는 것은 에너지를 소모하는 일이고, 위기 상황에서는 그 에너지를 판단과 행동에 집중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심리적 방어기제의 일종으로, 감정의 폭발이나 해체를 막고 최소한의 기능만 유지하려는 전략이다.

역사는 극한 상황에서 기계적으로 작동한 사람들의 기록으로 가득하다. 1912년 타이타닉호 침몰 당시 2등 항해사 찰스 라이톨러는 배가 가라앉는 내내 침착하게 구명보트 탑승 순서를 지시했다. 그는 자신의 감정을 완전히 차단하고 '해야 할 일'에만 집중했다. 2001년 9·11 테러 당시 뉴욕 소방관들은 무너지는 건물 속으로 계속해서 올라갔다. 그들은 두려움을 느끼지 않은 것이 아니라, 두려움을 인식할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1986년 체르노빌 원전 사고 당시 첫 대응팀은 치명적인 방사능에 노출된 상태에서도 냉각 시스템을 가동하기 위해 움직였다. 그들은 자신들이 곧 죽을 것을 알았지만 멈추지 않았다. 후일 생존자들은 “그때는 아무 생각도 안 났다. 그냥 해야 할 일이 명확했다”고 증언했다. 감정이 차단된 상태에서 오히려 더 명료한 판단과 행동이 가능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극한 상황에서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비인간적인 결함인가, 아니면 고도로 인간적인 적응 메커니즘인가. 우리는 흔히 감정을 느끼고 표현하는 것을 '인간다움'의 증거로 본다. 하지만 생존이 걸린 순간 감정을 정지시키고 기능에 집중할 수 있는 능력 또한 인간만이 가진 고유한 특성이다. 동물은 본능에 따라 반응하지만, 인간은 본능을 억제하고 상황에 맞게 모드를 전환할 수 있다.

71편에서 우리는 “결과가 없는 신뢰는 거짓말이다”라고 했다. 감정도 마찬가지다. 느끼지 않은 감정은 사라지지 않는다. 결국 어떤 형태로든 표출된다. 중요한 것은 그 감정을 인식하고, 이름 붙이고, 적절히 표현하는 훈련이다. “나는 지금 무서웠다” “나는 지금 화가 났다” “나는 지금 슬프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 극한 속에서 기능할 수 있었던 당신이라면, 일상 속에서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용기도 가질 수 있다.

극한 상황에서 감정을 정지시킬 수 있는 능력은 생존의 도구다. 하지만 그것이 영구적인 상태가 되어서는 안 된다. 77편의 '관계의 무임승차자'처럼 감정을 이용하는 것도 문제지만, 76편의 해맑은 사람과 섬세한 사람처럼 감정에만 휘둘리는 것도 한계가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상황에 맞게 모드를 전환할 수 있는 유연성이다.

위기 상황에서는 기능 모드로, 일상에서는 감정 모드로. 그리고 그 전환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스스로를 돌보는 것. 괜찮지 않을 때 괜찮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 75편에서 이야기한 공생 문명은 바로 이런 곳이다. 누군가 기능 모드에 갇혔을 때 다시 감정 모드로 돌아올 수 있게 손을 내미는 공동체. 그것이 진정으로 인간적인 시스템이다.

함성룡 (재)글로벌청년창업가재단 상임이사(CFP)